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몰이 타깃이 된 민주노총 “노동 3권이 위험하다”

[이슈] 92년 이후 최대 규모?…혐의에 혐의를 더해 만든 간첩단 사건

차례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① 종북몰이 타깃이 된 민주노총 “노동 3권이 위험하다”
② 국정원의 위험한 직업활동, ‘프락치’ 공작사건
③ “형님”과 ‘수사관’의 경계에서 조작된 대공수사
④ 국정원-보수언론-보수단체 삼각구도가 만든 ‘세월호의 나쁜 아빠’
⑤ 국가정보원의 집행검 ‘국가보안법’

한자 ‘異(다를 이)’는 ‘다르다’나 ‘기이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異’자의 갑골문을 보면 얼굴에 가면을 쓴 채 양손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異’자는 얼굴에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을 그린 것이다. 흔히 하지 않는 행동이니 이상할 법도 하다.
현재 ‘간첩단’ 수사에 열을 올리며 여기저기서 출몰 중인 국정원의 모습은 참으로 이적(異的)하다. 대공수사에서 ‘밀행성’을 목숨줄과 같이 여겼던 국정원은 ‘국가정보원’이라는 다섯 글자가 새긴 점퍼를 입고 민주노총(서울)에도 금속노조(창원)에도 진보당(제주)에도 등장했다. 이런 국정원의 기이한 행동의 명분은 북한의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사건이다. 혐의에 그치는 사건들이지만 국정원 전용 스피커에 의해 사건은 ‘전국구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의 기이한 행보를 두고 2024년으로 예정된 대공수사권 이관을 되돌리려는 ‘기획’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워커스》는 국정원의 이적(異的) 행위로 인한 피해들을 다시 되살펴 봤다. 다시 활개를 치는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는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도 그만큼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난 1월 18일, 압수수색을 위해 민주노총을 찾은 국정원 [출처: 노동과 세계]

댓글 조작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민간인 사찰, 부당한 정치 개입 등이 드러나며 잔뜩 입지가 좁아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차례로 감옥에 보내고 그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할 개혁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2024년까지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61년 이래 국정원 관련 법 개정이 18차례나 있었지만, 국정원 창설 6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대공수사권 폐지 요구가 있을 때마다 결사 항전하던 국정원도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국정원은 개정안 가결 직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법 개정으로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라며 “검·경 등 유관기관들과 협력채널을 구축하고 전담조직도 신설해 대공수사권을 차질 없이 이관하겠다”라고 밝혔다. “중단없이 개혁을 실천하고 더 큰 성과를 내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라는 다부진 포부도 덧붙였다. 하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은 안보수사 공백 등을 이유로 즉시 시행되지 못하고 3년 유예라는 조건이 붙었다. 국정원 내 일부 세력과 여당의 반발로 소위 ‘절충안’이 제시된 건데, 민주당이 살려둔 그 불씨가 현재 불붙는 공안정국의 상황으로 되살아났다.

국정원의 활동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2016년, 2017년의 묵혀둔 사건들을 꺼내며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 사건을 전국 규모로 키우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든든한 지원 속에 철 지난 간첩 사건 수사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 특별사면에서 원세훈, 이병효, 남재준, 이병기 등 전직 국정원장을 비롯해 국정원,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사이버작전사령부 등 정보와 안보기관 인사들에 대해 대거 사면 복권을 진행(1)한 바 있다. 지난해 충북, 창원 등지에서 수사 중인 간첩단 사건은 이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의 간첩사건으로 확대됐다. 지난 1월 18일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를 이유로 민주노총 본부와 민주노총의 산별노동조합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더니, 지난 2월 23일엔 역시 국보법 위반 혐의를 이유로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2월 18일엔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총장과 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일명 ‘제주간첩단’ 혐의를 받는 이들이다.

