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대법원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장이었던 김혜진, 박래군 두 활동가에게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최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중형을 확정했다. 2일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1형사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시국선언에 참여한 강원 지역 교사 6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100만 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나온 무죄 판결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한 이들의 유죄 판결이 이어지자 시민사회 역시 반발하고 있다. “진짜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왜 무고한 시민들이 또 다시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며 물으며 사법부의 결정을 규탄하는 것이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73개 단체는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기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에 대한 유죄 선고를 규탄했다. 이들은 앞으로 판결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유족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이민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 등 3명의 당사자도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유죄 판결 당사자들 “사법부 판결은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 부정하는 것”
김혜진 활동가는 “당신들의 추모는 추모가 아니라 사전집회였다고 말하는 법원은 진정한 추모와 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세월호뿐 아니라 모든 재난 참사에서 추모와 애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다. 순수한 추모는 존재할 수 없고 추모와 집회시위가 구별될 수 없다”라며 “대법원이 인용한 고등법원 판결엔 법을 지키고 평화롭게 집회 시위를 해야 한다고 나와있는데 정부가 이런 말을 하려면 법과 질서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행사될 것이란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더라도 우리 목소리가 들릴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6종 차벽을 쳐서 목소리를 가두지 않았나. 유가족을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쏘고, 헌화 행렬을 가로막기도 했는데 경찰과 법원이 평화집회를 운운하는 건가. 그 당시 많은 시민들은 정부가 정해놓은 준법의 틀을 무너뜨려서라도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길 원했고, 그게 추모와 애도의 방식이었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우리들은 불법 집회로 규정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공간을 연 사람들이다.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어렵게 열어낸 시민의 권리를 다시 후퇴시키는 대법원 판결마저 수용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한 사회봉사 명령 120시간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사회봉사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속죄를 명분으로 법원이 부과하는 것은 세월호 집회에 대한 모욕”이라며 “오히려 반성하고 속죄해야할 것은 시민을 향해 최루액과 물대포를 쏜 정부”라고 지적했다.
박래군 활동가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현장도 모르고, 현실도 모르고, 어떤 과정을 거쳐 1주기 추모대회가 열렸는지도 모른 채 경찰의 주장만을 받아 내린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결코 승복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박래군 활동가는 “참사 1주기 당시 상황들이 어땠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발표하자 유가족들이 광화문 바로 이 자리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엉터리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을 요구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구가 유가족을 떼쟁이, 시체팔이로 매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정부가 보도자료를 내고 단원고 학생, 교사들이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해 언론에 도배가 됐다. 50명 넘는 분노한 유가족이 이곳에서 삭발하고 안산으로 내려가 분향소에 있던 영정사진 끄집어내 가슴에 안고 상복입고 1박 2일 행진해서 여기에 도착했다. 그때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행사도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는데 마치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 관련한 추모행사를 원천 봉쇄한 것과 같았다. 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광화문 분향소로 와서 꽃 한송이를 놓고 싶어도 그걸 막았다. 분노한 시민들이 차벽을 뚫고 가서 유족들과 만난 게 세월호 참사 1주기의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민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도 전교조 조합원들이 수년째 세월호 관련한 재판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실장에 따르면 2014년 5월 청와대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시국선언을 게시한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정권 퇴진과 진상규명을 요구한 교사 242명이 교육부 고발로 4년째 재판 중이거나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에겐 정치저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이 중 교사 7명은 벌금형을, 48명은 집행유예를, 17명은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실장은 “교사들은 학교 일과 중에 재판장에 불려다니고, 다른 시·도로 전출되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이런데도 촛불 정부라고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교육부가 고발을 취하하면 되는 일인데, 교육부는 시국 선언 교사들에 대한 선처 의견만을 밝혔을 뿐”이라며 “세월호 진상규명 선언을 한 교사들에 대한 처벌과 탄압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정당성과 의의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부정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73개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사법부의 논리를 비판하며, “그간 침묵했던 대법원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단체들은 “사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평화를 깨는 것은 옳지 않고, 시끄러워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라며 “박근혜 정부가 계속 강조했던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를 법을 빌미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참사대응TF 서채완 변호사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한 이들에 대한 일련의 유죄 판결이 국제인권규범과 헌법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1주기 문화제, 추모제를 탄압한 공권력에 대한 평가는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국제인권규범이나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시민들의 저항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라며 “특히 사회봉사 명령은 앞서 말한 부당한 판결과 더불어 기억, 추모, 애도를 위한 행동을 범죄로 취급하고 속죄를 강요하는 조치에도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원조직부서장 강지은(2학년 8반 지상준 어머니) 씨도 “어째서 참사의 피해자 권리를 위해 활동하신 분들에게 이런 중형을 선고한단 말인가”라며 “약자의 편에 서서 소리를 내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이런 제약을 할 수 없도록 똑똑히 꾸짖어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