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화물연대 정책실장은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국토부가 (안전운임제의) 직접적 목표가 달성됐지만 불리한 지표에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전운임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단(적절한 운임)이 충분히 활용됐는지, 직접적 목표(과로·과속·과적 운행 방지)를 달성했는지를 통해 궁극적 목표(교통안전 확보)에 이르렀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박 실장의 지적이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자체도 화물자동차 안전 운임을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하여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당 지적에 따르면, 제도의 직접적 목표는 달성됐다. 지난해 국토부 의뢰로 한국교통연구원이 진행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보면, 노동시간 감소와 과적 문제 개선과 관련한 안전운임제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과 시행 후인 2021년을 비교한 결과, 노동시간이 컨테이너와 시멘트에서 각각 5.3%, 11.3%, 평균 8.3%가 감소했다. 마찬가지로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비율도 컨테이너와 시멘트에서 각각 29.1%에서 1.4%로, 50.5%에서 27.4%로 확연히 줄었다. 과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비율도 시멘트 품목의 화주 73%, 운수사 56%로 나타났다.
또한 국토부는 안전운임제에 대한 품목 확대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화물연대가 우선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철강, 위험물, 카캐리어, 사료·곡물, 택배 지선·간선 등 5개 품목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품목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여당은 화물연대가 ‘귀족 노조’라거나 ‘세력 확장’을 위해 화물연대가 파업을 벌인다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화물노동자들은 해당 소득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만든 화물노동자들의 소득
이에 이날 토론회에서도 품목별 화물노동자들이 직접 노동실태에 대한 발언에 나섰다. 화물연대가 올해 6월 진행한 조합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앞선 5개 품목의 화물노동자들은 평균 월 342만8천 원의 수입을 위해 하루 14시간, 월 24일을 일하고 있다. 이를 시간당 운임으로 계산하면 9,932원으로 최저임금(2022년 9,160원) 수준이다.
화물연대는 안전 운임 확대를 요구하는 품목은 대형화물차로, 사고 발생 시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2020년 2월 위험물을 실은 탱크로리 차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다친 사건이 있었고, 지난해에도 카캐리어 사고로 3명이 죽고 16명이 다쳤다.
14년째 유조차량을 운행 중인 이금상 화물연대 조합원은 새벽 1시에 눈을 뜨고 새벽 2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까지 일한다고 했다. 앞선 화물연대 실태조사에서 위험물 운송 노동자가 하루 평균 14시간 일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이 씨는 이보다 더 오래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달에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한다.
화물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너무 잘 아는 이 씨는 평소 가족에게도 운전할 때 대형차를 피하라고 말했다. 이금상 조합원은 “아내에게 운전할 때 절대 대형차 앞에 가지 말라고 한다. 특히 새벽 시간, 오후 시간에는 눈 똑바로 뜨고 운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저도 졸다가 대형 사고가 난 이후로는 물량이 요동칠 때면 아내를 옆에 태우고 운전한다. 제가 졸면 아내가 옆에서 저를 파리채로 때렸다”라고 아찔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화물노동자들이 말하는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변화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 ‘게으르다’고 소문이 났었다는 이성철 화물연대 시멘트운송 조합원은 하루에 15시간을 일하고 두 끼를 챙겨 먹던 노동자다. 시멘트 품목은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데, 그는 제도 시행 이전 다른 시멘트 운송노동자들이 “밥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운전하면서 김밥을 먹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성철 조합원은 시멘트 운송노동자들이 하루 최소 15시간, 많게는 22시간 동안 일한다며, 일주일에 최소 6일 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한 사람들은 자는 시간을 두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자는 것에 아주 도가 텄다”라고 말한 그는 “10분 딱 자려고 치면, 8초 만에 곯아떨어지고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10분 만에 일어난다. 일어나면은 여기가 어딘지, 차에 짐을 실었는지 안 실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낮인지 밤인지가 잠시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차량 대기시간에 졸다가 발생하는 사고도 비일비재했다. 이성철 조합원은 “공장 앞 4차선 중 2차로에서 대기 줄을 서 있다가 앞에 차가 진입로로 들어가면 10m 정도를 당겨야 한다. 이 때문에 대기 상태에서도 잠을 못 자지만, 100% 졸음운전을 하고 있다”라며 “10m 전진하다가 앞차를 들이받아서 2천만 원을 물어준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있다. 제가 죽을 뻔한 사고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장거리 컨테이너 화물운송 노동자인 김윤진 씨는 화물연대 조합원이 아니지만, 파업에 참여 중이다. 김 씨는 컨테이너가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으로, 제도 시행 전후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부산 왕복을 제도 시행 전에는 일주일에 4번 했는데, 제도 시행 후에는 일주일에 3번~4번으로 업무량이 조금 줄었다는 것이다. 편도로만 5~6시간이 걸리는 일을 한다는 그는 운전석에 앉아만 있는 시간이 하루에 최소 12시간~13시간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같은 화물노동자들과 “하루 2시간 자면 좀 적게 잤고, 3시간 자면 평균, 4시간 이상이면 많이 잔다고 얘기”한다고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 정부들이 안전운임제 도입을 통해 화물노동자들의 총파업에 대응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캐나다 밴쿠버항에서는 2005년, 2014년 컨테이너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물류망이 마비됐다. 2005년 정부의 중재로 산업 이해당사자 간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최저운임 기준이 처음 만들어졌고, 2014년 안전운임제가 영구적으로 법제화됐다. 브라질의 경우에도 2018년 유가 폭등 속에서 화물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파업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전국 수준의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관련해 발제를 맡은 임월산 국제운수노련 부위원장은 한국 안전운임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에 대해 “국제노동기구는 한국 안전운임제를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 안전 증진’을 위한 모범제도로 평가한다”라며 또 “뉴질랜드와 호주,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노사정 이해관계자들은 한국 안전운임제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화물연대와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