민주노총에 붙인 종북 딱지, 아직도 못 뗐다

국정원은 오랫동안 민주노총과 전농, 진보당 등을 반정부 세력으로 분류해왔다. 좌파, 좌익, 종북 같은 단어가 혼동돼 쓰였고, 이러한 분류는 노동조합과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를 공격하고,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은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3대 종북좌파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을 무력화하기 위해 제3노총 신설까지 추진했다. 민주노총의 산별노조이기도 한 전교조를 상대로는 보수, 학부모단체를 금전적으로 지원해 이들에게 전교조를 공격의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 비판세력에 대한 동향 파악과 함께 이들의 투쟁을 조직적으로 진압하려 했다. 당시 국정원은 촛불집회 등을 함께 진행한 단체 및 조직들을 파악해 “경기동부연합 등 범좌파”가 배후에 있다고 파악, “종북세력의 ‘세월호 사고’ 이슈 활동, 반정부 투쟁 전개 여부 등 추적이 필요”(2)하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좌파 세력엔 민주노총, 민변이 직접적으로 거론됐고, 당시 세월호 대책회의에 나섰던 618개 단체도 포함됐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국정원은 참사 직후부터 다음 해까지 상당 기간 세월호 유가족과 민간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휘부와 청와대에 보고하였는데 보고서의 상당수가 이들을 ‘반정부세력’, ‘비판세력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큰 이슈였던 세월호특조위 구성과 관련해 별정직 조사관으로 채용된 인물의 정치 이념 및 활동 경력 등을 조사해 첩보와 보고서 등을 만들기도 했다. 국정원은 별정직 조사관으로 채용된 31명의 정보를 확인해, 반정부 성향의 인물임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비식별 처리된 보고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국정원이 어떤 내용을 기재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사참위가 해당 문건을 열람하고 메모한 기록에 따르면 ‘별정직 공무원 채용자 신원 특이사항’을 다룬 문서에서 “통진당 잔당 000, 전 민노당 당원 000000 000 등 골수 종북, 좌파 다수” 등이 기록돼 있었다.


한편, 국정원이 민주노총 간부 등을 상대로 발부한 수색영장 자체도 그 내용에 무리한 부분이 많다. 국정원은 아주 얕은 관계성까지 주목해 간첩 혐의를 제기했다. 그중 하나가 충북동지회와의 연관성이다. 국정원은 통신 조회를 통해 민주노총 간부와 충북동지회 소속 관계자가 연락한 기록을 찾고 교류 자체를 문제 삼았다. 충북동지회 소속 활동가가 만든 언론사의 페이스북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시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찬양·선전하는 게시물이 다수 게재돼” 있다는 이유였다.

충북동지회 소속 인물들의 국보법 위반 혐의 사건을 변호했던 정병욱 변호사는 “단순 교류를 국보법 위반 혐의 영장에 갖다 붙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하는 포괄적, 추상적 수사라고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좋아요, 팔로우를 누른 것도 통신 행위이긴 한데 이걸 찬양고무죄라고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하지 않나”라며 “그러니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국보법 자체도 위헌 소지가 큰데 관행적으로 너무 포괄적인 수사가 진행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충북동지회 사건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공판 중이라고 그 사람과 교류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은 건 잘못된 수사다. 법원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 이런 부분을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1월 18일, 압수수색을 위해 민주노총을 찾은 국정원 [출처: 노동과 세계]

국정원 활동에 동원된 보수언론들

국정원이 그리는 전국 규모 간첩단 사건 한 가운데엔 민주노총이라 불리는 남한 사회 최대 대중조직이 있다. 124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민주노총을 그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북한 문화교류국 대남공작의 일환이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전·현직 간부 등 주요 인물이 북한에 의해 포섭됐다는 게 이번 간첩단 사건의 요지다. 보수 언론과 국정원은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단이라고 주장한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이라 알려져 있다.

국정원과 덩달아 칼춤을 추고 있는 집단은 언론이다. 보수언론은 주로 ‘공안당국’을 통해 확보한 영장에 적시된 내용들을 한 줄 한 줄, 곶감 빼먹듯 [단독]을 붙여 기사화하고 있다. 혐의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간첩단’이라는 제목이 공공연하게 붙었다. 국정원과 경찰은 지난 1월 9일 조선일보를 통해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북한 연계 지하조직을 총괄하는 상부 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민노총에 침투한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1월 초부터 알렸다. 기사 제목과 내용은 팩트를 추월하고 있다. 공판 중인 사건의 피의자를 이미 간첩으로 전제하며, 현재 국보법 위반 혐의가 있는 피의자들과의 관계를 파헤친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단독 경쟁으로 인한 웃지 못할 오보들도 나온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민주노총 간부에게 내려진 수색영장 안에 제시된 1인을 두고 서로 다른 인물을 제시한다.

  지난 1월 24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왼쪽, 제목은 온라인판 기사에서 따옴)와 지난 1월 27일자 <중앙일보> 온라인 기사(오른쪽). <조선일보>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민주노총 간부가 목사 B씨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해당 간부와 접촉한 이가 B씨가 포함된 국보법 위반 혐의 사건의 또다른 피의자라고 제시했다.

