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보고서: 멀고 낮은 곳부터 파괴했다
차례
① 코로나 재택 치료 72시간,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② 코로나19의 정부, 차별과 배제를 더 넓게 더 깊게
③ 코로나19 이후, 국민은 ‘의료 인력·공공병원 확충’ 원한다
④ 간호사들은 왜 ‘사람 잡을까’ 공포에 떠나
⑤ 의료민영화 흐름 속 공공의료 확대 가능한가<1>
⑥ 의료민영화 흐름 속 공공의료 확대 가능한가<2>
⑦ 돌봄 노동자에게 감염병이 특히 버거웠던 이유
⑧ 이주민이 많은 도시, 차별은 같았다
⑨ 장애인의 일상이 여전히 재난인 이유
⑩ 전염병과 봉기, 혐오와 차별의 역사
⑪ 감염병은 ‘혐오’를 먹고 자랐다
⑫ 10명 중 6명 “코로나19 이후 혐오 표현 늘어”...‘사회적 양극화’ 때문
⑬ 감염병 시대, 처벌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⑭ 코로나19 대응, 시장 솔루션의 한계
⑮ 코로나19 2년,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
| 사례1.
1946년 6월 16일, 미군정에 끔찍한 사건이 보고됐다. 경찰이 전라도 광주 인근에서 9살 소년의 간을 먹은 혐의로 한센병 환자를 체포했다는 소식이었다. 실상은 소년이 사고로 칼에 찔려 사망한 과실치사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센병 환자가 소년의 간을 먹었다는 유언비어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한센인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소년의 간을 먹는다는 ‘괴담’이 오랫동안 구전처럼 떠돌았다. 한국 사회에서 한센인은 그 자체로 ‘혐오’와 ‘위험’의 대상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센인에 대한 격리 및 배제 정책은 공고했다. 1954년 제정된‘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한센인은 전염성이 없어질 때까지 격리 수용돼야 했다. 공무원은 한센인이 있다고 추측되는 자택에 들어가 조사하고 격리할 수 있었다. 격리수용을 거절하거나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것은 범죄 행위였다. 정부는 소위 ‘부랑자’와 함께 한센인을 수용소에 ‘강제 송환’하는 정책을 펼쳤다. 보건소와 관변 단체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착촌에 거주하는 한센인도 시설에 강제 수용했다. 한센인 단종 정책을 추진해 정관수술이나 낙태를 강제하기도 했다.
| 사례2.
1995년 5월 20일. 23살 남성 김 모 씨가 서울상업고등학교 강단에 섰다. 그는 “사춘기 시절 한때 호기심 때문에 수렁에 빠진 자기 경험을 밝혀 경각심을 주고자 강연에 나섰다”라며 “순간의 쾌락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종말을 불렀다”라고 말했다. 일간지 등 언론은 앞다퉈 그의 강연을 〈“부끄러운 과거 밝힙니다” 에이즈 20대 숙연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언론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 호기심으로 동성애를 시작한 뒤 에이즈에 걸렸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한국에이즈연맹’이 주최한 고교 순회 예방 교육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는 곧 ‘동성애’나 ‘난잡한 성교’와 동일시됐다. 질병의 책임은 개인에 전가됐으며, ‘더러운 병’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았다. 감염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도 확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헌혈 문진표에 ‘동성이나 불특정 이성 또는 외국인과 성 접촉이 있었다’라는 항목에 체크해야 했다. 동성과 성 접촉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에이즈 등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 사례였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헌혈 전 문진에서 ‘동성애’ 여부를 묻는 것은 평등권에 침해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질병과 혐오: 한센인
질병은 감염인과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확산한다. 감염병 확산의 책임을 그들 집단에 전가하기도 한다. 혐오의 뿌리가 되는 것은 ‘가짜뉴스’다. 의학적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확산하는 ‘괴담’도 있지만, 소수자를 질병의 가해 집단으로 낙인찍는 의도적인 ‘혐오’도 존재한다. 이러한 괴담과 혐오, 가짜뉴스는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머물며 차별과 배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한센병은 국제적으로 오랜 시간 낙인과 차별, 격리가 이뤄졌던 질병이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전염성이 강하다는 편견 때문에 한센인은 극심한 인권 유린과 탄압을 받았다. 격리 시설에 강제 수용되거나, 단종 정책의 일환으로 강제 낙태와 불임 시술을 당했다. ‘나병’이나 ‘문둥병’ 같은 혐오 표현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들을 둘러싼 괴담들도 퍼져나갔다. 이후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가 가능해지고 나서야, 그간의 편견과 달리 한센병의 감염력이 결핵균보다 100배 이상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적 접촉이나 임신 등으로 감염되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하며, 일반인의 95% 이상은 자연 항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재생산돼 온 편견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1명은 한센병의 전염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센인과 함께 생활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약 8명이 ‘이용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한센인 격리 수용에 관해서는 55.6%가 ‘불가피한 조치’라고 답했고, 40.6%는 ‘인권침해로 문제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인식은 과거에서 조금 벗어났을까.
