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운 곳으로 간다
차례
① 훼손된 강릉 앞바다, 그곳엔 삼성물산의 화력발전소가 있다
②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지워지는 노동자들
③ 핵발전 수명연장과 신규 건설, 사회적 갈등 커진다
④ 5만 명 모여 ‘9.24 기후정의행진’ 벌인다
⑤ ESG
▲ 6월 18일 전국 탈핵진영이 부산역 광장에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및 수명연장 반대’ 집회를 열고 광복동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출처: 용석록] |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를 확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중 ‘탈원전 정책 폐기와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를 세 번째 국정과제로 삼았다. ‘탈원전 정책 폐기’에 상당한 무게를 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의 핵심은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핵발전소 건설 금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 두 가지 정책을 모두 폐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의 나머지 사안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최강국’으로 가기 위해 ①울진의 9~10호기에 해당하는 핵발전소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②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③핵발전소 2030년까지 10기 수출 ④한국과 미국이 협력해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JFCS)를 마무리하는 등 향후 계획을 협의 ⑤독자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제4세대 원자로 개발 및 원전연계 수소생산 등 미래 원전기술 확보를 위한 R&D 집중 추진 ⑥방사성폐기물 관리 처분을 위한 특별법 마련과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 신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무탄소 전원인 원전 활용 확대’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에 기여하고 원전의 신성장 동력화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문제점 등을 살펴보자.
울진에 핵발전소 9~10호기(신한울 3·4호기 건설)
윤석열 정부가 울진에 신한울 3·4호기를 짓게 되면 울진에는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8차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백지화하면서 10차(2022년 4분기)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 건설계획을 반영해야 한다. 이 과정에 환경영향평가도 다시 받아야 한다. 또한 올해 3분기에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 역시 재수립해야 한다.
▲ 6월 18일 전국 탈핵진영이 부산역 광장에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및 수명연장 반대’ 집회를 열고 광복동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출처: 용석록] |
윤석열 정부와 핵산업계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두고 “조속한 건설 재개”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을 시작했던 곳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추진하던 신한울 3·4호기 건설계획을 취소했으며,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이를 제외했다.
윤석열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변경하더라도 건설을 바로 시작할 수는 없다. 사업자가 공사를 하려면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 품질보증계획서, 해체계획서 등을 제출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심사를 통해 건설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시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10기의 핵발전소가 밀집한 다수호기 문제, 핵페기물 처분 문제 등 여러 쟁점이 부각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 부지에 핵발전소 10기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만큼 주민 안전을 심각히 침해하는 것이다. 울진에서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과 무소속인 울진군수 후보가 각각 원전 강국과 고준위 핵폐기장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이라는 탈핵 단체가 성명을 발표하고 6천 장이 넘는 유인물을 군민들에게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 정부와 한수원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강행한다면 탈핵 진영과 만만치 않은 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한다.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임기 내 18번 연장 신청 가능
새 정부의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다. 윤석열 정부는 이때까지 국내 노후핵발전소 12기의 수명을 연장하고, 중복 수명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6기(하늘색 표기)를 포함해 총 18번 수명연장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가운데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은 가장 핵심 사안이다. 2030년까지 자그마치 10기의 핵발전소 설계수명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재 설계수명 만료 2년 전까지 제출하던 주기적안전성평가(PSR) 보고서를 설계수명 만료 5~10년 전에 제출토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실상 국민 안전은 안중에 없고 핵산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탈핵 진영을 비롯한 주민들은 윤 정부의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부산-울산-경주-포항 등 동해안권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거나 해수 온도가 높아져 핵발전소 안전은 더욱 위협받는다. 실제로 한수원은 현재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높아지자 해수 설계온도를 상향 조정하는 운영 변경 허가안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윤석열 정부의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계획과 가장 먼저 부딪치는 곳은 부산과 울산이다. 한수원이 올해 5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고리2호기 주기적안전성평가 보고서(PSR)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고리 핵발전소 기준 반경 30km 이내인 부산과 울산, 경남 등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는 약 38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노후핵발전소 가동으로 사고 위험이 커지고, 사고 시 적절한 대피계획을 세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부산시민행동’은 4월 26일부터 6월 18일까지 부산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6월 18일에는 전국에서 모인 500여 명이 부산역 광장에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및 수명연장 반대’ 집회를 열었다.
2030년까지 원자로 10기 수출?
세계 핵발전 동향을 살펴보면 핵발전은 확실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운영하는 ‘원전 안전 운영 정보시스템’의 국가별 핵발전소 운전현황을 살펴보면, 33개국이 441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신규 건설은 52기, 폐로는 203기에 달한다. 윤 정부가 앞으로 10년 동안 원자로 10기를 수출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세계 동향을 무시하는 것이다.