조선일보가 오인한 B씨는 “기사에서 제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확하게 지칭을 안 하고 이니셜을 써버리니까 나중에 발뺌을 할 수도 있어 대응에 나서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엔 너무 피해가 크다. 한 개인에게 있지도 않은 범죄까지 만들어 씌우고 있지 않나”라며 “영화 ‘암살’을 보면 한 인물에 여러 혐의를 씌우기도 하고, 하나의 혐의를 여러 인물에 씌우기도 하지 않나. 쓰레기 시나리오를 갖고 엄청난 언론플레이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B씨는 “내가 공작금을 받았다고 나오는데 금품수수 혐의는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도 그렇고 검찰이 새로 기소한 것도 없다”라며 “현재 재판이 늦어지고 있는 건 헌법재판소에서 국보법 7조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판하고 있지 않나. 현재 저의 혐의 중 하나도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한 표현물) 소지이기 때문에 헌재 판단을 보자는 면에서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B씨가 관계된 국보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변호를 맡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는 “공소장 일본주의가 언론사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라고 보도행태를 지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소장에 판사에게 유죄의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혐의와 무관한 사실을 적어선 안 된다’는 형사소송 규칙이다. 장 변호사는 “형사재판을 공정하게 받을 권리가 피의자에게 있는데 사전에 유죄 예단이 되어버리고 있다.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이 담긴 문서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피의자들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형사 재판에선 혐의에 대한 입증 책임이 엄격하게 검찰에 있는 건데 이걸 왜 피의자들에게 직접 들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북쪽과 만났냐고 묻는데, 만났다고 하면 바로 간첩 딱지를 붙이지 않나. 재판이 왜 필요하고, 법원이 왜 필요한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 변호사는 “기소도 되기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되면서 당사자들의 명예훼손 같은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계속 국정원이나 검찰 측이 흘리면 안 되는 기밀을 언론사에 제공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당사자들이 명예훼손 소송 등으로 대응하고 싶어도 만약 (국보법 위반 혐의)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앞선 소송이 또 문제가 될 수 있어 소송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당사자들 또한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로 판명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는 회복이 어렵다는 게 일관된 증언이다. 혐의에 불과하더라도 그동안 언론은 사건을 확대 재생산하며 당사자들을 간첩으로 몰고, 당사자들은 그 과정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

딱 10년 전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검찰이 불구속 기소했던 박미자 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국보법을 ‘천형’에 비유하며 “국보법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전화만 받아도 (국보법 위반의) 불똥이 튄다. 위반 혐의를 받는 당사자 역시 피해의 여파를 생각해 본인을 주변으로부터 차단하고, 주변인들도 어떻게 할 줄 모르니 쉽게 연락하기 어려워진다”라며 “국보법으로 인한 고립의 피해들이 인권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박 전 위원장은 입맛에 맞게 쉽게 적용가능한 현재의 국보법 자체가 낡은 법이라고 꼬집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제선 열차만 타도 북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회합’의 이름으로 쉽게 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현재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다른 증거를 찾기 어려워도 아마 7조 찬양고무죄를 적용해 국보법 위반 사실을 유지할 것이라 내다봤다. 박 전 위원장의 경우에도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행위 동조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받아냈으나,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한 혐의는 끝내 벗을 수 없었다. 이적표현물 소지는 대법원에 가서도 뒤집을 수 없었다. ‘봉이 김선달’, ‘조선의 력사’ ‘민족의 세시풍속’ 같은 남북교육교류사업에서 북한에 가서 산 책들을 검찰과 법원은 끝끝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할 목적의 표현물이라고 봤다.

“노동조합을 타깃으로 한 막가파식 종북몰이”…노동3권의 위축 우려도

국정원발 국보법 수사에 이어 경찰에서도 관련한 국보법 위반 혐의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도 현재의 ‘공안정국’ 분위기를 함께 조성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초 국정원은 국정원, 경찰, 검찰이 함께 ‘대공합동수사단’을 출범해 올해까지 상설운영, 국보법 위반 사건을 내·수사한다고 밝혔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지난 2월 14일 국보법 7조 위반의 혐의로 다섯 시간 넘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언론사 ‘뉴스타운’과 보수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이 지난해 8월 31일 국보법을 위반했다며 고소한 사건을 경찰이 직접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은형 부위원장은 지난해 815전국노동자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남북노동자결의문을 낭독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를 받게 됐다. 815전국노동자대회는 해마다 열리는 남북노동자 교류사업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절차들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이뤄지고 통일부에 보고까지 됐지만 신고가 있다는 이유로 조사는 강행됐다.