《워커스》는 여론조사 기관 두잇서베이에 의뢰해 지난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전국의 3,00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기간 혐오 표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79%포인트) 그 결과 ‘한센인과 같이 생활하면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31%(930명)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44%(1,320명)는 ‘보통이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은 25%(752명)였다. 한센인의 격리수용에 관해서는 31%(931명)가 ‘그렇다(격리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44.9%(1,348명)는 ‘보통이다’, 24.1%(723명)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질병과 혐오: 에이즈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HIV, 에이즈)을 둘러싼 편견 역시 성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했다. 에이즈 감염과 동성애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로 드러났지만, 동성애가 곧 에이즈라는 인식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에이즈는 HIV에 감염된 사람의 체액에 노출될 경우 전파될 수 있는 감염병이다. 성관계 상대방이 HIV 감염인일 경우 누구든 감염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질병이기도 하다. 질병관리청은 콘돔을 올바르게 사용할 경우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는 언론과 미디어의 혐오 표현과 왜곡된 정보에 가로막혀 확산하지 못한다. 《워커스》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에이즈와 관련해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람은 8.3%(248명)에 그쳤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47.3%(1,421명),‘많이 알지 못한다’는 40.9%(1,229명)였다. 3.4%(102명)는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에이즈와 관련한 정보를 접하는 곳은 주로 ‘인터넷’(50.2%)이었으며, 그다음은 ‘TV·신문·라디오’(25.9%)였다. ‘접한 적이 없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7.8%로 세 번째로 높았다.
질병관리청의 2020년 조사 통계에 따르면, 신규 에이즈 감염 경로의 70% 이상은 성 접촉이었다.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은 1995년, 수혈로 인한 감염은 2006년부터 보고 사례가 없다. 에이즈는 의학적으로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진 질병이며, 일상 생활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중 에이즈 감염인이 생긴다면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나’라는 질문에 30.3%(910명)만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보통이다’는 38.1%(1,143명), ‘아니다’는 31.6%(949명)였다.
또한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다닌다면 사표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26%(780명)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아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3.9%(1,019명)였다. 에이즈 감염인을 수용시설에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29.7%(892명)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35.2%(1,057명)는 ‘보통이다’, 35.1%(1,053명)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한국 사회의 에이즈 인식 수준에 관련해서는 가장 많은 42.4%(1,267명)가 ‘낮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보통이다’(29.5%), ‘매우 낮다’(15.9%), ‘높은 편이다’(10.3%) ‘매우 높다’(2.2%)순이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여전히 HIV가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감염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사회는 그 인식을 빨리 바꿔내지 못했다. 거짓 뉴스가 재생산되며 여전히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라며 “여기서 국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했다. 하지만 그 역할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혐오가 계속 자라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키운 ‘혐오’라는 질병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혐오와 차별이 확산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특정 집단들을 향한 혐오 발언들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역과 종교, 감염자 등을 비롯해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그 표적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코로나19와 혐오의 팬데믹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그해 1~2월 SNS상에서 인종차별 발언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발병했다고 알려진 1월에는 ‘중국 우한 폐렴’ 등의 표현이 확산했다. 중국인 혐오 표현도 급증했다. 2월에는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를 조치하지 않아 코로나19가 확산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 시기, 인종 차별과 함께 지역 혐오 발언도 늘었다. 1월 말에는 우한 교민 수용을 둘러싸고 지역 차별 여론이 일었다. 2월 말에는 대구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 폐렴’, ‘대구 코로나’ 등의 혐오 표현이 급증했다. 이와 함께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 발언도 빠르게 확산했다. 대구 신천지는 대량 확진 사태를 촉발한 감염 전파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신천지는 ‘사이비 종교’, ‘이단’ 등으로 표현됐다. 특히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신천지 혐오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신천지 종교시설 강제 폐쇄와 집회 금지 행정 처분을 내렸다. 신천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연수원을 급습하기도 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등 12개 지파장을 살인죄·상해죄·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정치권은 혐오 여론을 확산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대구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당시에는, 여당 대변인이 ‘대구 봉쇄’ 발언을 해 찬반 논란이 번졌다. 은재식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운영위원장은 “혐오의 재생산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라며 “코로나19 초기 질병에 대한 무지도 있었겠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혐오를 더욱 크게 부각했다”라고 지적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았다. 이 역시 또 다른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했다. 2020년 3월, 대구 한마음 아파트에서 주민 46명이 집단 감염돼 아파트 전체를 봉쇄하는 코호트 격리가 이뤄졌다. 이곳이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 거주지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해당 아파트는 ‘혐오 시설’로 낙인찍혔다. 은재식 운영위원장은 “한마음 아파트는 1980년대부터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운영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저소득 여성을 위한 ‘시립 아파트’는 ‘신천지 아파트’가 됐다”라며“대구 혐오가 커지는 와중에, 대구 안에서는 또 다른 신천지 혐오가 매우 크게 확산했다”라고 설명했다.
5월 초부터는 혐오의 표적이 성소수자에게 향했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언론과 미디어는 ‘게이클럽’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키웠다. ‘우한 폐렴’에서 시작한 혐오가 ‘대구’, ‘신천지’를 거쳐 ‘성소수자’로 옮겨간 셈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확진자의 이동 경로 및 신상 글이 확산하며 이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의 여론도 높았다. 장애인과 여성 혐오 표현들은 코로나19 발생 전후 동안 여전히 상위를 기록했다.
혐오의 표적이 된 집단이 집단 감염 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선도 상당하다. 《워커스》가 전국 3,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혐오 표현에 대해 44%(1,321명)가 ‘옳지 않지만,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답했다. 혐오 표현에는 문제가 있지만, 피해 집단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랑희 활동가는 “과연 그들이 집단 감염의 원인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특정 장소와 공간에서 발생한 것이지 그들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 아니다” 라며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속성을 두고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고 얘기해버리면 그것은 혐오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특정 집단이 혐오의 표적이 된 건 언론과 정치권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는 “방역 당국과 정치권, 언론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굉장히 문제적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라며 “예를 들어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당시는 방역 조치가 완화됐던 때였다. 하지만 언론이 ‘게이클럽’이라고 지목하며 혐오가 확산했다. 혐오를 부추기는 말들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수용돼, 혐오를 증폭시켰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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