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

[여성, 노동의 기록]


조지영. 나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 일하는 상근활동가이다. 2003년에 들어와 벌써 19년 차가 됐다. 2007년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며 처음 페미니즘과 여성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으니 시작이 많이 늦은 편이다. 뒤늦게 여성사업 담당자가 된 이후로도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학습에 골몰했고, 그다음에는 조직 내부 교육에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같고도 다른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어떤 여성 노동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남성화시켜야 했고, 어떤 여성 노동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극대화해 그것을 무기로 삼아야 했다. 또, 어떤 여성 노동자는 가해자가 됐고, 어떤 여성 노동자는 삶의 끈을 놓음으로써 저항했다.

한 사람을 드러내고, 소개하는 방식은 많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어이, 이모, 아줌마, 미쓰김, 여사님이라 불렸고,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아간다.

몇 년 전 성평등교육을 진행하며 미망인(未亡人)이란 단어의 유래와 뜻을 이야기하자 한 60대 후반 여성 노동자가 당황스러울 만큼 눈물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울음이 잦아들고 난 뒤 눈물의 이유를 물었다. “내가 남편에게 참 설움 받으며 살았어요. 남편이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미망인이라고 하면 남편 생전 못 받았던 대접을 그 사람들을 통해서나마 받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라니 너무 서러워서요. 나는 도대체 뭔지….” 아직도 이 나라 정부는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이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불리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어디에나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여성 노동자들. 해고와 희망퇴직이 난무했던 시절, 1순위 여성 조합원, 2순위 맞벌이하는 여자, 3순위 가족 둘 이상이 일하는 여자 순으로 잘려 나간 기억이 남아있는 여성 노동자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원하지 않는, 아니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그녀들을 모아 자기 입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금속노조에서 여성 노동운동사가 발간됐다. 《여성노동자, 반짝이다》에는 여성 노동자 69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이름이 불린 그녀들은 그 이름 그대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도 내 곁의 이름을 부르기로 마음먹고 북콘서트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투쟁 현장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다른 현장이지만 같은 모습의 서로를 확인하고, 격려와 연대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여전히 소수로 흩어져 서로를 확인하기도 힘든 여성 노동자들을 모아 그동안 살아 온 삶, 노동조합을 만난 계기, 여성 노동자인 지금 나의 이야기와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선배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양한 현장에서 내가 아닌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느리지만 꾸준히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서로를 다독이고 끌어안으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몇 달간의 준비기간 동안 가장 많은 들었던 이야기는 ‘여성 조합원들은 도망만 가고 뭘 시켜도 안 하려고 해요’였다. 당사자들은 ‘저보다는 지회장이, 간부가 더 잘하는데요’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속한 노동조합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이야기, 내가 조합원이 된 계기, 투쟁 속에 여성 노동자로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설득을 거듭해도 자기 입을 통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의 입장으로 읽힐까,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으로 읽힐까 많이들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결심의 과정은 길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여러 걱정과 두려움을 딛고 자리에 선 여성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찬란했다.

정년을 몇 달 앞둔 여성 노동자는 사람이 자는 농성장 천막을 칼로 찢고 사장이 공기총을 겨누는 그 야만의 시간을 이야기하면서도 당당했기에,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농성장에서 먹는 김치뿐인 밥 한 그릇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투쟁을 지키는 여성 노동자의 힘이라며 든든한 웃음을 지었다. 용역 깡패의 일상적인 성희롱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들었던 여성 노동자는 근무 시간을 마치고 동료의 곁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그 시절을 이겨냈다. 그는 투쟁의 매 순간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고통이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일터를 지키고, 함께 하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며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는 것이 여성 노동자의 힘이라고 했다.

용역 깡패, 먹튀 자본에 맞서 19년을 싸우는 동안 어린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를 직접 데리고 투쟁했다는 여성 노동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하루아침에 문 닫힌 공장에 달려가 함께 싸우다 닭장차에 실렸다는 여성 노동자는 그 시기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노래하고, 울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닦으며 우리는 예정한 시간을 훌쩍 넘겨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야만과 폭력의 시간, 차별과 두려움의 시간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녀들은 원망이나 아쉬움보다는 그 속의 아름다움과 연대를, 따스함을 앞세웠다. 그녀들의 목소리는 단상의 그 누구보다 뜨거웠고, 단단했고, 부드러웠고, 울림이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공간은 시끄럽다.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공간은 풍성하고 따뜻하다. 수많은 배제를 경험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이곳과 저곳을,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잇는다.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의 현장을 함께 먹고 나누고 돌보는 곳으로 만든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텔레비전이나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몸짓과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자동차를 조립하고, 배를 용접하고, 식당에서 밥을 하고, 전기코드를 만들고, 핸드폰을 생산하고, 자동차 램프를 검사하고, 범퍼를 운반하는 등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이미 모든 일을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 자신의 몸짓과 마음을 온전히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던 그 현장 어딘가에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빛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곁에 이렇게나 찬란하게 빛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 빛을 받아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빛났으면 좋겠다.

함께 빛나기 위해선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보지 못한, 그래서 이야기를 할 수 없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목소리를, 기회를 줘야 한다.

우리가 안 보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 잊어버릴 거잖아요. 그래서 눈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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