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교육청 행정폭력 규탄 기자회견 [출처: 고태은] |
가르고, 외면하고, 고립시키는 이들
혁신학교가 취소되면서 유천초등학교는 개학과 동시에 혼란에 빠졌다.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개학이 늦춰지거나, 학급 인원이 절반씩 번갈아가며 등교했다. 학생들끼리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모임과 같이 학년과 반을 넘어 ‘학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회의도 운영되기 힘들었다. 그나마 2021년에 들어 코로나가 완화되며 전체 등교가 시작됐지만, 혁신학교로서 자리잡아가던 내부는 혁신학교 취소로 한 번에 무너졌다.
강원도교육청은 유천초등학교가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당한 사유를 ‘구성원 간 지속적 갈등 유발과 비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한 학교 결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사유는 분명 이상했다. 특히 징계교사들의 징계 사유들은 비교육적, 반교육적, 불필요한 업무를 간소화하는 ‘학교업무 정상화’ 정책들과 맞닿아 있었다. 이는 분명 교직원들과 협의하고, 회의를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혁신학교의 일부였다. 하지만 대체로 혁신학교 컨설팅은 평교사들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졌다. 결국 교사들이 행정실을 비롯한 다른 학교구성원에게 컨설팅으로 배운 업무의 방식을 알려줘야 하는 역할까지 부여받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천초 행정실공무원과의 업무소통이나 협의 과정은 모두 교사의 갑질로 명명됐다. 학교 교직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획회의에서 구성원 모두의 발언권이 보장되는 구조는 학교의 민주적 의사소통 창구였으나, 징계에서는 공무원으로서 ‘복종의 의무’를 다 하지 않은 비합법적 기구로 명명됐다.
징계를 받은 교사들에게 ‘갑질교사’라는 프레임은 고통스러웠다. 강원교육청지부는 부당 징계에 항의하는 교사들의 농성 자체가 2차 가해라며, 농성을 접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성명 말미에는 항상 강원도교육청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유천초등학교를 파괴한 행정폭력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전교조 강원지부도, 집행위 회의에서 “유천초등학교 조합원에 대한 도교육청의 징계 의결 요구에 조직적 대응 투쟁을 하지 않는다”라고 결정했다. 해당 회의에서는 전교조 출신 진보 교육감에게 징계를 당한 전교조 소속 조합원이 있었음에도 “전교조 조직에 대한 탄압이라고 볼 수 없다. 조직적 결의 사업이라고 볼 수 없다” 같은 의견도 나왔다. 강원지부라는 상급단체가 투쟁에 거리를 두는 모습은 ‘갑질 논란’에 힘을 실어주었다.
교사들은 운동사회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우리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갑질이란 가해자가 모르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모르는 진짜 갑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전한 진심이었다. 혹시 피해자가 있다면, 이를 제대로 알고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나 갑질 교사들의 투쟁이라 결합하지 못한다는 단체들은 ‘동지들을 어떻게 더 괴롭히냐’며 이를 거절했다.
강원도교육청 또한 교사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지정취소 되고, 징계가 논의되는 과정에서도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계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떼어놓았고, 이후 고성, 인제, 태백으로 강제전보 조치해 학생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농성장에서도 플랜카드 때문에 나무가 죽으니 떼라고 요구하는 등 꼬투리 잡기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징계교사와 유천초공대위에서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민형사상 소송까지 제기됐다. 소장을 살피는 징계교사들은 지난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확인할 때가 떠올렸다. 가처분신청 소송 법정에서는 판사가 강원도교육청 대리인 측에 ‘집회시위 신고를 했는데도, 이런 걸 다 금지해달라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정도로 문제적인 내용이 많았다. 징계 때와는 달리 강원도교육청 대리인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사들은 행정 폭력을 휘두르는 교육청의 입맛에 맞춰 법정에 서야만 했다.
