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여성 노동자 젠더폭력 사건, 그리고 바뀐 것은 없었다

[여성, 노동의 기록] 성차별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서울교통공사에서 노동한다는 것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9월 14일, 신당역에서 여성 노동자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신당역 역무원으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오후 9시쯤 혼자서 내부 순찰을 하다가 스토킹 가해자에 의해 사망했다. 고인은 가해자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불법촬영 혐의로, 올해 1월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고인을 등록해 겨우 한 달짜리 보호조치를 취했다. 고인은 가해자로부터 계속 위협을 받았고 목숨까지 잃게 됐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의 일상은 한 차례 무너졌다.

신당역 사건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여성 노동자 안전에 대해 안이한 일터에서 일어났다. 국가와 기업이 젠더 감수성이 있었더라면 한 여성의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신당역 여성 노동자 젠더폭력 사건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서울교통공사 김상범 사장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현장 순찰이 아닌 CCTV를 이용한 가상 순찰을 도입”하는 것으로 순찰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복무요원을 재배치하고 여직원에 대한 당직 배치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근무제도를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고인이 살해당한 시간은 새벽 근무인 당직 중일 때가 아니라 순찰 중인 오후 9시쯤이었다. 공사는 노동 현장의 운영과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여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렇게 되면 당직을 모두 맡게 되는 남성 노동자들의 불만은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향하게 된다.

심지어 공사는 노동자들에게 삼단봉, 가스분사기 등 호신 장비를 보급하겠다고 했다. 일터 내 성폭력 가해자를 분리하고 안전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의 대안은 가져오지 않았다. 역무원으로 현장에 있는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이현경 대의원은 이러한 공사의 대처를 우려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저는 그 얘기 듣자마자 ‘이제는 사고가 나면 징계도 받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럴 거 아니에요. ‘우리는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 모든 걸 다 챙겨줬는데 너는 왜 순회할 때 방검조끼 안 입냐. 삼단봉은 폼으로 들고 다니라고 준 게 아니다’ 이럴 거 아니냐고요. (…) 오히려 나의 책임만 더 가중시키는 물건들이라고 생각해요. 더 근본적인 인원과 관련해서 지금 (서울)시에서는 인원을 줄이라고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결 방향이) 전혀 달리 가고 있는 거죠.”

신당역 사건이 잊히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공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현장은 변한 것이 없다.

성차별적인 공기업, 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의 일터 내 젠더폭력에 대한 간과는 성차별적인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와 기업의 무책임에 대해 분노하던 보신각 집회에서도 이현경 대의원은 이를 짚었다.

“면접 점수를 조작해서 여성 응시자를 탈락시키는 회사입니다. 여성 침실을 만들지 않고 여성을 야간 노동에 투입하는 회사입니다. 나이 든 여성 노동자를 혐오하고, 생리휴가 사용을 조롱해도 방치하는 회사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고 2차 가해에도 징계하지 않는 회사입니다.”

9월 22일 열린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집회에서 이현경 대의원의 말대로 서울교통공사는 2016년 채용 성차별로 크게 문제가 된 공기업이다. “여성이 하기 힘든 일이고 야간 근무 시 여성용 숙소도 마련돼 있지 않은 등 현장 여건도 여성을 채용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합격할 수 있는 여성 응시자의 점수를 합격점 미만으로 수정해 불합격 처리했다. 이후 공기업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며 여성 응시자도 채용될 수 있게 됐다.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되기 이전 서울도시철도의 경우, 여성과 남성 노동자의 교대근무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근무 형태는 교대하는 남성 노동자들을 보조하고 받쳐주는 근무 형태였어요. 기본적으로 자동화된 시스템을 전제로 교대 인력을 아주 최소로 잡았어요. 그리고 최소로 잡은 인력을 여성들이 보조하는 방식으로 근무 형태를 짠 거예요. 그동안 근무 형태가 여러 차례 바뀌긴 했는데 지속적으로 인력 문제에 부딪히니까 남성 노동자들이 뭘 요구하겠어요. ‘너네도 교대해.’"

교대근무를 하는 남성 노동자의 불평은 여성 노동자를 향하기 쉬웠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되고 입사한 여성 노동자들은 교대근무를 맡게 됐다. 그러나 기존 남성 노동자를 기준으로 짜여있던 교대근무 시스템은 여성 노동자를 위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 일례로 역마다 남성 노동자 침실은 있지만 갑자기 투입된 여성 노동자를 위한 침실은 단 몇 개 역에만 있을 뿐이다. 여성 노동자를 위한 침실이 늘어나고 있다만 여전히 부족해서 여성 노동자는 교대근무를 위해 역을 옮겨 다녀야 한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성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를 위해 우리가 나선다

이번 신당역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내 ‘책읽는여성 노동자모임(이하 책모임)’은 빠르게 입장을 발표했다. 책모임은 신당역 사건을 젠더폭력 사건이라 명명하고 안전하게 일할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됐다며, 공사에 안전 대책과 성평등한 조직 문화 구축 등을 요구했다.

책모임은 몇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계속 모여 페미니즘과 노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함께 공부하며 현장을 지키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11월 말 모임이 50번째 모임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이현경 대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 노동자가 성평등한 일터. 그런데 그걸 누가 만들겠어요. 저는 여성 노동자가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문제를 푸는 거예요. 우리가 느끼는 어떤 민감함과 저 사람들(여성이 아닌 사람들)이 갖는 민감함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그러면 그 민감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죠.”

동료를 잃고 구조적 성차별이 만연한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좌절만 하고 있지 않았다. 계속 모이고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를 위한 투쟁에 나설 주체가 여성 노동자라는 말에 함께 바꿔 갈 세상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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