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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보증금 8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의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사망 며칠 전에는 집주인에게 월세 10만 원을 깎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 한 달 뒤인 8월 3일, 사건이 발생한 골목 주택가에서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됐다. 앞선 사건 현장과 건물 두 개를 사이에 둔 다세대주택이었다. 사망자는 노숙인 생활을 하다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집을 얻어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2
화곡동 빌라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5월, 방송국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의 전셋집이 유명 갭투자 전세사기꾼 소유의 주택인데, 혹시 피해를 본 것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확인하니 집주인의 이름이 화곡동 일대에 600채 이상의 빌라를 소유한 유명 갭 투기꾼의 이름과 일치했다.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와 같은 피해자는 수백 명이 넘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이 불량 임대사업자의 손에 넘어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거나 보호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들도 마련되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세보증금 미반환사고 피해액은 1조9499억 원에 달한다.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은 2017년 525억 원에서 지난해 6,468억 원으로 열 배 이상 늘었다. 서울시에서 ‘깡통전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서구이며, 그중 87%가 화곡동에 몰려 있다.
#3
강서구청 민원 게시판에는 화곡동 재개발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대개 빌라촌을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해달라는 요구들이다. 인접한 우장산동이나 목동과 차별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주민 B씨는 민원 게시판에 “위로는 푸르지오, 건너편 우장산동에는 힐스테이트가 자리하면서 화곡3동 빌라촌은 더욱더 낙후된 느낌을 받는다”라며 “우장산동에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계속 아파트 지어주고, 거기에만 아파트 브랜드가 몇 개인지! 화곡 3동은 그냥 버리는 거냐”라고 항의했다.
신축 빌라가 계속 들어서는 것에도 불만이 상당하다. 40년간 화곡동에 살았다는 주민 C씨는 “뉴타운 사업 문의만 하면 항상 지역 노후도를 얘기하는데 그럼 외지인들이 화곡동에 들어와 나홀로 아파트, 빌라 신축을 원천 봉쇄하던지 불허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강서구 화곡동은 집값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아 이제는 화곡동 집을 매도하고는 서울 타 구역에 이사 갈 수도 없어 부동산 시장에서 외톨이가 된 지 오래”라고 호소했다.
빌라촌, 무주택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강서구는 서울 25개 구 가운데 두 번째로 인구와 주택 수가 많은 지역이다.1 반면 주택 소유자 수는 송파구, 강남구, 노원구에 이어 네 번째다. 무주택자 수는 세 번째로 많다.2 기초생활수급 인원 역시 두 번째로 많다. 2019년 기준, 강서구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만4142명으로, 2014년(1만9042명)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강서구는 염창동, 등촌동, 가양동, 발산동, 우장산동, 공항동, 방화동, 화곡동 등 총 8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화곡동이다. 강서구 전체 인구의 32%(19만6312명)가 이곳에 살고 있다. 화곡동은 총 7개 동으로 나눠진다. 인구수는 화곡1동(5만4562명)이 가장 많고, 인구밀도는 화곡 8동이 가장 높다.
2013년 기준, 화곡1‧2‧4‧8동에서 소득이 월 100만 원 미만인 가구는 17%였다. 월 100~200만 원은 16.3%였다. 300만 원 미만의 가구는 51.7%로 절반이 넘었다. 2017년에도 이 지역의 17.5%가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가구였다. 300만 원 미만은 47.6%였다. 같은 기간, 강서구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00~400만 원 선이었다.3
강서구 주민의 47.4%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강서구 8개 동 중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가양동이다. 전체 주택 중 92.0%가 아파트다. 그다음으로는 염창동(85.2%), 발산동(72.8%), 등촌동(65.5%) 순이다. 반면 화곡동의 아파트 비율은 14.7%(1만2666세대)에 불과하다. 화곡2동의 95.4%, 화곡4동의 92.5%, 화곡본동의 94.1%, 화곡8동의 93.5%가 아파트 이외의 주택에 거주한다.
화곡동은 인근 김포공항때문에 고도제한에 묶인 곳이 많고, 주택법상 노후도가 충족되지 않아 재개발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빌라가 많고,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해 청년과 신혼부부의 거주율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 빌라가 많은 ‘저렴한 지역’은 없어져야 할 동네이자, 재개발의 대상이 된다. 이곳에 집을 소유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화곡동 재개발추진연합회’ 등을 구성해 재개발을 위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화곡동에 ‘빌라촌’이 아닌 ‘아파트 단지’가 세워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신축 빌라를 허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화곡동 개발과 관련한 각종 공약을 쏟아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7년 뉴타운 확대 개발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임기 내 뉴타운 25곳을 추가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4차 뉴타운 후보 지역으로 거론됐던 화곡동 일대는 개발 기대감으로 집값이 들썩였다. 2008년 총선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화곡동 뉴타운 지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약속을 받았다’라고 홍보했지만 선거가 끝난 뒤 오 시장이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라고 발언해 거짓 공약 논란이 일었다.