“내가 이 아이들하고 끝까지 같이 함께 하고 수업 해보고 싶었던 수업들이 있고 너무 많은데. 우리가 1년을 이게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함께 정리가 돼야 되는데 그냥 그 중간에서 끝나버린 상황이잖아요. 내가 아직도 내가 뭐 걔네들과 아직 끝이 안 난 상황인 거죠”(징계교사 윤용숙)
▲ 유천초 학부모가, 징계교사에게 [출처: 남정아] |
서로의 존재가 이유가 되는 싸움
혁신학교 지정취소 직후, 전교조 강원지부는 불공정 감사를 규탄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유천초 학교운영위는 강원행복더하기학교(강원도형 혁신학교) 지정취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유천초등학교 내에서도 교직원 101명 중 89명이 혁신학교 지정취소 철회에 대한 서명에 함께 했다. 부당징계 규탄 서명에도 7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다모임을 통해 이 사안을 논의하고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유천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취소에 반대하는 서명을 전달하기 위해 강원도교육청 교육감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내부에서 혁신학교 지정취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못했다. 이후 부당 징계가 이어졌고, 징계 이후에는 강제 전보가 있었다.
강제전보 소식에 징계 이후 제대로 학교에 가보지 못했던 교사들도 짐을 빼기 위해 학교에 가야했다. 교사들은 유천초로 짐을 빼러 가는 게 너무도 싫었다. 학교 안에서 학부모나 보수적 교사들과 갈등을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교사들은 새 학교로 가서도 그 곳에 적응하고, 집중하지 못했다. 세 교사는 논의 끝에, 유천초에서 나온 이상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보리라 결심했다. 세 교사가 병휴직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원도교육청의 행정폭력을 경험하면서 약 없이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징계교사들은 함께 힘내서 싸우자는 마음으로 강원도교육청에서 밤샘 농성을 하며 아침 출근, 점심, 저녁 퇴근 선전전을 매일 이어갔다.
혁신학교가 지정 취소되는 과정에서 진보교육청의 민낯을 본 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유천초등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안에 남은 이들이 있었다. 남은 전교조 유천초분회 앞에는 처참히 무너지는 학교가 보였다. 교장실의 통유리는 블라인드로 가려졌고, 학생들은 출입을 금지 당했다. 학생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40분의 쉬는 시간도 사라졌다. 그 시간 학생들끼리 진행되던 다학년 다모임(회의)도 참여 제한이 생기고 횟수가 줄었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 2~3년 전 꿈 꿨던 학교가 혁신학교 취소와 동시에 이렇게 무너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학교의 강해진 보수성과 경직된 분위기는 경력이 적은 교사들, 교육공무직, 학생들과 같이 학교 공동체 안에서 낮은 지위를 가진 이들의 숨통을 조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입에서 ‘학교가 예전 같지 않아요, 학교 분위기가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어요’라는 말이 나올 때면, 분회 교사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이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징계교사들은 학교 안에 남아 학교민주주의를 지키려 싸우는 교사들을 위해서라도 이 투쟁이 승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학교에 남은 유천초분회 교사들은 외롭게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싸우고 있는 징계교사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돌아올 민주적인 학교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 투쟁은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서로를 지키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가르고 외면하고 고립시켜도 흩어지지 않는 이들은 강력한 투쟁의 이유가 되었다.
“저는 힘이 없어요.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고작 나와서 서 있는 것 밖에 못해요. 저는 아직 투쟁한지 얼마 안 돼서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거든요. 우리 선생님들이, 우리 동지들이 혼자서 비 맞지 않게 연대하려고요.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작지 않고,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유천초분회 조합원 발언)
너와 나, 우리의 투쟁
유천초분회가 유천초 투쟁의 목적을 이야기해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거나, 오해와 소문이 퍼지는 등 문제 해결이 어려운 조건들은 계속 반복됐다. 유천초 투쟁을 고립시키는 조건 속에서도 유천초분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투쟁을 시작했다. 그래서 투쟁의 방향도, 어떻게 이겨야 할지도 제대로 고민해보지 못한 채 거리에서, 학교에서 온 마음과 시간을 쏟는 투쟁을 시작했다. 유천초를 넘어서 이 싸움에 함께하게 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이나 피케팅 참여에 그치지 않고 ‘유천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 취소 철회와 부당 징계 취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유천초공대위)’를 결성해 유천초 사안 해결의 한 주체가 되기로 결정했다.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단체와 시민단체, 인권단체, 노동단체 등의 다양한 이들이 유천초 사안의 해결을 위해 유천초 공대위로 모였다.
