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3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경제, 보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지난 4반세기 동안 영리한 정치인들이 조직해온 문화와 인종주의의 문제이다.
[출처: Nathaniel St. Clair] |
첫째, 경제 문제를 보자. 트럼프를 선호하는 적색주(red state, 공화당 지지 주)는 청색주(blue state, 민주당 지지 주)나 다른 대도시만큼의 경기 불황을 ‘겪지’ 않았다. 적색주는 부분적으로만 폐쇄됐고 지난 5월 초 단 몇 주 만에 빠르게 재개됐다. 뉴올리언스와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몇몇 핫스팟(hotspot, 집중 발병지역)도 빠르게 차단됐다. 이들은 신속하게 봉쇄를 풀어 셧다운과 격리가 경제적으로 야기한 부정적인 효과들을 최소화했다. 그들은 결국 봉쇄 해제에 따른 대가를 건강으로 지불할 것이지만 분명하게 이를 경제적 이익과 맞바꾸기로 선택했다.
아울러 트럼프를 지지하는 적색주 가정들은 3, 4월 코로나구호조치를 통해 1조 달러 이상의 직접적인 혜택을 누렸다. 이는 6700억 달러의 중소기업 지원금, 3500억 달러의 추가 실업 수당, 1,200달러의 현금 지급 조치와 함께 병원과 보건 공급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조치를 포함한다. 트럼프 주는 조기에 봉쇄를 해제하여 그다지 필요가 없었지만, 구제기금의 전액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적색주 팜벨트(farm belt, 농장지대) 지역 트럼프 지지자들은 직접 보조금과 지불금으로 700억 달러를 더 받았다. 이는 트럼프가 중국과의 재난적인 무역전쟁 기간 팜벨트를 달래기 위한 고안한 것이었다. 이 3가지는 적색주가 부가적으로 얻은 주요한 소득 원천으로, 다른 청색주와 해안, 대도시는 받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이번 경기침체의 경제적 영향은 트럼프의 지지층이 가장 집중된 지역에서 훨씬 덜 심각했다.
둘째, 코로나는 청색주나 주요 도시 지역만큼 적색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적어도 많은 투표가 시작되고 정치적 입장이 굳어진 지난 9월 말에서 10월 사이까지는 아니었다. 그 뒤 코로나가 적색주를 강타했을 때, 그것은 상대적으로 더 큰 도시에 영향을 미쳤고, 작은 도시와 시골 지역에 대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따라서 코로나의 경제적 영향은 대도시 지역, 특히 해안에서 상대적으로 더 심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나 건강에 대한 상대적인 영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적색주(즉 소도시, 시골, 중소기업, 보수적 종파 지역)에 존재하는 트럼프 지지가 유러피언 백인 유산을 추종하는 이들의 ‘인종적’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메리카에서 ‘그들의’ 백인 문화가 유색인종의 증가와 그 다양성에 압도되고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 두려움은 트럼프와 그들의 백인 민족주의의 토대이며 사실 인종주의의 한 형태다. 라틴계든 흑인이든 무슬림이든 또는 그 누구에게든 그들의 이민을 반대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유러피언 백인의 유산, 소도시, 시골, 복음주의, 소기업의 ‘심장부’인 남부와 중서부는 ‘그들의 아메리카’가 사라지고 있거나 적어도 유색인종과 더 균등하게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본다. 후자는 이제 인구상으로 백인들과 거의 같아졌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동등하지 않다. 그들은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들어오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과 동등한 몫을 원한다.
하지만 영리한 정치인들은 유러피언 아메리카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확신시켜왔다. 즉, 분배는 불가능하며, 유색인종이 얻게 되는 것은 오로지 백인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심어왔다. 트럼프와 다른 정치인들은 이러한 공포와 자신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불만을 조직하며 이 문제가 ‘우리 대 그들’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렇게 해서 부와 실권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40년 동안 백인이든 비백인이든 그들 모두의 희생으로 가당찮은 부를 축적하며 쌓인 불만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불만을 자극하고 인종적 정체성으로 문제를 돌리는 것은 부자들이, 백인이든 비백인이든 이들과 나누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쪽이 다른 쪽과 싸움하도록 부추기며,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소매치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분명하게도 트럼프의 전략이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전략이다. 그것은 또 부유한 후원자들의 전략이자 오래된 미국 지배 계급의 인종차별주의의 ‘협잡’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새 병에 담긴 오래된 포도주’의 한 형태일 뿐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사실상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인 백인의 아메리카를 우선한다는 뜻이다.
