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등이 2023.3.3.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 숙식비지침 및 열악한 기숙사 개선 없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해 ‘강제노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고용허가제에 이번에는 ‘지역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추가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고용허가제가 개정될 것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노동부는 29일 제34차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일정지역 내에서 사업장 변경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외국인근로자 숙식비, 사업장변경 및 주거환경 관련 개선방안’(이하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이에 앞서 28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이러한 기본권 추가 제한 발상을 강력하게 규탄하여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노동계는 지난 9월부터 ‘숙식비 및 사업장 변경관련 TF' 회의에 참여하여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및 기숙사, 숙식비 지침 등과 관련한 개선 방안을 제안해 왔다. 그러나 이번 노동부의 개선방안에는 노동계의 요구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은 채 오히려 후퇴한 내용이 포함됐다.
지역소멸 대책이 이주노동자 발 묶기인가?
이번에 보고된 개선방안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에 ‘지역소멸 대응’이라는 항목으로 보고된 내용이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수도권으로의 인력 이동 등에 따른 지역 인구 감소 및 인력활용 애로 완화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할 경우 “일정지역 내에서 사업장 변경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때 지역에서만 할 수 있도록 발을 묶는 다는 얘기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노동계와 국제사회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해 ‘강제노동’ 상황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며 비판해 왔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의 경우 일반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갖추지 않고도 이주노동자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는 반면, 이주노동자의 경우 직장을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과 열악한 노동조건, 심지어는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서도 사업주가 직장변경을 동의해 주지 않아 강제적으로 한 사업장에 묶여서 일한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됐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이주노동자들은 지역 내에 발이 묶이게 됐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에 더해 ‘거주이전의 자유’ 마저도 제한해 이중으로 기본권을 침해할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숙사와 숙식비 지침, 노동계 요구안 모두 빠져
이번 개선방안에는 2020년 캄보디아 노동자 속행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이주노동자 기숙사 개선 방안과 숙식비 지침 개선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개선 방안에는 노동계가 요구해 왔던 임시가건물 기숙사 활용 금지, 숙식비 사전 공제 금지 등이 모두 빠졌다.
현재 개선방안에는 임시가건물(가설건축물)을 금지하는 대신 ‘가설건축물 활용 기준’ 항목으로 가설건축물(임시숙소) 관련 심사 절차 등을 마련하여 “주택 형태(화장실·욕실 등 구비)를 갖추고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노동계가 요구해 왔던 임금전액불 금지 원에 어긋나는 ‘숙식비 사전공제’도 폐지 대신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동의가 있는 경우”에 숙식비 사전공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기준법상 기숙사의 기준도 몇 년 동안을 거주해야 하는 ‘주거’의 기준보다 매우 미흡하고, 가설건축물의 경우 실질적인 심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서류심사에만 그치는 등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또 개선방안에 따르면 노동부는 가설건축물(임시숙소)에 대한 비용을 결정하거나 숙식비 사전 공제를 할 때 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협의에 따라서 서면 동의를 받아 진행하도록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하여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아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조건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사업주에게 묶여 있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내미는 동의서를 거부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있겠나”라며 반문했다. 이주노조에 상담 온 사례 중에서는 사업주가 가짜 서명을 한 경우도 있었다.
노동부는 7월 첫 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개최하고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3년 하반기에 국회에 제출하고, 법이 통과되면 이에 따른 시행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