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이백윤에 던진 표는 사회주의 씨앗이자 변화의 가능성”

[인터뷰] ‘이백윤 후원회장’ 홍세화,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목소리에 투표해 달라“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노동당 소속 기호 7번 이백윤 후보에 대해 지지를 호소했다. 홍 전 대표는 노동당 당원이자 당 후원회장으로, 이번 대선에서 ‘이백윤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이백윤 후보가 얻는 표만큼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이번 사회주의 대선 후보의 출마는 사회주의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억압‧왜곡돼 있다며 “사회주의 이념이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국가나 권력 체제에 의해 사회주의 이념이 왜곡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현재의 진보정치에 대해서는 “변혁성과 급진성이 필요하다”라며 “사회주의라는 작은 꽃봉오리를 피우기 위해 좀 더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목소리에 표를 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홍세화 전 대표는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20여 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1995년에는 파리에서 택시 운전사를 하며 경험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과 한국 사회 과제 등을 다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했다. 2002년 영구 귀국한 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지만 ‘일심회 사건’으로 분당 사태가 발생했고, 진보신당으로 정치 공간을 옮겼다.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과 분당 등 진보 정치가 통합과 분열을 거듭했지만, 그는 진보신당 대표를 거쳐 후신인 노동당의 당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돈이 없어 노역을 가야 하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출처: 은혜진 기자]

“한 번의 시도로 ‘사회주의 실패’ 규정할 수 없어…
남한에서 사회주의 지향과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백윤 후원회 회장을 맡게 된 계기가 있나.

현재 노동당 후원회장이다. 사회변혁노동자당과 노동당이 경선을 통해 이백윤 후보를 선출했다. 그 과정에서 이백윤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남한 대선에서 사회주의 기치를 내건 후보가 나왔고, 내가 속한 당의 후보이기도 하지 않나. 중대한 소임이라고 생각해 맡게 됐다. 내가 사실 수완이 좋거나 돈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회주의의 지향과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후원도 참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백윤 후보의 출마를 어떻게 보셨나.

이백윤 후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근래 들어 알게 됐는데 굉장히 훌륭한 활동가여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백윤 후보가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100% 비정규직 공장인 동희오토 노동자였지 않나. 기아차 직원도, 동희오토 지원도 아닌 하청의 하청 구조 속에서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현대차 본사 앞에서 농성하며 싸웠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서산 지역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한 운동을 했다.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인데, 그동안 활동가로서 정말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대선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실패한 구체제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나.

과연 한 번의 시도로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 이념이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국가나 권력 체제에 의해 사회주의 이념이 왜곡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에는 경로 의존성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에 사회주의 이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기존의 국가체제, 권력과 관료주의 시스템에 이념이 적용됐을 때 엄청난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한두 번의 실험으로 실패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지배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회주의’가 국민 정서에 다가가기 힘든 점이 있지 않나.

처음은 항상 어렵다. 옛날 민주노동당 시절에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면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공성의 의미로 친화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남미를 눈여겨보고 있다. 보리치 정권이 들어선 칠레에서는 과거 실패를 거울삼아 제헌의회가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면서 친화력을 넓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면 사회주의 지지 가능성 열려…
사회주의는 인간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주체가 되는 사회”


SNS에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느낀다’라며 ‘의식’보다는 ‘감정’이나 ‘정서’가 앞선다고 썼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엄청나게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인간으로서 갖고 있던 인간성이나 공감 능력이 지배 이념에 의해 억압 혹은 왜곡됐다고 본다. 페이스북에도 썼지만 내가 의식이 갖춰져 있어서 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동숭동에서 평화시장까지 울면서 걸었던 것이 아니다. 어떤 공감 능력 같은 것이 앞섰고, 이후 사회 구조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의식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나는 이 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람시가 이야기했듯, 부르주아 지배 세력은 학교, 미디어, 교회, 정당 등 지배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가짜 의식을 심는다. 어릴 때부터 경쟁 구조에 매몰되다 보니, 연대나 공감을 상실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에도 사회주의자가 꽤 많을 것 같은데.

감성적으로 그렇다고 보는 거다. 예컨대 1946년에 미군정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약 8,500명의 표본 집단 중 70%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선택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정확히 꿰고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당시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더불어 살기 위한 전망을 막연하게나마 사회주의에서 찾지 않았을까. 그들을 의식화된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억압과 왜곡에서 벗어나면 더욱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를 지지할 가능성은 열릴 것이고, 이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부분에 있어 의식의 문제가 중요해질 것이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나.

김용균 씨나 구의역 김 군이 사망했을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보여준 공감 능력이 있다. 이는 서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사회주의적 감성이라고 본다. 하지만 산재로 세상을 떠난 대다수의 노동자에게는 서사가 부여되지 않는다. 왜 그것이 정치화되지 못할까. 미디어가 그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바꾸려 한다면 다를 수 있지만, 현실의 미디어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초‧중‧고 모두 사회 교과목이 있다. 왜 사회 과목을 공부하나. 사회를 알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인데, 그러면 제일 중요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노동 배제적인 교육으로 의식의 배반을 형성하게 되고, 엄청난 왜곡이 일어나는 거다. 자신은 노동자인데 반노동 의식을 갖게 되고, 여기에 미디어의 문제까지 덮치면서 존재와 이반된 의식을 소유하게 되는 거다.

