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외환위기, 신용대란,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까지 주요 경제 위기 때마다 여성의 고용 충격은 남성 노동자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20년 전 경제 위기 상황보다 여성 고용률이 증가한 상황에서 여성의 고용 충격이 큰 폭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여성 고용의 질적 확대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7일 이슈페이퍼 <경제 위기와 여성 노동자>를 발행하고 주요 경제 위기 상황을 중심으로 여성 고용 변화를 살펴본 후 주요 문제점을 제기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경제 위기 때마다 여성 취업자가 크게 감소하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것은 경제 상황에 따라 쉽게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취약한 일자리에 여성이 다수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경제적 타격이 외환위기와 비견되는 코로나19 상황은 고용충격 또한 외환위기와 닮은 점이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임금 노동자 수와 비임금노동자(자영업)수가 모두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고용충격이 심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임금노동자 수와 비임금노동자 수가 모두 감소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감소율이 남성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또 코로나19 시기 여성 임시직의 감소 폭은 남성보다 크고, 임시직과 일용직의 합친 감소폭의 규모도 남성보다 크게 나타났다.
민주노동연구원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고용충격이 여성에게 더 극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며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가 더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시기보다 여성 고용률이 증가한 상황에서 경제 위기 영향이 여성에게 집중된 이유는 뭘까?
민주노동연구원은 ‘여성 고용의 질적 확대’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민주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20년까지 남성은 상용직 비율이 임시·일용직보다 훨씬 높아 상용직을 중심으로 고용되고 있지만, 여성은 임시·일용직 비율이 상용직보다 높고 상용직 비율도 2011년이 돼서야 50%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2011년 전체 상용직 노동자 중 여성은 34.9%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이후 상용직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임시직 노동자 중 여성 비율도 지속해서 상승해 여성의 불안정 일자리 문제가 지속하고 있다.
금융위기 거치며 여성 비정규직 비율 껑충 뛰어
근로형태별 변화를 살펴보면 여성의 불안정 일자리 문제는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금융위기 당시 주요 특징은 남성 정규직 비율은 증가하고 비정규직 비율은 감소하는 반면, 여성은 정규직 비율이 감소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금융위기 이후 크게 증가했다. [출처: 통계청] |
민주노동연구원은 “2007년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하에 제정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불안정한 일자리를 법·제도적으로 ‘합법화’한 영향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여성에게 집중됐다”라며 “여성이 노동 유연화의 주요 대상이 됐고, 그로 인한 피해가 코로나19 위기 때 여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취업자 수가 많은 상위 5개 산업에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역시 불안정하다. 2020년 기준 여성 취업자가 많은 상위 5개 산업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도매 및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제조업’, ‘교육 서비스업’으로, 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취업자는 전체 여성 취업자의 63.2%를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꼽히는 돌봄 노동, 유통 판매 서비스직, 학교비정규직 등이 5개 산업에 포함된다.
▲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자 증감 인원 수를 살펴보면 여성 임시직 감소가 남성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출처: 통계청] |
코로나19 위기에서 여성 집중 5개 상위 산업의 노동자 감소는 여성 임시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체 산업에서 감소한 여성 임시직은 20만6천 명으로, 이 중 상위 5개 산업에서 감소한 임시직이 17만 명(전체 감소의 82.5%)이다. 여성 취업자가 많은 상위 5개 업종에서 고용 충격이 얼마나 큰지 나타낸다.
또 취업자가 증가한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의 경우 임시·일용직이 56.1%를 차지해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감염병 재난에 대한 대응과 돌봄노동이 ‘필수노동’으로 중요시되자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분야 취업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일자리 질에 대한 개선은 전혀 되지 않은 것이다.
▲ 코로나19 영향이 나타나기 이전 2019년 기준 종사자 지위별로 여성 비율을 보면 전반적으로 상용직은 해당 산업의 여성비율보다 낮고 임시·일용직은 높게 나타난다. [출처: 통계청] |
게다가 여성 노동자는 5명 중 1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작은 사업장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작은 사업장의 경우 여성은 상용직보다 임시·일용직 비율이 높아 노동환경이나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별이 개선되기 어렵고, 노동조합의 보호와 같은 집단적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여 경제 위기에서는 피해가 더 크다.
2020년 기준 사업장 규모별로 여성 노동자 분포를 살펴보면 노동 관련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 여성 비율이 201만9천 명으로 22.2%에 달했다. 여성 노동자 중 한 명 이상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이슈페이퍼를 작성한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후 33년 이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노동력에 부수적인 이차적 노동력, 가족의 부가노동자로 취급되고 있다. 기업은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 유연화 대상으로 여성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렇게 여성 노동의 위치가 구조화되는 동안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이제 성평등노동과 관련한 법과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작동하지 않는 원인에 대해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도들을 집행·운영하는 국가의 역할과 ‘성평등노동’과 ‘성평등사회’를 위한 국가 운영 철학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