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와 소로우 전에 벤저민 레이가 있었다

[서평] 마커스 레디커, 박지순 옮김, 『벤저민 레이』, 도서출판 갈무리, 2021

호기심이 일었다. 선원 출신의 노동자이자 노예제 폐지를 외친 사람이라는 설명에 ‘노동계급 출신의 급진주의자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가 저신장 장애인이었고, 인생의 마지막 기간 동안 동물들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동굴에서 과일과 채소, 우유와 꿀만 먹는 채식을 하고, 동물 털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옷을 짜 입었으며, 말도 타지 않았다는 설명에 흥미가 생겼다. 요새 말로 하면 ‘교차성’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노예제를 가장 먼저 거부하기 시작했던 퀘이커 교도들조차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노예를 소유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요즘 시대에서도 급진적인 영역들을 교차하며 살았다니 그 삶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퀘이커 교도라는 점에도 궁금증이 일었다. 퀘이커는 평화운동, 특히 병역거부운동과 연관이 매우 깊은 평화주의 기독교 교파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역거부’ 하면 떠오르는 종교가 여호와의증인이겠지만 세계적으로는 병역거부를 대표하는 종교는 퀘이커다. 한국전쟁 직후 군산에서 전후 복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은 존 콘스는 퀘이커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참전을 거부한 병역거부자다. 의사였던 그는 대체복무로 한국전쟁이 끝난 한반도의 군산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것이다. 퀘이커는 또한 한국 병역거부 운동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병역거부 운동을 제안한 것도, 병역거부 운동이 유엔 메커니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책자를 건넨 것도 모두 퀘이커의 평화활동가였다. 나는 비록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병역거부운동 덕분에 퀘이커에 친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출처: 도서출판 갈무리]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술술 잘 읽히진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닌,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인물인 벤저민 레이의 삶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벤저민 레이에 대한 공식 기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레이가 남긴 책과 몇 권 되지 않는 레이에 대한 책, 그리고 레이가 참여했던 퀘이커 모임의 공식 문서 등 확실한 자료에 담긴 모습만으로 삶을 복원하다 보니 척추장애인, 노예폐지론자, 퀘이커 교도,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다이내믹이 실감 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굉장히 종교적인 인물이었던 벤저민 레이의 노예제 폐지 주장 또한 종교적인 논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고 신앙생활마저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매력적인 인물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 일어나는 몰입감과 일체감이 쉽게 일지 않았다. 아마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읽는다면 분명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들, 특히 차별과 억압, 폭력에 대한 종교적인 논의를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신앙인들만이 이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벤저민 레이라는 인물이 가진 독특한 매력은 종교적인 논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전달된다. 매력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레이는 평생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이었다.

내가 주목해서 봤던 것은 벤저민 레이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펼친 실천들이다. 그의 구호와 주장은 당시의 권력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급진적이었고 과격했는데, 그의 주장은 종교적인 동시에 굉장히 논리적이었고 그가 노예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한 일련의 실천들은 굉장히 전략적이었다. 덕분에 벤저민 레이는 노예제를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벤자민 레이》, 137쪽)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의 실천은 종교적인 신앙을 발현하는 것 혹은 개인의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현대적인 의미의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레이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했던 것들 또한 현대의 사회운동 활동가들과 무척 닮았다. 그는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마치 현대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처럼 움직였다.

사회운동은 그 사회에서 보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치를 옹호하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보편성을 획득한 주류의 목소리는 굳이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사회운동은 주류에서 배제된 목소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벤저민 레이는 주장하고 설득하는 일을 일상의 실천으로 삼았다. 퀘이커 회합에 참여해서 노예제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직접 《무고한 이를 속박해두는 모든 노예 소유자, 배교자들》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퀘이커 회합에서 끌려 나오거나 수차례에 걸쳐 퀘이커교도 자격을 박탈당하면서도 호소하고 설득하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창의적인 직접행동가였다. 직접행동은 소수가 다수의 주목을 받기 위해 택하는 효과적인 사회운동 전술이다. 많은 수를 조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당연하게 대규모 집회를 조직해서 권력자들을 압박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소수의 지지자만 있거나 사회에서 거부반응이 큰 이슈를 알려야 하는 활동가들은 창의적이고 극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직접행동을 기획할 때 어려운 점은, 우리가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전달하면서 주목을 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좋은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는 방식으로 외치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핵심적인 메시지를 스스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벤자민 레이는 이 지점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노예제의 핵심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주목도 높은 퍼포먼스나 연극을 활용할 줄 알았다. 예컨대 설탕과 담배가 노예 노동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알리면서 찻잔 접시를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한다든지, 노예를 소유한 퀘이커 교도들에게 가짜 피를 뿌리는 게릴라 연극을 통해 노예무역의 폭력성을 고발했다.

그의 직접행동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의 메시지는 늘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고립을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옳은 말을 하기 때문에 탄압받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결국 소수의 지지자를 제외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고립을 스스로 강화하게 된다. 레이는 철저하게 설득해야 할 사람들과 고립시키고 비난해야 하는 사람을 나눴다. 보통의 퀘이커 교도들의 양심에 호소했다. “친애하는 친우들이여, 모든 진지한 마음을 담아 몸과 영혼의 무릎을 굽히고 겸손하게 간청하고 탄원합니다.”(《벤자민 레이》, 137쪽)

반면 노예를 소유하며 노예제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권력자들을 누구보다 심하게 비난했다. 노예제 반대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는 않지만 노예를 두지 않는 소극적인 지지자들의 행동을 촉구했고, 노예제에 대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의 양심에 호소해 그들이 노예제 폐지를 찬성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는 사회운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부당한 권력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거부’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기 1세기 전, 노예제 폐지를 위해 부당한 권력을 거부하는 불복종 전략을 쓴 셈이다. 그는 소극적으로는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고, 더 적극적으로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인 설탕, 담배 따위를 사지도 쓰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부당한 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퀘이커 회합마다 찾아다니며 노예를 소유하고 노예제를 옹호한 권력자들이 설교할 때 훼방을 놓았다. 이런 행동은 마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 전쟁기지 건설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 차량이 다니는 길을 몸에 쇠사슬을 감고 봉쇄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평화활동가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책 한 권을 읽고 벤저민 레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그를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라고만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상이 시대를 앞서가서, 그의 실천이 급진적이어서, 끝내 타협하지 않는 혁명가였다는 점도 분명히 대단하지만, 그가 대단히 뛰어난 사회운동 전략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될 것이다. 노예제라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보편적인 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상, 신념, 의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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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의 질문들>, <평화는 처음이라> 저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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