  지난 2월 14일 경찰 조사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출처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김 부위원장이 가입한 주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수신된 지난 1년간의 전자우편(이메일)을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김 부위원장은 일본계 기업인 한국산연 해고자 출신으로 복직을 위한 원정투쟁 때문에 일본을 왕래하곤 했는데 통역으로 연을 맺은 지인이 보낸 메일을 유심히 보며 이를 압수품에 넣었다. 김 부위원장은 해당 메일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했지만, 조사관은 자신이 판단할 일이라며 압수수색을 이어나갔다. 김 부위원장은 “일본 사람들과 소통한 것들을 유심히 봤다. 간첩 사건 같은 경우 일본 거점인 사건들이 있지 않았나. 단순히 안부를 묻는 메일이었는데 또 어떤 식으로 활용하려고 압수수색 물품에 넣었는지 모르겠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메일 압수수색 영장 내용을 보니 정말 터무니없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남북노동자결의문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선직총 3단위가 함께 작성하고, 공개적인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도 올려뒀는데 조선노동당의 전위조직이 직총과 어떻게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는지 물어보더라. 그럼 이 사업을 승인한 통일부는 왜 조사에서 빠지는지 물었지만 자신이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고 했다”라며 황당함을 전했다.

민주노총은 현재의 국보법 위반 수사에 대해 “노동조합을 타깃으로 한 막가파식 종북몰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기호 민주노총법률원장은 “공안몰이의 피해는 더 넓게,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민주노총이 직접 입는 피해뿐 아니라 노동3권의 위축으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정 원장은 “민주노총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확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정원이 민주노총에 덧씌우고 있는 종북 프레임은 대중적 혐오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대중조직으로서 받는 엄청난 타격인데,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민주노총이 이런저런 혐오의 대상이 돼 위축되면 노동권의 후퇴로까지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각주>
(1) ‘국가정보원, 더 꼼꼼하고 더 촘촘한 입법으로 묶어야 한다’,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장동엽, 2023.
(2) 2014.4.22.자 국정원이 작성한 <경찰0000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촛불시위 확산 저지 주력> 보고서

국보법 ‘내사’ 구실로 사생활 10년 들여다 본 국정원

변정필 기자


올해로 75년이 된 국보법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모호한 조항으로 한 사람의 행위와 맥락을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추단하여 수사하는 권한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부여했다. 국보법을 내세운 국정원의 10년 간 장기 내사에는 어떤 구차한 설명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통지서 한 통이 전부였다.

이달 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임원은 국정원으로부터 통지서를 한 통 받았다. 통지서에는 "국보법 위반 혐의 내사 결과, 혐의사실 없어 불입건 결정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통지서에는 2013~2014년 사이 휴대전화 통화내역, 휴대전화 위치추적자료, 이메일 접속기록과 실시간 접속지(IP) 추적자료, 카카오톡 계정 등 통신사실을 확인하거나, 압수수색 했다고 적혀 있었다. 불입건 결정일은 2023년 1월 26일, 국정원의 전체 내사 기간은 9년에서 10년으로 추정된다.

내사는 수사로 입건되기 전 준비단계다. 준비단계라지만 실제 행위는 범죄혐의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사활동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내사의 경우 밀행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구실로 인권침해가 발생할 소지도 높다.

인권침해 가능성 높은 내사..."국정원 예외가 문제"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이번 건을 두고 201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취득한 후 장기간 통지하지 않은 데 대해 "수사의 밀행성 확보는 필요하지만, 적법절차원칙을 통하여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을 방지하고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국회는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 정보·수사기관들이 원칙적으로 정보를 입수 한 지 1년이 경과하면 대상자에게 통지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경찰청의 경우 2018년 안보수사에서 6개월 이상 된 사건을 원칙적으로 종결하는 ‘내사 일몰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여경 상임이사는 "국가정보원에는 광범위한 예외가 허용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근거 없이 광범위하게 내사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해당 전 임원은 올해 1월 20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하현호 전북민중행동 공동상임대표와 함께 일을 하던 사이다. 하현호 대표의 혐의는 2013년 경부터 2019년까지의 일들로 알려져 있다. 해당 전 임원에 대한 내사도 2013년 시작됐다. 정충식 전농 전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이 건이 하현호 대표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정충식 사무처장은 "하현호 의장님과 실무를 봤던 사람이 한 두 사람도 아닌데 그 많은 사람을 모두 들여다봤다는 이야기"라며, "(국정원이) 그림을 다 그려놓고 뒤지는 식"으로 진행된 내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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