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이 까짓것 별거냐. 깡다구로 붙는 거지.
여기 우리 이렇게 모였잖아. 그래서 파업 투쟁 승리.
힘들 땐 동지를 쳐다봐. 자랑스러운 얼굴이야.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비조합원들이 16일간의 총파업을 마무리하고 복귀한 다음 날인 12월 10일 오후, 국회 인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화물안전운임제 사수! 노조파괴 윤석열 정부 규탄! 국민안전 외면 국회 규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가 문화노동자 박준 씨의 노래 공연으로 흥겹게 진행되고 있다.
▲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화물안전운임제 사수 등을 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장면. |
코로나를 핑계로 정리해고 당한 지 1년이 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과 원하청이 공모한 노조파괴에 맞서 1년 넘게 농성 중인 세브란스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이제그만’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 등 투쟁하고 있는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박희은(민주노총 부위원장)·유최안(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김춘택(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국장)·정용재(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단식농성 6일 차) 씨도 맨 앞자리에서 함께 한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이들에게 위로·격려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석한 집회인지라 구호와 박수, 함성소리가 여느 집회 때보다 크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피할 수도 있고 광기 어린 칼날이 번쩍일 때는 일시 몸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의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저들은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안전운임제의 쟁취는 이미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팔순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백기완노나메기재단 김세균 고문(서울대 명예교수)이 현장으로 복귀한 화물노동자들을 위로한다.
“무엇이 불법이냐 합법이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합법이라면 합법이고, 불법이라면 불법이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법비라고 합니다. 법비가 판치고 지배하는 세상, 그 우두머리가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법비’(法匪)란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비(匪)는 도적을 의미하므로, ‘법비’는 법을 이용하여 도둑질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세균 고문은 현 정권이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처벌하는 ‘법비 독재 체제’를 만들어 경찰을 하수인으로 삼고, 국회를 심복으로 삼는 사회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 12월 10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백기완노나메기재단 김세균 고문. [출처: 연정] |
화물연대가 승리하길 바라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파업 중이었다면 함께 했을 화물노동자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이날 국회 앞에서 정부와 국회를 규탄하는 함성이라도 속시원하게 지르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총파업을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를 위한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에 진심으로 함께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화물노동자들이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다. 대통령과 정부·국회·언론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막막했던 게 바로 엊그제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느낀 압박과 고통은 내가 느낀 것에 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복귀하는 날, 파업 현장에서 만났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던 화물노동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회신이 없다. 보름 동안 세워놓은 차에 시동을 거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그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이가 있다.
“지난 여름, 파업을 마무리하고 정신을 차리고 든 느낌은 팔 하나 정도는 자른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걸겠다고 이야기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참담한 결과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동지들이 흘리는 피눈물을 보고, 나는 팔 한 개는 잘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웃고 있습니다. 웃을 수 있습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공권력에 맞선 파업을 전개하고, 화물연대 동지들이 업무개시명령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며 겪었던 어려움 또한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은 웃을 수 있습니다. 1년, 2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딱 오늘까지만 아프고 함께 웃읍시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투쟁 중에 1미터 0.3평 철창 안에 자신의 몸을 가두고 31일간 투쟁했던 유최안 씨다. 단식농성 12일 차인 최안 씨는 이날도 환하게 웃으며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누구보다 씩씩한 팔뚝질로 집회에 함께 한다.
▲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 단식농성 참가자들이 12월 10일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최안·박희은·이김춘택·정용재 씨. |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잘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것들은 안 된다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했습니다. 노동조합 지켜냈습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파업한다고 했을 때, ‘니 거밖에 모르는 니들은 절대 못 한다, 사람새끼 같지 않은 니들은 절대 못 한다’ 했지만, 결국 했습니다. 그래서 뭐 얻었냐? 뭐 바꿨냐? 뭐가 좋아졌냐? 나는 바뀌었습니다. 나는 이겼습니다. 나는 한계를 넘었고, 내가 속한 계급·노동자를 사랑할 줄 아는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는 화물연대가 승리하길 바라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의 괴로움이 아닌 망설이고 있는 저 인간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내 가족 내 새끼밖에 모르는 인간들의 가슴 속에 거름을 덜어낼 수 있게 여러분들이 우리가 그리고 내가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화물연대 동지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