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난민들의 운동, ‘사적 소유’를 흔들어야 한다

[특집호]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정책팀장 인터뷰


[출처: 이승훈]

경의선 공유지 운동은 어떻게 마무리됐나.

대한민국 정부가 경의선 공유지 구성원 11명을 상대로 (36억여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피해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진 퇴거했다. 퇴거 후 입장문을 발표하고, 점유는 끝나지만, 시민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감시하겠다고 했다. 올해 백서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이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하던 때 강제퇴거를 당했다. 국가 소송이 더 부당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청은 물론이고 철도시설공단, 서울시, 국토부, 국회, 청와대 등 다양하게 접촉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토지의 ‘경계’와 관련한 문제, 즉 소유권자가 아닌 자는 발언할 수 없다는 한국 사회의 명확한 원칙을 확인했다. 겉으로 보이는 혁신에 비해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칙적 기준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한 거다.

경의선 공유지 외에도 도심에서 커먼즈 운동이 가능한 곳들이 있나

많다. 흔히 동네에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자투리땅이 있지 않나. 푯말을 보면 구청이나 공공기관의 소유인 곳이 많다. 개발 사업을 목적으로 막아둔 공간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건 그렇게 방치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활용하자는 거다. 경의선 공유지 활동 과정에서 ‘도시 난민’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국공유지가 도시 난민이 잠시나마 정착하는 곳으로 기능하면 좋지 않겠나.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국공유지를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과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저들이 땅을 빼앗길까 봐 두려운 것도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주택 · 토지 점거 운동이 활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적 특색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복지정책 연구자들이 한국을 소위 ‘자산 기반형’, ‘자산 형성형’ 복지국가 모델로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분배의 과정이 아닌, 개인의 근로소득을 통해 자립을 돕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수성가형’모델이다. 그래서 세입자 운동 같은 경우도 궁극적으로는 자산을 획득하기 위한 성격을 갖고 있다. 사건의 해결이 임대주택이나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즉,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이 정주 또는 거주의 권리를 만드는 방식이 아닌, 자산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다. 사유재산과 관련한 일반적인 상식이 대중운동, 민중운동에도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거다. 내 것이 아닌 곳을 점유하고 거주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에 심리적인 장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부동산 등도 확산하고 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주거 불평등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나.

협동조합 주택 등의 수단이 불평등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주택을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거주자들이 공동체적 운영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거주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택이든 협동조합이든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의 주거 실험에 가깝다. 한계가 아니라 원래 그런 목적이다. 사회주택 방식으로 위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다. 주거 불평등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다른 결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주택 가격이든 도시 정책이든,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고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출처: 홍진훤]

시간이 지나면서 진보정당이나 민중 진영의 부동산 정책도 대체로 온건해졌다.

‘1가구 1주택’이 진보적인 주장이라는 게 한국 주거 운동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보정당이든 어디든 이것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주택 소유자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접근한다. 하지만 ‘1가구 1주택’과 ‘다주택 규제’를 세트로 다루면 정책이 희석될 수 있다는 오판을 한다. 다주택자의 주택을 환수해 재분배하는 것이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면, 1가구 1주택 공급은 더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공급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이라도 1가구 1주택 정책은 공급 위주의 정책일 수밖에 없고, 그런 오류를 반복해왔다고 본다. 집이라는 자산을 불안한 삶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두는 것이다. 1가구 1주택은 각자도생이라는 허약한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그 언어를 민중 진영이 같이 쓰고 있던 것이라 생각한다.

공공임대주택 건설 역시 공급 위주의 정책에 불과하다고 보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다. 문제는 집과 집이 필요한 사람이 미스매칭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매칭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사적 소유에 관한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를 제한할 수 있느냐 같은. 하지만 그걸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임대주택 공급에서도 사적 주택을 재분배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이지만, 공급 앞에 ‘신규’가 숨어져 있으면 좋은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수 정부가 만들어내는 신도시 정책을 진보 진영이 동일하게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겠나.

현재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임대주택이 훨씬 단순화돼야 한다. 현재 임대주택은 80년대부터 공급된 영구임대, 재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국민임대, 이 밖에도 쉬프트, 뉴스테이 등의 유형으로 나뉜다. 현재와 같이 특정 대상이나 계층만 누리는 것은 굉장히 나쁜 주택이다. 유형화된 임대주택 정책으로는 현재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다양한 거주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내가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하고, 직장 위치에 따라서든 부담 능력에 따라서든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임대주택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입주 공고는 일회적으로 나오고, 시기를 놓치면 들어갈 수도 없다. 또한 현재는 시세나 건설비용에 바탕을 두고 입주 자격을 부여한다. 이럴 경우 더 싸게 지어야 한다는 유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거환경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임대주택 유형과 입주 자격을 단순화하고, 그것을 부담하는 기준 역시 거주자의 부담 능력에 따라 차등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융통성 있게 열어둬야 빈집이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재벌 대기업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늘려왔고, 현재 부동산값 상승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 있기도 하다. 재벌 대기업의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를 우회하고는 현재의 부동산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단순한 문제 해결 방법이 있다. 누가 주택을 공급하느냐, 즉 공급자의 정의를 다시 하면 된다. 대기업 건설사가 주요 공급자가 되는 것은 공급량을 크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이다. 소규모 단위인 정비구역을 광역화해 재개발하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재개발이 가능한 건설사는 대기업들이다. 외국의 경우 대형 건설사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고, 가급적 나서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쓴다. 일본의 디벨로퍼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지역을 개발한다. 독특하게 한국에서는 대형 건설사들 위주로 단지형 공급을 하며 건설 자본이 많은 이윤을 축적했다. 건설 관련 전문가들도 대형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으로 돈 버는 곳은 한국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한다. 그 구조를 깨야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가장 시급하게 요구해야 할 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동산 정보 공개가 먼저 필요하다. ‘사적 소유’는 ‘사적 정보’로 귀결된다. 그래서 한국의 주택과 부동산 통계 데이터는 대부분 감춰져 있다. 이러면 효과적인 부동산, 주택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신도시 개발 차익이 얼마가 남았느냐를 놓고 경실련과 국토부가 싸우는 과정에서도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다. 국민은행 같은 사설 은행에서 만든 주택가격동향 같은 것이 근거가 된다. 일차적으로는 다주택 소유자 현황과 임대주택 현황, 종부세 대상자에 대한 지역별 현황, 상가 임대료 관련 공시 등을 공개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주택과 토지가 공적 정보라는 감각을 가지게 된다. 공적 통제가 쉬워지는 거다. 베를린 주택 사회화 운동의 모태가 된 것은 세입자 조합이 가진 힘이었다. 그 힘은 주택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서 나왔다. 분쟁이 생겼을 경우 조합에서 고용한 변호사가 지원하는 등의 활동도 했다.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사회적 동의가 만들어지는 거다. 사적 소유에 대한 감각을 흔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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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다. 문제는 집과 집이 필요한 사람이 미스매칭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매칭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사적 소유에 관한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를 제한할 수 있느냐 같은. 하지만 그걸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임대주택 공급에서도 사적 주택을 재분배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이지만, 공급 앞에 ‘신규’가 숨어져 있으면 좋은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수 정부가 만들어내는 신도시 정책을 진보 진영이 동일하게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겠나.

  • 이수헌

    주택문제는 사적소유의 부분적인 문제임.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가 나무의 뿌리와 줄기라면 주택은 잎사귀와 열매같은 것임. 엥겔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도 노동력과 지본의 관계에서 주택문제를 바라봄.(경락이가 잘 받아쓴 글만 보고 썼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는 2학년으로 진학하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