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혐오’를 ‘혐오’라 말하자
평균 연봉 2억을 훌쩍 넘는 의사 파업엔 ‘귀족노조’ 딱지가 붙지 않는데 몇 천만 원 받는 노동자가 파업하면 ‘귀족노조’가 되는 이유는 뭘까?
“코로나 와중에 의대 증원 평지풍파 일으켜야만 했나” <조선일보>는 2020년 의사 파업에 이런 사설을 냈다. 의사들이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했는데, <조선일보>가 파업 행위를 비난하기보다 정부에 그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당시 파업에 질색하던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의사 파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보수진영이 입에 달고 사는 ‘귀족노조’ 단어는 쏙 들어갔다. 반면 최근 임단협을 치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엔 어김없이 ‘귀족노조’ 딱지가 따라다닌다.
최근 벌어진 파업에 대한 <조선일보> 논조를 다시 보자. 지난 6월 있었던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을 두고 <조선일보>는 컨테이너 차주 평균 순수입이 366만 원이라며 ‘배부른 노조의 파업’으로 몰고 갔다.(“週 50억 원 더 받으려는 화물연대 노조, 산업계 피해는 2조 원”, 2022년 6월 14일자) 또 <조선일보>는 ‘집단운송거부’로 규정하며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거부했다. 파업을 파업이라 부르지도 않은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의사와 화물노동자는 제도적으로 모두 개인사업자다. 잣대가 달랐던 셈이다. 또 정부에 책임을 묻는 방식도 달랐다. 의사 파업은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펼쳤다는 이유로, 화물 파업은 불법 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 책임을 물었다. (“‘눈엣가시’도 뽑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 2022년 7월 4일자) 우스꽝스러운 이중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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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물연대본부] |
귀족노조? 강성노조 향한 혐오!
한국 사회는 어떤 위치, 계층, 신분에 있는 사람을 ‘특정 수준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자’로 취급하는데 능하다. 의사, 변호사, 조종사의 요구는 수용할 만하나 생산직 노동자의 요구는 늘 과도한 취급을 받는다. 자격의 유무, 사회적 신분에 따라 수용 정도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전문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였기 때문에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한국은 자격에 따라 과도한 차이를 둔다. 자격,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업종 간 임금 차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금융‧보험업(1위 업종)이 100이라고 했을 때 숙박‧음식점업은 37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의 1위 업종 대비 최하위 업종은 56, EU는 41이다.(“한‧일‧EU 업종별 임금수준 국제 비교”, 경총, 2022.2.6.)
물론 재계는 이 같은 통계를 두고 업종별‧기업규모별 임금 격차가 크다며 대기업 임금인상을 자제하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로 통계를 보면 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게 맞지만, 실제 경제 단체는 매해 최저임금 동결 내지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 귀족노조라 불리는 현대차 노동자들은 정말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하고 있을까? 현대차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조 9798억 원에 달한다.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회사 이윤은 재벌 총수 일가가 아닌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정몽준, 정몽구, 정의선, 정기선 4인의 배당금은 3351억 원에 달한다. 이재용, 홍라희, 이부진, 이서현 4인의 배당금은 8040억 원이다. 모든 이윤을 총수 일가가 싹쓸이한 셈이다. 한국에서는 수천억 배당금을 챙겨가는 재벌 총수 일가보다 연봉 8천만 원 받는 생산직 노동자가 더 많은 욕을 먹는다. 어디에도 노동자가 연봉 1억을 받아선 안 된다는 법률은 없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해 회사가 많은 이윤을 남겼으면 노동자는 당연히 그 이윤에서 자기 몫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재벌 완성차의 수요 독점이 강해 원하청 관계가 종속적이다. 부품사, 협력사 경영이 현대차 등 완성차 경영에 강하게 묶여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성차 이윤의 일부도 부품계열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대로 현대차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자동차 부품사 1,296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2%대로 지난해 코스피 상장 부품사 55사의 평균이익률 3.4%보다 크게 못 미쳤다. 부품사 중 대기업을 제외한 약 1,000사의 이익률은 1.6% 수준이다. (“완성차는 벌어도 부품사는 적자…값 안 올리면 납품중단”, <조선일보>, 2022년 7월 25일자) 그래서 현대기아차 소속이 아닌 부품사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위해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시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귀족노조 담론은 대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품사 노동자를 향해서도 먹혔다. 2010년부터 부품사 발레오전장, 만도기계, 유성기업 등에서 노조파괴가 일어날 때마다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연봉 7000만 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이 연설 역시 부품사 노동자들이 이 정도 연봉을 받으면 충분한데 파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당시 진보 매체 취재를 통해 대통령이 언급한 평균 급여액이 사실과 다르고, 설령 맞더라도 가혹한 잔업과 특근의 대가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 사실은 배제됐다. 중요한 것은 이들 사업장 대부분이 현대차 자본까지 겨냥해 강고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흔히 말해 ‘강성노조’였던 사업장을 상대로 이명박이 귀족노조 담론을 펼쳐 기획탄압에 나선 것이다. 당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본의 이익률이 급감했고 이명박은 위기 해결의 열쇠를 ‘강성노조 파괴’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과거부터 이어진 보수정권, 언론의 귀족노조 프레임은 제조업 생산직, 강성노조를 향한 혐오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귀족노조 고용세습의 실체
