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오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페이스북에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일곱 글자가 올라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기존의 여성가족부(여가부) 개편 공약에서 선회한 것이었지만 꾸준히 보수적인, 극우 세력에 화답하는 태도를 비쳐 왔으므로 아주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이 있다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올린 그 태도다. 이유든 대안이든 밝혀야 논쟁이라도 가능하다. 설득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이후로도 이렇다 할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원론이라고 하기도 뭣한, 문제가 많으니 우선 폐지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수준의 말을 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무려 핵심공약이 됐다. 윤 후보 측이 2월 13일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여성가족부 폐지” 여전히 이렇다 할 내용은 없다. “‘가족’ 우선 정책이 아닌 ‘여성’ 우대 정책 위주의 불공정 정책을 다수 양산하는 해당 부처를 폐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청년들과 ‘가족’의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는 별도 부처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공정과 가족을 영문 모르게 엮는 말밖에는.
[출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홈페이지] |
‘젠더 이슈’가 뜨거운 대선이라지만 실은 이런 식이다. 보수 청년 남성층에 호소하며 편 가르기에 치중한다는 평을 받지만, 엄격히 말하면 편 가르기조차 아니다. 편을 가른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는 “청년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시대적 소명이 다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여가부가 필요하다고, 오히려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청년도 이 시대의 사람도 아니다. 설득도 해명도 당연히 필요치 않다. 반대편에 두는 것이 아니라 지워버린다. 혐오의 정석이다.
답변도 토론도 거부할 때
길게 말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홍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윤석열 후보는 각계의 정책 질의를 잇달아 무시하고 있다. 경실련, 군인권센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의 질의는 물론 경남도민일보의 지역 현안 질의, 오마이뉴스의 교육 정책 질의, 한겨레의 성평등 정책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논란이 되자 오마이뉴스에는 뒤늦은 답변을 보냈다.) 대선 후보자 방송토론조차 그는 몇 번이나 거부했다. 적기에 강력한 말을 던지는 전략 같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관되게 지우고 있다.
실은 예의 “청년들”과 “시대”를 향해서도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 채, 최저임금법은 없고 불량식품만 판치는 나라를 향한 여정에 따라오라는 신호다. 논쟁 상대도, 논쟁거리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은 채 그가 거부하는 것은 그저 답변이나 토론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다. 실체 없는 ‘우리 편’만으로 정치는 불가능하다. 아무 말도 오갈 수 없는 그곳은 형식이야 어떻든 독재 이외의 것이 일어날 수 없는 곳이다.
인정받은 이들 사이에서조차도 ‘공정’이라는 것이 실현되지는 않으리라는 뜻이다. ‘공정한 사회’ 공약 목록에는 ‘공정한 입시 및 취업환경 조성’이 포함돼 있지만 세부 공약으로는 노조 고용세습 근절, 강성노조 불법행위 엄단 같은 것들이 있을 뿐 기업이나 권력의 부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공약 제출 이틀 후인 15일, 대법원은 딸을 KT에 부정 채용시킨 혐의를 받은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약에는 빚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말도 있지만 재산의 대물림은 역시 언급하지 않는다. 청년을 위한 공정한 출발선이 어디에 놓일지는 빤하다.
하지 않은 말과 평등
물론 지울 수 없는 이들에게는 충실하게 답한다. 2월 14일 한국교회총연합 등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 관계자를 초청해 기독교 10대 정책 발표회를 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양측 모두 국민적 합의니 여론 수렴이니 하는 말을 반복한 가운데 윤 후보 측은 열의 넘치게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별도 제정의 주된 목적이 동성애·성소수자 보호로, 이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반(反) 민주적이며 다른 차별을 야기한다는 반대 여론도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종교계 사립학교 자유 보장 등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호의적으로 답했다. 여기에는 사전 답변서 역시 빠짐없이 제출했다.
지난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의 그도 그랬다. 답해야 할 곳에는 잘 답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총장 후보자 서면 질의 답변 때의 일이다. 다만 그때는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나 동성 간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 6에 대한 질의에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돼야 한다”라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했다. 권력을 좇아 원칙을 버리는 사람이거나 그때그때 답해야 할 곳에 해야 할 답을 할 뿐인 사람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정받은 이들 사이의 공정 역시도 의심할 수밖에.
이런 식의 대답은 아무리 성실하게 한들 정치를 이루지 않는다. 서로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정치적 존재임을 부정하는 일일 뿐이다. 각각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삶을 보장하는 일, 그리하여 평등이든 공정이든을 실현하는 것과는 너무도 먼 일이다. 사라지는 것이 여가부만은 아니게 되리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차별금지법만은 아니게 되리라. 말이 없어지고 서로가 없어질 때 남을 것은 많지 않다. 그가 해 온 무수한 틀린 말만큼이나 그가 하지 않은 말들에 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