공인중개사 장석호 씨는 “화곡동은 예전부터 빌라가 많았는데 뉴타운 해제지역이 된 후 신축 빌라들이 많이 지어졌다”라며 “사실 아파트만 짓는 것은 맞지 않다. 아파트와 빌라, 단독주택, 공공임대주택 등 다양한 주택이 공존해야 하지만 지역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이 부동산 문제를 공급 부족으로만 끌고 오는 것도 문제다. 선거 기간만 되면 후보자들이 아파트 공급이나 재개발 같은 것만 이야기하며 주민들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갭 투기에 노출된 빌라촌 사람들
화곡동은 ‘빌라촌’이라는 별칭처럼 빌라 매매가 많다. 지난 7월 서울에서 빌라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은 은평구(856건)와 강서구(811건)다. 강서구의 빌라 거래 중 81%(657건)가 화곡동에 몰려 있다. 화곡동은 서울 전체 빌라 거래량의 9%를 차지하고 있다. 빌라 거래량이 높은 이유는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아 소액 투자가 쉽기 때문이다. 일명 ‘갭 투기’가 기승을 부리다 보니 전세 사기 사고도 빈번하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이다.
지난 10월 10일 HUG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집중관리 다주택채무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수백억 원대의 전세보증금을 먹튀하고 연락이 끊긴 ‘갭 투기꾼’은 129명이다. 이들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례만 2,160건이다. 세입자들의 피해액은 4,282억 원에 달한다. 피해자 중 20~30대 청년 비율이 무려 67.6%(1,459건)이다. 이들의 피해액은 2,877억 원으로, 평균 1억9718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본 곳은 강서구 화곡동이다. 이곳에서 발생한 20~30대 피해 건수는 전체의 34.1%(498건)다. 문제는 HUG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김상훈 의원은 “HUG의 통계에 잡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보증보험에 의해 추후 대위변제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보험조차 들지 못해 경매와 가압류 등의 불편과 고통을 겪는 청년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갭 투기 주택은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자격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 ‘갭투기시민모임’이 피해자 108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중 82.4%(89명)가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거절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이 거절된 사례는 2,900여 건에 달한다. 이들 중 가장 많은 39.3%(1,154건)가 소위 보증 한도가 초과된 ‘깡통주택’이었다. 다수의 임차인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피해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을 움직인 사람들
최근 몇 년 사이 최악의 갭 투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초기만 해도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돌연 방향을 선회해 민간 중심의 공급 확대 정책을 펼쳤다. 2017년 정부의 8‧2대책과 그해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여러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대출한도를 늘려주고, 취득세 및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감면해주는 조처였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꾼을 잡는다는 기조가 강했고, 정책 방향은 ‘핀셋 규제’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전반적인 주택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개인도 투기 대열에 가담하는데, 정부는 이를 예측하지 못했거나 방치했다”라며 “특히 정부는 2017년 말,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한다면서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실제 세입자를 보호하는 효과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으로 주택 투기를 더욱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집값 상승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알짜배기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들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기업이 소유한 상가업무 빌딩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8년까지 23년간 5대 재벌(현대, 롯데, 삼성, SK, LG)의 소유 토지자산은 12.3조에서 73.2조로 6배가 증가했다. 2016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2년간 약 1.5조가 증가했다. 당시 토지 자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기업은 삼성으로 5,995억 원이 늘었다.
재벌 대기업의 건물‧토지의 공시가격은 시세반영률의 44%에 불과하다. 이는 곧 재산세와 종부세 등 각종 세금에 대한 혜택으로 이어진다. 지난 8월 경실련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벌 대기업 등이 지난 15년간 받은 세금 특혜는 약 80조 원 규모에 달한다. 특히 이들의 토지 자산은 거의 비공개 정보여서 면적이나 장부가액, 공시지가, 비업무용 토지 현황 등은 모두 베일에 쌓여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인 소유 토지는 지속해서 늘어, 2007~2017년 동안 개인 보유 토지는 5.9% 감소한 반면, 법인보유 토지는 80.3%가 늘었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부동산과 주택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라며 “부동산의 사적 소유는 사적 정보로 연결된다. 현재 한국에서 부동산과 주택과 관련한 통계 데이터는 대부분 감춰져 있다. 기본 정보가 우선 투명하게 공개돼야 주택과 토지가 공적 정보라는 감각을 갖게 되고, 공적 통제가 쉬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워커스》는 오는 12월 특별호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주거 불평등 현황과 부동산 투기에 따른 피해 사례 등을 기획 보도할 예정이다.
<각주>
1. 2012년 6월 기준, 송파구는 65만8670명, 강서구는 57만7519명이 살고 있다.
2. 주택 소유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송파구(16만9216명), 강남구(14만6237명), 노원구(14만2913명), 강서구(14만1814명) 순이며,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구는 관악구(12만7815명), 송파구(12만9885명), 강서구(12만7815명)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