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5일 이재명과 함께하는 탄소중립 백만행동 출범식에 참석한 양이원영 의원. [출처: 양이원영 의원 홈페이지 http://yangyi.kr] |
윤석열 새 정부가 5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해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와 시장화 추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가운데,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두고 “우리가 했어야 할 개혁”이라며 “원전만 빼면 보다 선진화되는 방향”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대선 시기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기후에너지 특보를 맡아 에너지 공약을 설계한 양이원영 의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전력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김성환, 이소영 등 같은 당 소속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들도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어 새 정부 초기 전력시장 민영화가 급속도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한전의 전력 독점 판매 구조를 지적,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 확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경제2분과는 이날 브리핑에서 “PPA(전력구매계약) 허용범위 확대 등을 통해 한전 독점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다양한 수요관리 서비스 기업을 육성하겠다”라며 “기저전원·저탄소전원(수소 등) 대상 계약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도입 등 전력시장 다원화를 추진하고, 경쟁 기반의 전력시장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정책 방향에는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원전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공약 역시 포함됐지만 기존 공약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발표된 ‘시장 기반 수요 효율화’ 정책은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와 시장화 추진 계획을 명시화한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고 “이번 발표는 ‘정상화’라는 탈을 쓴 ‘민영화’ 계획”이라며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정의로운 전환을 가로막는 에너지 민영화 계획을 철회하라”라고 촉구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우회적 민영화' 이미 진행 중…민영화 계획 철수해야"
▲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당선 후 인사하는 윤석열 당선인 [출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해서 통과시킨 기업 PPA가 전력판매시장 개방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는데, 그것이 새 정부에서 현실화될 위험이 커졌다”라며 “연 60조 원에 이르는 전력시장의 민영화는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를 기업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파괴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미 ‘우회적 민영화’를 통해 민자발전 비율이 30%를 초과했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LNG와 석탄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포스코, SK, GS 등 대기업은 높아진 에너지 가격 속에서도 대부분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전가해 초과수익을 얻고 있다”라며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 전기요금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돌아가는 비용도 크게 증가해 2017~2021년 동안 11조원에 달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정부들은 민간기업의 LNG발전소와 석탄발전소 사업을 대거 허용했으며, 공기업은 민간 기업과 합작법인(SPC)을 만들 경우에만 사업을 승인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민간기업에 문호를 활짝 열고 이들을 주요 플레이어로 승인했다.(1)
단체는 또한 인수위가 제시한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원칙 확립’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는 윤석열 당선인의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 공약을 뒤엎는 정책이자, 민자발전사 지원 구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또 현재의 낮은 전기요금으로 대기업이 특혜를 보고 있으며, 이들은 각종 감면 혜택을 받아 매년 1조 원 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력산업의 문제는 공공성 원칙을 재확립하고 전기요금의 불평등한 이전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의원, 윤석열 전력시장 개방 정책 두둔…
"국민의힘 밉지만 전력시장 개혁 이슈 부러워"
이런 상황에서 양이원영 의원이 윤석열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두둔하는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성명을 반박하는 듯한 양이원영의 발언은 기후 활동가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누군가 양이원영 의원의 메시지를 공유하면서 알려졌다.
양이원영 의원은 28일 메신저에서 “한전 독점은 우리 사회 오래된 기득권”이라며 “(전력 판매시장 개방와 전기요금 정상화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재생에너지 전기와 전력수요 간의 차이를 채우는 유연한 전력 공급을 위해서도 자유롭게 전기를 사고파는 시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낮은 이유가 석탄발전과 원전 외부비용을 반영하지 못한 싼 전기요금 문제이며, 도소매 시장을 한전 독점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궁극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면 전기요금 제로 시대가 올 수 있지만, 전환의 시기에는 비용이 든다”라며 “싼 전기요금을 유지한다는 주장은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하지 않겠다는 주장에 다르지 않다”라고도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같은날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린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최태원 회장을 언급하며 “최태원 회장이 유연성 자원과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판매시장 개방 등이 필요하다고 사석에서 직접 얘기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밉지만 우리가 하지 못한 전기요금과 전력시장 개혁 이슈를 들고나온 것은 부럽다”라고도 이야기했다.
SK는 대표적 그린워싱 기업으로 ‘탄소중립 휘발유’를 홍보하거나, 1000만 톤이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호주 가스전 개발 사업 등에 참여하면서도 ‘이산화탄소 없는 LNG’ 등을 홍보해 그린워싱 논란이 크게 일기도 했다.
"한전 매각만이 민영화 아냐, 전력 시장 개방시 기업 잠식은 자연스러운 수순"
양이원영 의원은 전력시장 개방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민영화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시 28일 발표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에 대해 전력시장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들이 쏟아지자 “한전의 민영화 여부를 논의한 적 없다”라며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력시장 개방을 이야기하면서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결국 기업에 잠식될 수밖에 없는 전력시장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곧 민영화라고 지적한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이들은 ‘한전 매각’만을 민영화로 본, 가장 좁은 해석을 하고 있다”라며 “이는 민영화에 대한 오도”라고 비판했다. 구 집행위원은 “민영화는 원래 공공부문의 역할을 민간 기업에 넘기는 건데, 매각 방식일 수도 있고, 점차 시장을 열어 기업이 잠식하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라며 “한국의 민영화 방식은 2000년대 후자로 굳혀졌다. 민영화에 시민의 반감도 있고, 기업도 처음부터 과감하게 뛰어들기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방법으로 철도도 민간기업 운영을 허하면서 민영화 반대 투쟁이 일어났는데, 이 논리를 뒤바꾸는 건 민영화를 가리는 은밀한 술책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1) 구준모, ‘체제 전환의 공공성과 민주적 통제 : 에너지와 교통을 중심으로’,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22.03.29)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