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 모퉁이를 밝혀온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 이야기

[이슈] 학교 구성원 중 청소노동자만 사용 못하는 샤워실이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덕성여대 행정동 건물 내부에 "지구 한 모퉁이가 우리 때문에 환해졌습니다"라고 적힌 선전물이 붙어 있다. [출처: 은혜진 기자]

“지구 한 모퉁이가 우리 때문에 환해졌습니다” 평균 나이 63세. 최소 10년 이상, 최대 인생의 절반 가까이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일해온 청소노동자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글귀가 덕성여대 총장실 앞에 붙어있다. 지구 한 모퉁이를 밝힌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15년 동안 올려낸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230원 높은 9,390원. 그리고 이들은 올해 시급 400원 인상을 위해 덕성여대 총장실 앞 철야 농성을 50일 넘게(11월 24일 기준 52일 차) 진행하고 있다. 그 사이 전면파업 9일, 간부파업은 14일까지 이뤄졌다. 올해의 상황은 덕성여대 노조 투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농성장을 방문했다가 지난 명절 때도 보지 못한 진수성찬을 조합원들로 부터 대접받은 《워커스》 기자. 학교 측은 “억지 농성”이라 비난하지만, 음식을 나눠 담으며 “역시 여럿이 먹어야 맛있어” “재밌어”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 앞 농성장에서 "역시 여럿이 먹어야 맛있어"라고 말하며 저녁을 차렸다. [출처: 은혜진 기자]

“덕성여대는 ‘낙제’입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울지부)는 지난 11월 2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정문 앞에서 “덕성여대는 ‘낙제’입니다”라고 적힌 기자회견 현수막 뒤에 섰다. 전날, 시급 400원 인상 등을 요구해온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에게 학교가 구조조정을 전제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5년간(2022년~2026년) 12명에 이르는 정년 퇴직자 TO를 충원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앞서 지난 10월 임금인상을 전제로 4년간 10명에 이르는 정년 퇴직자 TO를 대학이 재정 상황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기존 안보다 후퇴한 것이었다. 학교는 청소 면적을 대학이 재산정해 필요 인력을 정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당시 노조는 관련 논의를 4자 협의기구(대학 · 교직원노조 · 청소용역회사 · 노동조합)를 구성해 진행하자 했으나, 학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노조가 “청소면적이 감소해 필요 인력이 줄어든다면 노동조건이 악화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조하겠다”고까지 했으나, 오히려 입장차는 더 벌어지는 상황이다.

농성 44일 차에 만난 윤경숙(65)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분회 분회장은 학교 측 안에 대해 “그런 안(구조조정 전제 임금인상 안)을 받을 노동조합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사실 이미 10년간 등록금 동결 등의 이유로 7~8년에 걸쳐 8명에 가까운 인력의 자연 감소가 이뤄지기도 했다. 현재 덕성여대 용역 업체 프로에스콤에 소속된 청소노동자는 총 51명. 이들은 도봉구 덕성여대와 종로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청소업무를 하고 있다. 5년간 12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학교 측의 안은 현원의 무려 23.5%를 감축하는 일이다. 학교 측은 이를 위해 교수연구실, 실습실, 학과실 등을 청소 면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지만, 조합원들은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윤 분회장은 “교수연구실, 학과실을 청소하지 않는 학교가 어디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심지어 확인 결과 “실습실에서도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도 학교의 수업과 운영을 위해 기본적인 수준으로 청소하고 있는데, 면적을 줄일만한 불필요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원순(65) 조합원도 학교가 줄이겠다고 제시한 청소 공간이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그렇게 많지 않다”라며 인력이 축소되면 “현재 진행 중인 건물 주변 청소도 못 하고, 일도 거칠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용역 업체 입찰 당시 학교가 적어낸 청소 면적이 706평에 달한다고도 덧붙였다.

