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비범죄화 1년7개월…'안전한 임신중지 하고 있습니까?'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 출범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해 각 단체들이 다시 손을 맞잡았다.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임신중지는 이제 더 이상 처벌의 대상이 아니며 건강권과 성·재생산 권리, 사회적 권리로서 보장돼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차별과 낙인,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하며 이에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한 번 본격적인 요구와 행동에 나서고자 한다”라고 출범 취지를 알렸다.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을 확대·재편한 연대체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22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나영 셰어 활동가는 “지금 한국에서 임신중지를 하는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낙태죄’가 ‘입법 공백’인 상태에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개정 입법 시한이 만료돼 2021년 1월 1일부로 임신중지가 전면 비범죄화가 되었음에도 정부와 국회, 보건의료 기관 등이 그에 따른 공적 시스템을 마련 하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책임의 공백’으로 인한 것”이라며 “국회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책임이 있는 정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관계 부처와 각 지자체에 찾아가 권리 보장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요구할 것”이라고 활동 방향을 밝혔다.

나영 활동가는 또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재생산 결정권’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둘 사이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영 활동가는 “임신중지를 법적 처벌이나 허용 기준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전제, 그런 식으로 생명권과 결정권을 법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전제 설정의 오류를 봐야 한다”라며 “임신중지에 대한 고민과 결정은 처벌 여부에 따라 이뤄지지 않으며, 생명은 단지 태어나는 것으로 보호되거나 보장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서 “국가가 해야할 일은 오직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누구나 자신의 삶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여건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국가는 태아나 여성에 대한 권리 조정의 합리적인 심판자나 제3자의 위치에 설 수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문설희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은 “우선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정부에 직접 전달할 것”이라며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오는 9월 28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에 보건복지부로 달려가 결과를 전달하겠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국회에도 직접 전달하겠다”라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 또한 유산유도제 도입의 빠른 도입을 요구했다. 이나연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는 “지난해 7월 시작된 유산유도제 허가절차를 식약처가 13개월째 통과시키지 않고 있어 한국에선 약물적 임신중지가 여전히 불법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라며 “처음 사용하는 신약의 허가도 통상 10개월이면 끝나는데, 개발된지 30년이나 지난 유산유도제의 허가가 미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식약처를 규탄했다.

이어 “식약처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정작 허가를 미루면서 국민은 더욱 위험에 처하고 있다”라고 꼬집으며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않은 유산유도제를 아주 비싼 가격에 구매하기 때문에 안전한 임신 중지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는 이날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7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임신중지 관련한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조건없이, 전면 적용할 것 ▲유산유도제를 조속히 도입하고 접근성을 확대할 것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체계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갖출 것 ▲임신중지를 가족과 국가, 교회 등 그 누구의 허락 혹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임신당사자 스스로 온전히 행하는 권리로 취급할 것 ▲예비보건의료인과 보건의료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 교사, 상담사, 통/번역사, 활동보조인, 일터의 관리자 등에 대해 권리보장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할 것 ▲곳곳에 남아있는 사회적 낙인의 잔재를 하루빨리 해소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시행할 것 ▲이미 법적 효력이 사라진 형법상 '낙태의 죄' 조항을 완전히 삭제할 것 등이다.


한편, 이날 발언에 나선 서지연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여성을 위한 안전한 임신중지 시스템의 부재를 토로했다. 그는 중증장애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안전한 임신 중지의 권리를 포괄한 성과 재생산의 권리는 당연히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삶을 살았다”라고 말했다. 서지연 활동가는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나의 의사보다 주변의 판단을 더 신뢰하며 내 의견은 대리되거나 대행되곤 했다. 임신을 중단하고자 할 때 어떤 지원과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건지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었다”라며 “이것이  바로 모두의 안전한 재생산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제가 경험한 일들”이라고 꼬집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성평등단협안을 시작으로 일터에서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성평등단협안은 일터에서 여성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고, 성평등한 노동 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박 부위원장은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 육아, 월경과 완경을 노동현장에서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위해 물리적으로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을 포함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민주노총은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편적 노동권이자 인권으로 확대하기 위한 내용을 투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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