귀족노조를 항상 따라다니는 이슈가 ‘고용세습’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노사 단체협약상 불공정 채용을 막겠다며 공정채용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국민의힘 정우택 국회의원이 “귀족노조의 일자리 세습 악행이 반드시 근절되길 바란다”며 ‘고용세습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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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고용세습은 제조업 대공장을 두고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 단체협약을 뜯어봤다. 현재 현대자동차, 한국지엠, 현대중공업 단협엔 조합원의 자녀를 특별 혹은 우선 채용한다는 고용세습 조항은 없었다. 다만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중증재해를 입은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한 직계가족을 특별 혹은 우선 채용하는 조항(현대자동차 97조, 현대중공업 105조, 한국지엠 34조)이 공통으로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거나 큰 사고를 당한 노동자 가족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사기업의 마땅한 산재 보상책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다. 애초에 상이군인, 민주화운동 등 국가유공자도 제도로서 국가기관의 우선채용을 보장받고 있으니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 현장에서 죽거나 다친 노동자에 대해서도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게 맞다.
현대차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가 이 단협에 따라 채용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해당 단협 조항이 민법 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2020년 8월 대법원은 산재 유족 채용 단협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은 “(산재 유족 채용) 단협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단협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보장한 노사의 협약 자치의 결과물이라는 점, 노동조합법에 의해 그 이행이 특별히 강제되는 점을 고려해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단협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만든 규칙으로 이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보다 존중이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아자동차 등 아직 많은 사업장에 조합원 자녀 채용 조항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조 공격을 위해 고용세습 관련 조사를 벌였을 때 사업장 442곳이 정년퇴직자 자녀 채용 조항을 단협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협에 위 같은 조항이 남아 있어도 현장에서는 ‘사문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정부가 고용세습 조항으로 몇 명이 채용됐는지 전수조사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 적도 없다. 자녀 채용이 남아있다는 통계로 귀족노조 담론만 펼쳤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에는 많은 사업장에서 사문화된 고용세습 조항을 삭제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당시 고용노동부는 고용세습 단협이 2017년 8월 45건에서 2018년 5월 27건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고용세습 조항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건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단체협약상 불공정 채용’을 언급하며 마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모두 고용 세습하는 것처럼 노조혐오를 양산하고 있다.
언론은 재벌 3, 4세의 경영권 세습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현대차 정의선은 1994년 입사와 동시에 과장이 됐고, 상무, 전무,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이뤘다. 정몽구의 아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 SK 최태원의 딸인 최민정은 2019년 SK하이닉스로, CJ 이재현 아들인 이선호는 2013년에 CJ제일제당으로 입사했다. 모두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들어간 것인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적 쌓기로 풀이된다. 이보다 더 적나라할 수 없는 이들의 고용 세습은 ‘경영 수업’으로 미화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 진짜 귀족은 누구이며, 진짜 기득권은 어디에 있나. 최근 일어난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도 <조선일보>는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 원대 손실”(2022년 7월 22일자), “그런 기업(큰 규모의 부채를 가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돈 더 내놓으라며 회사를 마비시켰다”(2022년 7월 15일자)라고 저임금 하청 노동자를 비난한다. 이들에겐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노동자든, 최저임금 노동자든, 노조하는 사람은 모두 혐오의 대상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권익향상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세계인권선언도 노조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세계인권선언 전문 중) 노동자에 단결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전후 세계의 약속이다. 헌법을 부정하고 인권을 빼앗는 담론이 노조혐오 담론이다. 노조혐오로 이득을 보는 자는 자본가와 기득권, 이들이 바로 진짜 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