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세공사, 또는 주얼리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다름 아닌 반지 모양의 노조 배지 때문이었다. 배지가 아니라 진짜 반지 같았다. 색색이 조화로울 뿐 아니라 마감도 깔끔하고 튼튼하다. 무게도 상당하다. 게다가 문구는 얼마나 멋진가. 아름답고 유용한 물건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중요시하겠다는 문구는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좋은 문구다. 보석보다 빛나는 노동은 어떤 노동일까?
▲ 세종호텔지부에서 정리해고 싸움을 하는 허지희 사무장이 조끼에 단 보석 반지 배지. 허 사무장의 배지를 통해 사람들이 주얼리분회를 알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출처: 허지희 세종호텔지부 사무장] |
금속노조 주얼리업종 분회를 통해 세공사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과 경기에 조합원들이 있는데 나는 서울에서 일하는 여성 세공사를 만났다. 그의 일이 끝나는 저녁에 시내에서 만났다. 시원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준희(가명) 씨가 쑥스러운 듯 카페에 들어왔다. 야근은 없었냐고 물으니 일이 남았지만 남기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알바처럼 시간제로 일하고 있어 근무 시간이 잘 지켜진다고 했다. 준희 씨는 프리랜서처럼 온라인으로 주얼리상품을 만들어 파는 개인사업도 하고 있다. 이제 세공사들은 과거처럼 소규모 금속점방에서 일하지 않는다. 대기업 주얼리업체를 중심으로 한 주얼리산업이 커진 만큼 세공사들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여러 하청업체에서도 일한다. 물론 종로 금속상가에 직접 납품하는 소규모업체들도 남아있어 일부 세공사들은 이곳에서 일한다.
남성노동자들에게만 되물림 됐던 세공 기술
준희 씨가 대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금속공예라는 분야를 처음 알게 됐지만 재밌었다. 전공을 살려 졸업 무렵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까지 합치면 이 분야에 꽤 오래 발은 담근 셈이다. 많은 직업에서 성차별이 있지만, 세공사들에게도 성차별 관행이 장애물이었다.
“저 꼬마 때는 진짜 성차별이 심했죠. 같은 날 일을 시작한 나이 많은 남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는 모든 걸 다 알려줬어요. 저는 여자애라고 내내 심부름만 다녔어요. 그 오빠가 나가고 나서 이제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한테 알려주기 시작하더라고요. 1년이 지나서야 일을 배울 수 있었어요. 사실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습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잖아요.”
준희 씨는 만약 후임으로 남자가 들어왔으면 그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쳤을 것이라며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의 어려움을 상기했다. 아무리 기술과 기계가 발달해도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 많아 세공사는 기술 연마와 전수에 큰 공을 들인다. 고도의 기술을 전수하지 못하면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쌓기 어렵고, 이는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준희 씨는 15년 차의 귀금속세공사지만, 세공업계에선 여성 세공사들의 경력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하다. 채용 때부터 막힌다. 준희 씨 역시 상당한 연차가 쌓였음에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문이 막혔던 경험을 했다. 노조에 가입하게 된 계기기도 하다.
“부천에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종로에서 일을 하려고 면접을 봤어요. 한 공장에서 면접을 봤는데 사장이랑 얘기도 잘되고 좋았어요. 월급이나 근무조건도 다 괜찮았고요. 저녁 때 뭐 자기네 공장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전화를 주겠대요.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집에 왔어요. 그날 연락이 왔는데 자기네 공장 사람들은 현장에 여자를 고용해 본 적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당시에 10년 차였는데 아직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기가 막혔죠. 사내들이 잔뜩 깔린 동네에서 10년을 버티고 앉았으면 남자들보다 더 잘하는 건데, 적어도 보통보다 더 잘하는 건데 보통도 안 쳐주겠다는 거잖아요.”
준희 씨는 더는 차별받기 싫어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전화상담을 하고 노조에 가입했다. 종로 공장에서 겪은 차별은 증거가 없어 당장 대응하기 어렵더라도 이후에 비슷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고된 노동과 철야
여성세공사의 10년 경력은 얕잡아 볼 경력이 결코 아니다. 그만큼 귀금속세공 업무는 고되다. 세공사들이 많이 쓰는 어깨나 손의 경우 성한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세공업무는 주물 작업을 거쳐 나온 금속에 줄질과 땜질을 거쳐 모양을 잡고 광을 내는 과정을 거친다. 흐트러짐 없이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니 허리나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줄질하면서 나온 금속분진에 폐질환을 얻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은 사업장이 많고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건강검진을 못 해 질병을 모르고 넘어가다 큰 병에 걸리기도 한다. 21세기에 건강검진을 요구사항으로 내걸 만큼 주얼리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은 슬프다.
▲ 준희 씨가 사용하는 작업도구들 [출처: 준희 씨 본인] |
“줄질을 하고 그러면 어깨를 많이 쓰죠. 사실 무슨 기구를 쓰든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뭔가를 꼭 쥐고 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작업하기 때문에 어깨가 맛이 가요.”
요즘은 목걸이 체인을 조립하고 있다. 실처럼 똘똘 말려온 것을 길이에 맞춰 끊고, 고리를 연결하고, 레이저 용접기로 때우는 작업이다. 목걸이 줄이 작으니 망원현미경 같은 것으로 보면서 용접하는데, 고도의 집중과 세밀함이 필요하다. 아무리 시간제 알바라고 해도 일이 많으면 같은 자세로 오래 있을 수밖에 없어서 힘들다. 납품일자에 맞추려니 야근이 많다. 20대에는 정말 셀 수 없는 야근과 철야를 했다고 했다.
최근 만든 반지 디자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여성세공사로 마음 편히 일하려면 뭐가 달라지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성(평등)교육이요”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업계에선 아직도 ‘오빠’라고 불러달라거나 ‘오빠 타령’을 하는 남성들이 많다. 면접을 보면 언제 결혼하고 애 낳을 거냐는 질문도 여전히 많다고 했다.
그래도 준희 씨는 경력도 어느 정도 있고 미투운동의 영향도 있어서 성희롱이나 성차별적인 발언이 나오면 “그렇게 말하다가 은팔찌(수갑) 차요”라며 호탕하게 응대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신입 여성세공사들은 다를 것이다. 여전히 성차별적 문화가 큰 걸림돌이다. 준희 씨뿐 아니라 성평등한 일터는 직종을 가릴 것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