학교는 노조가 앞선 기자회견에서 덕성여대가 낙제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 지난 11월 8일 “학생 · 조교 · 직원 · 교수에게 공개적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며, 회사와 소속 미화 근로자 노조에 손해배상, 명예훼손 등 민 · 형사상 법적 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서를 업체 측에 접수했다. “대학 기관 평가인증 기간 중 기자회견 · 피켓시위 · 선전전 등으로 현장 평가에 불리하도록 유도해 정상적이지 않은 대학으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11월 14일 자 내용증명서에는 같은 달 9일 오후 진행된 노조 집회로 대학 행정 업무에 방해가 됐다며 이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하겠다고 적혀 있다. 지난 10월 학교가 담화문에서 “‘노동자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기대어, 대학 캠퍼스를 투쟁 구호판으로 만들고 억지 주장을 일삼는 불법행위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상황이 발생 할 경우, 대학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추가적인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예고한 그대로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농성 44일 차인 지난 11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집단교섭 투쟁 집중 결의대회’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출처: 은혜진 기자]

농성 44일 차인 이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집단교섭 투쟁 집중 결의대회’는 20차를 맞았다. 이 또한 서울지부 청소노동자 집단교섭 10여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학교를 이토록 비판하는 데에는 서울지부 소속 13개 대학 · 재단 청소노동자 사업장 중 덕성여대만 시급 400원 인상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집단교섭 참여 청소노동자들도 임금인상 소급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집단교섭은 지난해 11월 시작해 벌써 1년이 됐고, 곧 내년도 교섭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의 시급 400원 인상 요구는 노조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로, 최초 제시한 시급은 440원이었다. 시급 400원 임금인상 요구가 반영될 시 시급은 9,790원. 이는 올해 서울시 생활임금(1만766원), 서울시교육청 생활임금(1만1,240원)보다 적다. 서울지부에서 집단교섭을 진행 중인 조합원 규모는 1,300명 정도다.

1인당 300만 원 용역비, 노동자 월급은 185만 원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엔 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래인 ‘진짜 사장이 나와라’가 울려 퍼지고, “대학이 진짜 사장”이라는 구호가 따라붙는다. 현재 덕성여대 측이 청소노동자 노조와 지속해서 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노조 요구인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 등도 학교 측의 동의 없이는 해결할 수가 없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도 간접고용의 문제가 제기됐다. 정운교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본부장은 투쟁 발언에 나서 “학교는 지금 문제를 고소·고발이 아닌, IMF 이전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덕성여대에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 용역회사가 가져가는 돈이 못해도 20%는 될 것이다. 그 돈을 직접 고용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처우 개선을 위해 사용한다면 문제는 깔끔히 해결될 것”이라면서 “덕성여대는 청소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농성 44일 차인 지난 11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집단교섭 투쟁 집중 결의대회’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출처: 은혜진 기자]

조합원들도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직접 고용이 되면 시급 400원을 두고 싸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학교가 용역 업체에 지급한 돈이 총 26억 원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한원순 조합원은 “용역비를 노동자 1인당으로 계산하면 돌아오는 돈은 360만 원이다. 그런데 현재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세후 185만 원”이라고 지적했다. 직접 고용이 된다면, 2년마다 바뀌는 용역 업체와 매번 근로계약서를 새로 쓸 필요도 없다.

대학은 청소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임금을 인상해왔다고 항변한다.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올해는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이는 지난 9월 28일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이 밝힌 내용이다. 김 총장은 그러면서 대학의 교수·직원들의 급여는 지난 10년간 임금 동결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의 임금과 교직원의 임금은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다. 임금체계부터 따져보면 청소노동자들은 직무급이지만, 교직원들은 호봉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은 식대 12만 원, 기타수당 2만 원~3만 원이 포함된 세후 185만 원이다. 그리고 명절에는 상여금 30만 원을 받는다. 반면 “교직원 임금 항목에는 호봉에 따른 본봉, 상여금, 특별상여금 외에도 보직수당, 보직자교통비, 정근수당, 근속수당, 복지수당, 정보화 교육비, 가족수당, 명절 휴가비, 제수당 등”이 포함돼 있다. 노조가 “청소노동자 외에도 수십 명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정도만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올해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이례적으로 길어지는 이유는 총장이 바뀌었기 때문도 있다. 올해 들어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 관계자를 면담해도 늘 “총장의 의지라서 어쩔 수 없다”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다. 올해 초 임기를 시작한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은 본인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까지의 청소노동자 정년퇴직 TO를 임금인상 전제로 충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매년 진행될 교섭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덕성여대 행정동 건물 내부에 붙은 선전물. [출처: 은혜진 기자]