트럼프와 금융 후원자, 권력 브로커들(아델슨, 머서스, 싱어즈, 그리고 그들의 동맹들)은 심장부에 있는 유러피언 백인의 아메리카가 유색인종 미국인들의 평등을 반대하고 이를 두려워하도록 설득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백인 민족주의자’와 매우 흡사하고 때로는 친 파시스트처럼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말은 사실 번역하면 백인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를 다시 안전하게 하고 ‘그들의 아메리카’를 빼앗는 유색인종들의 무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트럼프를 근본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트럼프는 그들이 무엇보다 우려하고 있는 인구적 변화에 맞서 그들의 ‘방어벽’이 되었다. 그것이 트럼프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데도 그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그들은 만약 필요하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지지할 것이다. 트럼프든 트럼피즘이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7천만 명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2024년이든 심지어는 2022년에도 부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트럼프든 트럼피즘이든 사라지지 않을 것”
이 모든 것은 18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과 다르지 않다. 미국은 역사적인 시기와 사건의 측면에서 1854년과 유사하다. 2024년 선거는 그 결과 바이든과 민주당이 올 겨울 미국에서 심화하고 있는 경제와 보건이란 이중의 위기를 공격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훨씬 더 ‘논쟁적인’ 선거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달래기 위해 새로운 ‘초당파주의’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최소주의의 ‘작은 정부’를 택한다면 ‘바이든노믹스’는 실패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하에, 또는 테드 크루즈(텍사스주 출신의 신진 상원의원), 또는 어쩌면 마르코 루비오(공화당 상원의원)에 의해, 2022년 중간선거를 휩쓸며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니면 아마도 영리한 다른 새 인물이 부상할 수도 있겠다. 최소주의의 바이든 정책은 2009년 1월 오바마의 최소주의 경제 부양 조치의 운명을 겪을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큰 손실을 냈고 곧이어 미 하원 다수, 그 다음에는 상원 다수를 상실했다. 잇따라 교착상태가 계속되며 야기된 경제적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2021-22년에도 같은 일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2020년 선거는 2016년과 몇 가지 근본적인 면에서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등의 부동층 노동계급과 중산층이 2016년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지만 2020년에는 민주당으로 돌아섰다는 차이가 있다. 3개 주가 뒤집혔다. 트럼프가 20년 동안 자유무역, 소외, 탈산업화 등을 겪은 이들 주에 좋은 보수를 주는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겠다고 2016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어긴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 아이폰 부품을 만드는 아시아 폭스콘이다. 트럼프와 폭스콘은 미국 중서부 상부에 5000개의 일자리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 폭스콘에 속한 일자리는 250개의 창고직일 뿐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중서부 상부 지역에서 다시 민주당에 근소한 차이로 밀려났다. 그러나 민주당도 지금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면 2022년과 2024년에 다시 쉽게 뒤로 밀릴 것이다.
2016년과 2020년과의 또 다른 차이점은 조지아 주와 애리조나-네바다 주 남서부에서 실질적인 풀뿌리 운동이 출현한 것이다. 조지아 주의 흑인 민중과 그들의 동맹 그리고 서남부의 라틴계와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들이다.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에리, 피츠버그 등지에서 유색인종과 노동자들의 운동이 살아난 것도 다른 점이다.
새롭게 성장하는 풀뿌리 운동은 트럼프의 실패한 약속에 환멸을 느끼는 노동계급과 중산층과 함께 바이든의 승리를 결정지은 진정한 정치세력이다. 낸시 펠로시(민주당, 연방 하원의장)는 교외 백인 여성, 전문가, 무당파층을 대상으로 선거 운동 전략을 폈지만 이는 바이든의 승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 전략은 전혀 ‘파란 물결’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실, 이 전략 때문에 민주당은 하원에서 의석을 잃었고, 켄터키에서는 미치 매코널을 상대로, 그런 쓸데없는 상원의원 경주에 수천만 달러나 낭비했다. 그 돈이 조지아에서 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오는 1월에 그 주에서 두 개의 상원 의석을 두고 결선투표를 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조지아 주에선 지난 3일 치러진 상원의원 2석 선거에서 승자를 뽑지 못해 내년 1월 5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아니, 민주당 지도부의 대전략은 분명히 실패했다. 조지아와 남서부에서 풀뿌리를 동원하는 전략은 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재정적으로 크게 뒷받침되지 않았지만 바이든을 백악관으로 밀어넣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은 펠로시와 척 슈머(연방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그리고 그들 정당을 후원하는 기업 기부자들이 이 선거 과정에서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바이든이 왜 승리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2009년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당 지도부가 2020년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 2022년에도 오바마의 2010년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후략)
[원문] https://www.counterpunch.org/2020/11/10/how-could-70-million-still-have-voted-for-trump/
[게재일] 2020년 11월 10일
[필자] 잭 라스무스는 <신자유주의의 재앙 : 레이건부터 트럼프까지 미국 경제 정책>의 저자로 주간 라디오방송 프로그래시브라디오네트워크(PRN)에 출연하고 있다.
[번역] 정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