▲ 6월 18일 전국 탈핵진영이 부산역 광장에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및 수명연장 반대’ 집회를 열고 광복동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출처: 용석록] |
세계적으로 핵발전 국가들은 고준위 핵페기물 처분 방안이 없어 핵발전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간주하지 않는다. 폐로 비용과 핵폐기물 처분 비용 등이 추가돼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윤 정부는 한국형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6월 5일(한국 시각) 유럽의회(EV)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는 합동 회의를 열고 핵발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찬성 76표, 반대 62표, 기권 4표로 채택했다. 지난 2월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넣기로 한 EU 집행부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한·미 협력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 마무리
한·미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 마무리 및 협력 약속은 이미 지난 시기에 진행한 것을 ‘정책과제’ 포함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한미 핵주기 공동연구(2011~2020년)는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의 기술성, 경제성, 핵비확산성 측면의 타당성 검증을 목적으로 연구했으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사용 후 핵연료의 독성을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96년 미국 국립아카데미 연구는 “(파이로+고속로 등 도입에 따른) 방사선 피폭 감소는 그 어떠한 시스템의 도입으로도 소요 비용과 핵종변환 시스템 운영에 따른 추가 위험을 보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 결론 내렸다. 2013년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핵 재처리가 방사성 폐기물의 영향을 줄이는데 주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주요 연구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로부터 초우라늄 원소를 제거하는 것이 방사성폐기물의 위험을 크게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이미 결론 내린 것이다.
현재 한국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하지만, 실질적인 재처리 연구는 할 수 없다. 사업 추진 시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회의적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제4세대 원자로 개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만은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의 폐로를 결정했다. 베트남도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철회했는데, 소형원자로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도 소형원자로 개발 방침을 정책에 포함하려는 논의가 있다.
그러나 소형원자로는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비용은 대형 원자로와 비슷하지만 생산하는 전기의 양이 적고, 아직 세계적으로 해법을 찾지 못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한다. 어떤 핵산업계 인사는 오지나 극지에 소형원자로를 건설하자고 하는데 오지나 극지에 소형원자로가 들어설 이유가 없다.
방사성폐기물 관리 처분을 위한 특별법 마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법안을 만들기 위해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미 문재인 정부 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확정해 통과시켰으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등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이 기본계획과 특별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핵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한 고준위 핵폐기물을 ‘부지 내에 저장’한다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사업자는 지난 40년 동안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했고, 주민 저항에 부딪혔다.
▲ 6월 18일 전국 탈핵진영이 부산역 광장에서 ‘고리2호기 폐쇄 촉구 및 수명연장 반대’ 집회를 열고 광복동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출처: 용석록] |
탈핵 진영은 산업부의 기본계획과 김성환 의원의 특별법안이 핵산업계를 위한 정책으로 무한정 핵발전을 지속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산업부가 지난해 12월 기본계획을 통과시킬 때 국민의힘 의원이나 자치단체장,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등이 반대 입장을 공개 표명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고준위 핵폐기물을 핵발전소 부지 안에 저장하는 법안과 핵폐기물 ‘처분’이 아닌 ‘처리’(재처리) 범주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는 가장 먼저 핵발전소 지역에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핵발전 늘려서 탄소중립 달성? 세계 흐름 무시한 정책 방향
문재인 정부는 ‘205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70%’를 계획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폭을 줄이고, 핵발전 비중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핵발전이 재생에너지를 대체하는 방식으로는 탄소중립 실현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탈핵 진영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데,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부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국민 안전은 내팽개친다는 비판이 크다.
산업부는 6월 21일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공청회’를 열었으나,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재생에너지 증가와 원전 출력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서 에너지 전원믹스 정책을 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21기의 핵발전소 폐로를 결정했다. 안전 심사에 합격한 핵발전소는 17기에 달했지만, 올해 5월 16일 기준 일본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4기뿐이다. 일본 정부는 2012년 6월 ‘원자로 등 규제법’을 개정해 핵발전 운전 기간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못 박았다. 이 제도 아래 15기(후쿠시마 제1원전 1~6호기를 포함하면 총 21기)의 노후핵발전소 폐로를 결정했다. 하지만 1회에 한정해 최대 20년까지 수명연장을 인정하는 독소조항을 둔 탓에 현재까지 4기(2016년 다카하마 1·2호기와 미하마 3호기, 2018년 도카이 제2 핵발전소)가 수명을 연장했다. 하지만 수명을 연장한 4기는 테러 대책시설 미완 등을 이유로 현재 모두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원자로 등 규제법’의 주된 개정 내용은 중대 사고와 테러 대책을 규제 대상으로 강화하고, 핵발전소와 핵연료 시설에 최신 규제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풀어주면서 핵발전 비중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의 수명연장과 신규 건설 시도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