▲ 투쟁할 줄 모르지만, 연대는 할 줄 알아서. 씨스포빌 해고자, 해운지부 조합원들과 함께 강릉지역에서 시민선전전을 하고 있는 징계교사 [출처: 해운지부 박성모 지부장] |
전교조 유천초분회의 투쟁은 금방 시들지 않았다. 긴 시간 유천초분회 조합원들과 연대 관계를 맺으며 투쟁해 온 사람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전교조 유천초분회의 상급단체가 투쟁에 조직적 결합을 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자, 개별적인 조합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역을 넘어 전국의 전교조 조합원들이 개인적으로 농성장에 방문하고, 수요집회에 함께 했다. 평일 낮 시간에 춘천 강원도교육청에서 피케팅을 하는 징계교사들을 대신해 강릉에서 시민들이 함께 피케팅을 시작했다. 씨스포빌에서 해고된 해운지부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피케팅에 유천초 피켓을 항상 함께 챙겼다.
농성이 이어지는 중에도 전교조 유천초분회는 다른 이들에게 연대를 다니기 바빴다. 강원도교육청 농성장을 벗어나면 우리의 투쟁 외에도 수많은 노동권 침해나 차별 철폐의 구호가 있었다. 차별금지법투쟁,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 SPC의 노조할 권리에 대한 주장 등…. 분회 조합원들은 ‘우리 투쟁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목적보다도 마음이 동해서, 싸워보니 남의 싸움이 외면되지 않아서, 다른 이들의 농성장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세상은, 학교에서 가르쳤던 것이 민망할 만큼 새로운 세계였다. 분회 교사들은 우리가 부당징계를 당했다는 소식을 미처 내뱉지도 못한 채 전국의 투쟁하는 이들의 절절한 이야기에 젖어들었다.
유천초분회는 농성 투쟁을 시작하면서 ‘구멍’이라는 실천단을 만들었다. 불평등이 강화되고 대물림 되는 자본주의 세상에 구멍을 뚫겠다는 의미로 지은 실천단은 투쟁현장에서 배우는 배움실천단이면서 어디서나 필요하다면 달려가 노래하고 춤추는 노래패이자 몸짓패로 거듭났다. 몸짓패는 유천초 수요집회와 희망대행진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연대하러 간 다른 농성장에서도 춤과 노래로 기꺼이 함께했다. 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는 징계 교사 3인의 이름인 김나혜, 남정아, 윤용숙에서 온 김남윤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분회와 김남윤, 몸짓패 구멍은 따로 또 같이 세상을 배우고 연결 지으러 쉼 없이 강원도교육청 밖의 활동을 이어갔다.
유천초 사안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의 성과는 더뎠지만, 함께 모이는 이들과의 시간이 쌓이면서 분회원들에게도 내면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들도 투쟁의 성과라면, 분명 유천초 투쟁은 분회 조합원들에게 큰 성과를 준 투쟁일 것이다. 연대를 하며 조합원들은 강고한 투쟁 의지에 더욱 불을 지피게 되었다. 정규직 교사로서의 삶에서 체감하지 못했던 노동운동, 차별철폐의 운동들이 삶에 와 닿기 시작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간절함 없는 연대를 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의 시간은 유천초분회의 투쟁 경험과 소감을 통해 분회원들 사이에 공고히 쌓이고 있는 의식이었다.
유천초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희망대행진은 4월과 5월, 춘천과 강릉에서 진행됐다. 4월엔 백 명도 넘는 이들이 모여 춘천 시내를 걸어 강원도교육청으로 이동했다. 5월에는 강릉에서는 200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월화거리에서 선전전과 집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왜, 유천초 투쟁에 함께하게 되었을까. 각자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유천초 공대위와 연대자들은 그간 유천초분회가 많은 투쟁의 현장을 오가며 만들어 낸 연대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공대위로 함께하는 이들은 이미 유천초가 많은 지역에 찾아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결국, 전국에서 많은 전교조 조합원, 노동조합, 시민단체, 교육단체가 함께 모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유천초 문제는 이미 내 동지의, 오랜 벗이 경험하는 부조리함으로 와 닿고 있었다.