사회주의를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인간의 몸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주체가 되는 삶이다. 인간이 거하는 모든 터는 ‘일터’, ‘집’, 그리고 ‘배움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터에서 억압이 일어난다. 집에서는 가부장제로 여성과 아이들이 억압당한다. 배움터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한다. 장애인, 여성, 이민자, 소수자 등 모든 사람의 몸이 거하는 곳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

“진보 정치 약화했지만…사회주의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진전”

10년 전 김소연 노동자 대통령 출마 당시에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와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

당시는 아직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나는 사회주의를 내걸었다는 것 자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 다만 전반적으로 진보 정치 세력이 다소 약화한 측면이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진보정치 세력이 지리멸렬해진 과정이 있고, 또 하나는 흔히 ‘민주당 이중대’라고 이야기해 온 정의당의 행보가 부메랑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사회주의 기치를 내걸고 대선에 출마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여럿 나왔다. 현재의 진보 정치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한국 사회의 모순 중 어떤 것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각 정당의 차이가 나타난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을 통해 보면, 한국은 분단 모순이 있다. 이것이 한국의 진보 좌파 운동을 굉장히 어렵게 만든다. 다른 사회에는 없는 모순이 우리 사회에는 아주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리고 계급 모순이 있고, 한국은 지역 모순까지 있다. 이와 함께 젠더 모순, 생태 모순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그중 어떤 문제에 방점을 찍는지가 각자의 지향을 달리하는 요인이 된다. 나는 이제 모두가 많이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관여하거나 전공하거나, 아니면 어떤 인연으로 활동해 왔던 분야를 기본 모순으로 보고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지금 관여하는 활동은 한국 사회 모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이것이 참 어려운 문제기도 하다.

노동당 역시 그런 지점에서는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는 생태 모순, 페미니즘 모순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의 정당법인데, 현재는 스페인 포데모스 식의 선거 연합이 불가능한 구조다. 칠레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도, 5년 전 한국의 촛불보다 좀 더 강한 저항을 통해 제헌의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개헌 정도로는 안 된다. 지금의 구조는 과도한 기득권 중심의 금권 정치다. 정당법이나 선거법에 의해 소수 정당이 약진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혀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노동당까지 당이 쪼개지고 갈라지는 부침을 겪어왔다. 과거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동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2년에 프랑스에서 귀국하고 나서 한 달 있다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나는 정치적 동물로서 진보 정당의 일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한국에 합법적인 진보 정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가 1979년 박정희 정권 말기니 진보 정당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귀국했을 때 민주노동당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설렜었다. 그런데 일심회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분화하게 됐다. 내 상식으로 정당은 최고 형태의 정치 결사체인데, 그 위에 뭐가 또 있던 거다. 용납할 수 없었다. 진보신당으로 분화된 후 2008년 총선에서 실패했다. 그러면 현장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소위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를 비롯한 사람들이 의회주의에 빠져서 통합진보당으로 옮겨갔다. 결국 총선이 끝나자마자 통합진보당은 완전히 깨졌고, 진보 정치 세력은 파국과 절멸을 맞이했다. 저는 그분들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봤다. 그때 깜냥도 안 되면서 진보신당 대표를 맡게 됐다. 정치 지형이 워낙 우경화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찌 보면 외골수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껏 후회하지 않는다. 진보 좌파 정당의 당원이 돼야 하기에, 노동당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당으로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백윤 사회주의 후보의 출마는 사회주의의 씨앗…
좀 더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목소리를 지지해 달라”


최근 노동당과 사회변혁노동당이 합당했다. 어떤 기대가 있나.

정의당에서 ‘사회민주당’이라는 당명조차 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진보 정당이 과연 무엇을 선도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진보 정치에 변혁성과 급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변혁성을 내걸었던 당과 함께 하게 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고 더욱 기대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군소정당에 표를 주는 건 ‘사표’라는 얘기가 반복된다. 이백윤 후보에게 투표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이백윤 후보가 얻는 표만큼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이 다급해지면서 결선투표제 이야기를 꺼냈다.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절대 사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1차 투표는 사표 걱정 없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그것의 분포가 사회 구성원의 정치지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이백윤 후보의 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만큼 지지를 받았구나’라는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번 사회주의 대선 후보의 출마는 사회주의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유권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항상 변화를 처음 시도할 때는 모든 것이 불온해 보인다. 노예해방을 처음 부르짖었던 사람들, 여성 해방을 외쳤던 사람들 모두 처음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불온하게 보였으며,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현재의 어린이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을 과연 지금의 경쟁 사회에서 살도록 내버려 둘 수 있나.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를 보듬지 않는다. 사회가 사회를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지금은 작은 봉오리지만 이것을 같이 피울 수 있도록 좀 더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목소리에 표를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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