‘소녀시대’ 노래로 시위하는 태국, 한국산 ‘물대포’로 진압

[INTERNATIONAL1] 키워드로 보는 태국의 민주화 요구 시위

지난 9월 19일, 태국 수도 방콕에 약 10만 명의 시위대가 모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태국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10월 14일 이후 태국 정부가 집회 금지 등의 비상조치를 취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과 태국 정부의 탄압에도 이어지고 있는 태국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10월 15일 왕실 개혁과 구속자 석방 요구하는 시위대 [출처: Wikipedia]

크롭탑 티셔츠

태국에서 왕실은 성역으로 간주돼 왔다. 전 국왕인 라마 9세는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 사실상 정치에 개입해 왔음에도 태국 국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왕실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군부-왕실-엘리트 기득권 세력들은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왕실을 위협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해 왔다. 왕실모독죄는 태국 국민뿐 아니라 해외 거주 외국인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태국 왕실의 절대적 위상은 2016년에 라마 9세가 서거한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7년에 등극한 라마 10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문란한 사생활 등으로 태국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 않았다. 국왕 즉위 후에도 라마 10세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라마 10세가 2017년에 독일 쇼핑몰에서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탑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는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국왕 즉위 전에 찍힌 사진이긴 했지만 그 동안 태국에서 존경받던 국왕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올해 태국의 10대와 20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시위를 벌이며 왕실 개혁까지 요구하고 있다. 라마 9세 전 국왕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만, 그만큼 현 국왕에 대한 실망감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태국 서민의 삶이 고통스러운데도, 국왕은 20명의 여성들과 독일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며 그 동안 쌓였던 불만이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더구나 1952년생인 현 국왕을 대신해 왕실의 미래를 보여줄 차기 왕세자나 공주도 제대로 대중 앞에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33조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태국 기득권 엘리트 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지만, 개혁 요구가 거세지며 기득권 세력 내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물대포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고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물대포가 10월 14일부터 방콕 시위해산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 시민에게 익숙한 이 물대포는 파란색 최루액이 섞인 물을 시위대에게 뿌리고 있다. 그리고 이 물대포가 한국 기업인 지노모터스사의 수출품이라는 언론보도가 태국과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출처: Wikipedia]

이 한국산 물대포는 2012년 처음 태국으로 수출돼 지금까지 모두 8대가 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대포를 탑재한 살수차를 생산하는 지노모터스는 시위진압 장비와 차량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회사다. 이들은 자신을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업체로 홍보하고 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부터는 세계치안박람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K-COP, 즉 치안 한류라는 이름으로 시위진압장비용품을 포함한 경찰장비 수출을 독려·홍보하고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에 한국산 시위진압 장비들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녀시대

한국산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시위를 하고 있는 태국 청년 상당수는 바로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K-POP 팬들이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태국의 K-POP 팬클럽들이 시위를 위한 모금을 진행해 무려 300만 바트(한화로는 약 1억 원)를 모금했다. 특히 태국의 소녀시대 팬클럽은 이 중 78만 바트를 모아 가장 많은 모금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이화여대 집회 당시 시위노래로 등장한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가 이번 태국시위에서도 불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사실 태국의 사회운동은 이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태국어로 개사해 투쟁 현장에서 즐겨 부르고 있다. 그리고 태국어 개사의 주인공이자 태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소묫 씨는 한국의 노동운동과도 긴밀히 연대해 왔다. 소묫 씨는 왕실모독죄로 2011년에 체포된 후, 2018년에 출소했고,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가 또 다시 10월 16일 경찰에 체포됐다. 태국 당국이 소묫 씨에 대한 보석신청을 거부하면서, 그는 또 다시 기약 없는 수감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태국 청년이 시위 중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틀고 춤추고 있다. [출처: @ThaiEnquirer 갈무리]

감옥에 갇힌 노동운동가가 자국의 언어로 개사한 노래, 태국 청년들이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사회가 이번 태국시위에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적어도 한국산 물대포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개사곡과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태국 시위대를 진압하는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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