▲ 강릉에서 5월 21일 진행한 2차 희망대행진. 200명에 가까운 연대자들이 모여 강릉 시내를 함께 걸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징계교사들과 유천초에서 함께했던 학부모, 교사, 교육공무직노동자들은 걷기 전부터 얼싸안고 울었다. [출처: 홍옥순] |
“매일 동지들이 똘똘 뭉쳐서 함께 이겨내자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 꼭 승리를 응원한다는 말에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하고, 연대해주시는 따듯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데도 여기 와보니 이렇게 유천초 선생님들도 저희가 똑같이 도 교육청에게 악덕기업이 하는 것처럼 부당징계, 부당발령 하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희 해운지부는 선생님들의 투쟁에 꼭 함께 하겠습니다. 저희가 항상 외치는 끝까지 간다 투쟁이, 여기 힘들게 투쟁하시는 선생님들에게도 큰 힘이 되어 좋은 기운으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4월 23일 희망대행진, 씨스포빌 해운지부장 박성모 발언)
투쟁하는 법은 모르지만
부당징계를 받은 교사들이 강제전보로 발령 난 지 이미 한 학기가 다 돼 간다. 그래서 유천초등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반문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유천초분회 조합원들의 입장은 여전히 간명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도 교육감의 표적 감사에 대한 사과’, ‘유천초 교사들에 대한 부당징계와 강제전보 취소’, ‘유천초에 대해 일방적으로 진행한 혁신학교 지정취소의 철회’, ‘학교혁신 지원’, ‘농성 중 발생한 각종 고소고발에 대한 취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 ‘학교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통한다. 학교 현장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이들 투쟁의 요구가 아주 어렵고 복잡해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 6월 14일 단식에 돌입한 징계교사 3인 (왼쪽부터) 윤용숙, 남정아, 김나혜 [출처: 고태은] |
혁신학교를 하겠다던 진보 교육감이 제대로 된 지원 없이 교사들에게 짐을 지워 놓고는, 지역에서 보수적인 여론이 일자 꼬리를 자른 것이다.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감사 과정에서는 행정 폭력이 발생했다. 혁신학교 지정취소에 저항하는 교사들을 징계했으며, 이에 또 다시 저항하자 강제전보를, 또 민형사상 소송을 걸었다. 복잡하고 다양한 구호들로 둘러싸인 전교조 유천초분회의 투쟁은 강원도교육청 행정폭력에 맞서 이를 규탄하며 줄곧 하나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전교조 유천초분회 조합원들은 ‘노숙농성은 처음이라’, ‘투쟁의 A, B, C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학교 안과 달리 모든 게 낯설고, 잘 모르는 일들이지만 투쟁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연결되고 있다고 체감한다. 이것은 이전보다 새롭고, 뜨거운 배움을 채우는 과정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정 부당징계가 억울하면, 농성하지 말고 법적으로 싸우라’는 말. ‘건강이 염려되니, 농성을 접으라’는 말. ‘투쟁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는 말들이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투사로 이야기하고, 투쟁이 끝나더라도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분회 조합원들은 또 그런 투쟁을 시작하려 한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든 민병희 교육감 임기는 6월 30일 부로 끝이 난다. 전교조 유천초분회는 민병희가 책임지고 내려가도록, 6월 14일부터 ‘끝장 투쟁’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의했다. 혁신학교 운동가로 살다가, 혁신학교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더 이상 강원도에 혁신학교를 세우지 않겠다며 이 운동의 문을 닫아버린 오명을 씻을 기회가 민병희에게도 있을까. 그도 ‘우리’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사회적 투쟁에 진심인 유천초분회의 투쟁이 조합원들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결국 이 투쟁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유천초분회와 이 투쟁을 ‘우리’의 투쟁이라 믿고 있는 거리의 존재들이 함께 이길 싸움이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까.
▲ 강원도교육청 앞 연좌농성을 시작하는 유천초분회 징계교사 3인 [출처: 고태은] |
“점점 더 착취가 심해지고 있잖아요. 그러다보면 학교에서 제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이 나중에 취업할 때 다 비정규직으로 갈 거 아니에요. 저는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이 싸움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전과 같이 살 수는 없을 거 같아요.”(징계교사 남정아)
“그레이스 리라는 분의 투쟁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나를 혁명하는 것’이라는 부분이었어요. 지금 투쟁이 억울하고 힘들게 싸우고 있지만 오히려 나를 또 혁명하게 해준 투쟁 같아요. 학교 안에서만 목소리 내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우리뿐만 아니라 전국에 모든 학교와 학교 민주주의를 위해서 같이 싸우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걸 위해 저를 바꾸는 게 가장 먼저겠더라고요.”(전교조 유천초분회 조합원)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