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등 4개 단체는 2일 오전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공개했다. 또 사건 처리 과정에서 쿠팡 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발생한 피해 상황을 지적하며, 고용노동부에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지속적인 ‘반성문’ 요구…
가해자와 피해자, 여전히 한 공간
기자회견에는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들이 직접 발언에 나섰다. 최효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부분회장은 퇴근 선전전을 하는 과정에서 관리자의 협박과 괴롭힘이 있었다고 밝혔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피켓팅을 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타 공정 퇴근 대기줄에 선 것이 화근이 됐다. 최효 부분회장은 "관리자 A씨가 다른 공정에 계속해서 줄을 서면 전체 노동자들의 퇴근 시간을 늦추겠다고 협박했다"라며 "결국 내가 있는 공정에 줄을 서기로 합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실관계 확인서에 서명하라는 지시였다"라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의 사실관계확인서는 관리자의 지시를 거부한 노동자가 작성하는 ‘반성문’의 성격이 짙다. 이를 자주 작성할 경우 재계약 시 인사고과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최효 부분회장에게 주어진 사실관계확인서의 내용은 ‘타 공정 노동자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하나 사실무근’, ‘개인 편향적 주장을 함’. ‘관리자 지시에 불이행’, ‘유휴시간 발생’ 등이었다. 그가 서명을 거부하자 그때부터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이 시작됐다. 그가 다시 타 공정 노동자에게 동의받고 퇴근 줄 맨 앞에 서자, 지속해서 사실관계확인서에 서명을 강요하거나 피해자를 옹호한 동료들에게도 사실관계확인서 작성을 요구했다.
같은 달 19일 노조는 회사에 관리자 A씨를 포함한 관리자 6명의 직장 내 괴롭힘 및 정당한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노조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아 최효 부분회장은 현재까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효 부분회장은 “관리자는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다른 관리자까지 동원해가며 피케팅이 회사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소리쳤다. 퇴근 줄 서기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피해 본 사람이 있느냐고 따졌지만, 무법자 취급과 퇴근 시간을 늦추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아우팅과 성희롱
쿠팡창원센터에서 코로나19 방역 업무를 하는 와쳐로 일해온 문채은 씨는 성소수자로서 인권침해와 성희롱을 겪었다. 지난해, 문채은 씨는 업무 중 인력 부족 문제를 제기했다가 관리자 B씨로부터 아우팅(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본인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발언을 들었다. 앞서 문 씨에 따르면 최초 사건 당시 그는 관리자 B씨에게 인력 충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인력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를 요청했다가 관리자 B씨로부터 “왜 다른 사람한테 말을 하냐. 왜 자기 귀에 이말 저말 들리게 하냐”라며 고함을 들었다. 이후 B씨와의 면담 자리에서 문 씨는 해당 사건과 관련 없는 “성전환한 것을 알고 있다”라는 발언을 들어야 했다.
이와 관련해 문채은 씨는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쿠팡에 입사해서는 누구에게도 나의 정체성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괴롭혔던 사람에게 사과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대화 내용과 상관없는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라며 “의도가 나쁘지 않았더라도 괴롭힘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던 저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잠을 잘 수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 상황도 힘든데 가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아우팅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회사에도 알렸지만, 증거가 없단 이유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문 씨의 피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4일 퇴근 시간, 보안검색대를 지나가는 문 씨에게 남성 보안요원은 문 씨의 가슴 쪽 주머니에서 경고음이 들린다며, 주머니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문 씨는 “평소에 입던 옷이고, 다른 직원들은 눈으로만 확인했는데, 유독 그 직원은 주머니 안까지 확인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보안요원은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성희롱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성희롱 피해 사실을 쿠팡 측에 알렸음에도 보안업체는 쿠팡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출근 때마다 다시 (보안요원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또한 쿠팡인천4센터에서 일하는 조합원과 그의 동료 한 명은 지난 2월 25일, 관리자 C씨로부터 “한 번만 더 업무적인 실수하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라는 폭언을 들었다. 이에 지난 3월 30일 피해 조합원은 이 사실을 쿠팡 내 윤리 채널을 통해 신고했는데, 이후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C 관리자는 피해자에게 귓속말로 “OO색 조끼를 싫어한다면서요? 저는 그 조끼(노조 조끼)가 싫더라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해당 관리자는 감봉 3개월과 업무 층을 이동하는 징계 조치가 이뤄졌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김태준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분회 조합원은 “업무 중 실수에 대해 손가락을 깨물어버린다는 언어폭력도 들었다”면서 “이 자리(기자회견)에 서고 싶었던 피해 노동자는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까 걱정돼 서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지 기계도 로봇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쿠팡인천4센터에서는 한 노동자가 노조 관련 온라인 밴드 활동을 이유로 부당하게 업무 배치를 당했다. 쿠팡 측은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나,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이 지난해 11월 3일 해당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인정했다. 같은 해 4월부터 8월 사이에는 쿠팡고양센터의 한 노동자에 대한 동성 간 성희롱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이유에 대해 권오훈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쿠팡 본사 경영진들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직 내 갈등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인권침해를 해결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또 “정규직 비율이 2.5%라는 쿠팡의 고용구조도 문제다. 대부분이 일용직·계약직인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괴롭힘과 인권침해가 발생하기 쉽다.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는 쿠팡과 같은 조건에서 괴롭힘 발생 확률이 높다고 얘기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노조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는 앞으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쿠팡물류센터 직장 내 괴롭힘 STOP(멈춰)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