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올해만 벌써 네 번째 철도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건이 발생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이 해외 일정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죽은 철도 노동자의 빈소가 아니었다. 원 장관은 9일 오후 10시, ‘철도안전대책 관련 직원간담회’를 한다며 찾은 영등포역에서, ‘장휘성 조합원을 돌려내라’ 외치는 철도노조 조합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날 원 장관은 직원간담회 전 영등포역 8번 승강장을 찾아 영등포역 탈선사고와 오봉역 작업자 사고 브리핑을 들었다. 5일 사고로 조합원을 잃은 철도노조는 장관이 나타나자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철도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은 원 장관이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 장휘성 조합원을 살려내라” “국토부가 주범이다” “오봉역 참사는 그간 안전 인력 충원과 시설 개선 요구를 무시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 “전시 행정 중단하고, 안전인력 충원하라” “국토부 차관의 망언, 즉각 사과하라”라고 외쳤다. 장관이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동료를 잃은 철도노동자들의 질타는 이어졌다.
철도노조는 원 장관이 회의실로 향하는 길도 막아섰다. 국토부 직원들과 철도경찰들이 철도노조를 막아서며 몸싸움도 10여 분 간 계속됐다. 30여 명의 철도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계속해서 이번 사망의 국토부 책임을 지적했고, 기재부가 추진하는 인력감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홍영희 철도노조 조직실장은 “국토부 장관이 밤 10시에 대책을 마련한다며 직원들을 부르는 전시행정을 하고 있다. 인력 충원이라는 안전 대책은 나 몰라라 하면서 무슨 안전 대책을 논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장관은 이 자리에 올 게 아니라 유족에게 먼저 가서 사과하고 오봉역에 가서 직접 현장을 봤어야 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상혁 의원실에 따르면 코레일은 '철도안전강화'를 위해 최근 2년간 861명의 안전인력 증원을 요청했으나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약 14%인 125명의 인력만을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증원 요청 인력 중 736명을 삭감한 것이다. 오봉역 참사 역시 3인 1조 작업을 2인 1조로 바꾸면서 발생한 사고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날 모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오봉역에 직접 가보시라. 조명은 어둡고, 안전통로는 좁고, 그 어려운 입환 작업을 작업자 두 명이 하면 한 명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장휘성 조합원이 사고를 당할 때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아무도 몰랐고,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이게 우리가 3인 1조를 요구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인력 문제 없다는 입장 재확인한 국토부, 작업자 탓하다 이젠 노조 탓까지
그러나 이날 국토부 관계자는 인력 문제는 없다는 식의 발언으로 또 한 번의 논란을 자초했다. 오봉역 사망사고를 작업자의 ‘안전무시 작업 태도’ 때문이라고 밝힌 국토부 차관에 이어 다시 한번 작업자 개인에게 사망 사고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이번 사망 사고를 ‘코레일의 유지보수 과정에서 관리가 미흡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무자라고 밝힌 국토부 철도안전정책 과장은 “(사망자가) 돌아가신 자리에서 1m 떨어진 곳에 도보로가 있다. 입환 작업을 할 땐 도보로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하면서 사망자 과실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아까 2인 1조를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운전자격 내규에는 기관사를 제외한 2인 1조 구성이라고 명시돼 있다. 2인 이상이라는 건 수학으로 봤을 때 2명을 포함하는 조치다. 여기서 잘못된 것은 없었다”라며 3인 1조 요구를 일축했다. 더불어 이 관계자는 ‘무선입환’ 시스템 도입이 늦어지는 것을 인력 감축을 우려한 “노조의 반대” 때문이라고도 밝혀 현장에서 더욱 원성을 사기도 했다.
같은 시간 철도노조에선 원희룡 장관의 영등포역 일정에 대한 논평을 내고 “원희룡 장관이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오봉역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유가족들이 계신 곳이다. 주무부처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다”라고 밝혔다. 철도노조는 “수년째 현장 직원들이 오봉역 작업 현장의 위험성을 피력하며 인력증원과 작업환경 개선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해오던 국토부다. 작업수칙 운운하기 전에 이동통로조차 확보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왜 불안전하게 작업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폈어야 한다”라며 “국토부 장관은 더 이상 고인과 철도노동자를 욕되게 하지 말라”라고 규탄했다.
유족 역시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 환경을 지적하고 있다. 유족 A씨는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알아달라”며 “같이 일하던 사람이 1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이상하다는 걸 빨리 인지해서 멈췄더라면, 피할 공간이 넓어서 빨리 도망쳤더라면, 사전 예방을 했더라면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오봉역은 평소 화물열차를 조성하기 위해 차량을 연결 및 분리하는 곳으로 통상 3인이 한 조를 이뤄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사고 당일 2인 1조로 작업하다 참사를 당했다. 2020년 오봉역은 4조 2교대로 전환하며 한 조를 늘렸으나, 인력 충원은 없었다. 3개 조로 운영되던 기존 인력을 4개 조로 늘리면서 조당 인력이 부족해졌다. 2019년 4조 2교대 전환에 따른 필요 인력을 산출하기 위해 노사공동 직무진단을 실시한 결과 1,865명의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현장에 반영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 데도 기재부는 정부 혁신 라이드라인에 따른 인력감축 및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어, 산재사망으로 나타난 철도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더욱 위험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만 벌써 네 명의 조합원이 작업 중 순직한 철도노조는 이어지는 산재 사망의 원인을 ‘인력부족’이라고 보고 지난 7일 기재부 앞 농성에 돌입했다.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동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만들겠다”라며 “기재부가 협의에 나서지 않는다면 모든 방법을 통해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