노조 설립은 아슬아슬했지만, 이를 통해 바꿔낸 것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노동조건을 조금씩 개선해왔다. 2007년 10월 24일 진행된 노조 발대식에 참석한 노동자는 17명. 지금은 다른 직군 노동자(보안 · 관리 등)를 포함해 41명으로 늘었다. 이중 청소노동자는 36명이다.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한원순 조합원은 2005년부터 덕성여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본인이 직장을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노조 조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노조를 조직했을 때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원순 조합원은 노조 조직 당시 학교의 눈을 피해 노동자들을 한 명씩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노조 조직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업체에 들켰다. 그때가 딱 17명째 노동자를 만났을 때였다. 그날은 조합원이 될 노동자들이 한곳에 모이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업체는 이날 저녁부터 노동자들을 한 명씩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이날 모임은 한원순 조합원을 비롯해 3명만이 참석했다. 다음날, 한원순 조합원에게도 업체가 면담을 하자고 했고, 그는 업체에 “나이 들고, 열악한 사람들한테 업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번개’로 노조 발대식이 진행됐다. 입사 때부터 덕성여대에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다는 한원순 조합원은 노조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18년 차 청소노동자가 됐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덕성여대 행정동 건물 내부에 붙은 선전물. [출처: 은혜진 기자]

노조 설립 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한원순 조합원은 “무슨 이런 직장이 있나 싶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덕성여대에서 일하기 전까지 정수기 점검 노동자였다는 그는 학교가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노조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입사하며 받은 작업복은 너덜너덜하고 단추도 떨어진 상태였고 얼어 죽을 정도였다고 했다. 게다가 용역 업체 소장과 친하지 않은 노동자는 가장 일하기 어려운 곳에만 배치됐다. 노동자들은 풀이 잘 뽑히는 비 오는 날엔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쓰고 잡초들을 뽑으러 다녔다. 상여금은 1만 원짜리 상품권 3장이 다였다. 토요일 노동은 노조가 설립되고 가장
먼저 없앤 일이었다.

학교 구성원 중 청소노동자만 사용 못하는 샤워실

윤경숙 분회장은 10년 전 입사 당시 직접 고용 노동자가 4~5명 정도 있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로부터 자녀 등록금 지원을 받았고, 퇴직금 액수도 달랐다. 체육관에 있는 헬스장을 윤 분회장을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직접 고용 노동자들은 이용할 수 있었다. 학교가 진행하는 워크숍에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가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 모두가 간접고용 형태인 지금, 이들은 학생 · 교직원이 쓸 수 있는 샤워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누가 사용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지만,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윤 분회장이 학교 측에 지나가는 말로,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샤워실을 사용하고 있으니, 일정한 시간대라도 청소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경숙 분회장은 지금의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까지 5년이 조금 넘게 남은 시간, 그의 목표는 올해 임금인상 투쟁이 전부가 아니다. 윤 분회장은 “나에게 덕성여대는 마지막 직장, 지금의 노조는 처음이자 마지막 노조가 될 것이다.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장애 유무, 성별, 직군을 넘어 노동에 있어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농성 44일 차인 지난 11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집단교섭 투쟁 집중 결의대회’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출처: 은혜진 기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농성 44일 차인 지난 11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집단교섭 투쟁 집중 결의대회’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출처: 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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