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평택, 철조망을 걷어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 투쟁의 네 가지 의미

노무현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노무현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우선 지지기반이 붕괴, 해체되고 있다. 그동안 보수세력에 각을 세우며 개혁진영을 결속해온 노무현정권이 특히 올해 들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양극화는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민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구조적인 양상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FTA 협상 개시, 새만금 공사 강행 등 인민에 대한 적대적 정책 추진은 지지 기반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더욱이 지난 4,5일 평택에서 저지른 군경 공권력 투입은 민주주의정권으로서의 정체성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한미FTA 협상 추진과 함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바야흐로 노무현정권의 정치적 운명을 가늠하는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집권 4년차, 양극화 문제가 목까지 올라오고, 뾰족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던 중, 미 제국주의와 정치,군사,경제적 동맹의 획기적 강화를 출구로 삼은 것이 결국 결정타가 되고 있다. 올 초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FTA 협상 추진을 선언한 것이 결정적 화근인 셈이다.

한미FTA 협상이 동북아 지역에서 초국적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장벽을 제거하는 작전이라면, 주한미군 재배치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기반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장벽을 세우는 작전이다. 즉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FTA 협상 추진은 군사적 위협과 함께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굳건히 유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초국적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이른바 '무장한 세계화'의 본질 속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둘을 집행하는 책임자로 설 것을 자임했다. 그리고 올 초 그 순화된 정치적 표현으로 이른바 '세계화를 통한 양극화 해소'를 선언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 순방에 나서기 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평택, 한미FTA, KTX여승무원의 투쟁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필시 저항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내린 조치였다. 그러나 현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바램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5월 4,5일 공권력 투입, 검경의 대량 연행, 대량 영장 발부로 치달았지만 법원이 대부분 기각해버렸다. 법원이 재량에 따라 내린 판결일 수도 있고, 대량 구속 사태가 갖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이후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호흡을 조절하는 판결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노무현정권의 의지나 경찰, 검찰의 주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강금실 선대본도 갈팡질팡 피하려 할 뿐 강경 대응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물론 강경 입장을 거둔 것은 아니다. 검경이 문정현 신부 등 주동자 체포영장 검토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사람들에 대해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10일 이택순 경찰청장이 13, 14일 서울과 평택 집회와 관련, 평택 집회는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히긴 했다. 12일 한명숙 총리도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6일 이후 계속된 촛불집회와 인권사회단체 등의 인권탄압 진상조사 발표, 행정대집행과 군사보호구역법 적용의 위법성 논란, 13-14일 대규모 집회 준비 열기 등으로 노무현정권의 '엄격 대처' 주문은 사실상 조롱당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여론과 저항의 힘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 투쟁의 의미

지금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 투쟁은 민중투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반제국주의, 반미 투쟁의 의미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 투쟁은 미 제국주의의 동북아 기동군 재편과 운용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반제(반미) 투쟁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운동 경향이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은 지구촌 곳곳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남미에서는 인민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등 미 제국주의의 미주지역 질서 재편에 맞선 대항 흐름을 구체화하고 있다. 따라서 반제(반미) 투쟁이 일국의 투쟁, 특정 민족의 투쟁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전략과 맞서는 국제적인 연대 싸움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반제(반미) 싸움에 있어 미 제국주의 패권전략이 이 땅에서 어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경로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하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국제연대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반미 구호만 마구 외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평택 싸움은 또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싸움이다. 대추리의 땅과 사람은 그 자체가 평화였다. 대추리 사람들은 두 번이나 쫓겨나는 아픔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땅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살아왔다. 이 평화를 깨뜨린 것이 폭력이었다. 그것도 한시적이고 일회적인 폭력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었고, 그걸 국가가, 노무현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의 사회구성원들은 평화와 인권을 지키려는 것만으로 국가권력과의 유혈 충돌이 불가피한, 불행한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평화와 인권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으로 비쳐지게 된다. 여기에는 미디어의 반동적인 작태와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다. 사주를 받았던, 알아서 기든 국가이데올로기와 결탁한 미디어들의 보수 반동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외부 단체의 개입은 안 된다, 미군기지 이전이나 미군철수 같은 정치적 주장은 안 된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확장을 반대하는 본질 주장은 거세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저항의 정당성을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내는데 총동원되고 있다.

평택 싸움은 국가의 (개발)프로젝트에 맞서는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개발프로젝트는 자본의 개별 포섭과 국가의 프로젝트와 한 호흡으로 추진되어왔다. 이른바 '동북아 허브', '국가균형발전전략' 따위로 명명되어왔다. 즉 자본이 노동시장에서 노동유연화를 통해 개별 노동력을 관리하고 있다면, 국가는 개발프로젝트를 통해 자본의 욕구를 충족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는 한미FTA 협상에서 다뤄질 개방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또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특별자치도 등의 정책과도 연결된다. 이미 추진된 경주 핵폐기장, 천성산, 새만금 같은 국책사업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 확장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무릇 국가적 과업과 국가적 이익의 거대이데올로기 앞에 사회구성원과 생태계 모두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당하고 있다. 평택 싸움은 단지 반제반미, 평화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한 저항이라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평택 싸움은 노무현정권을 사실상 퇴출시키는 투쟁이다. 이 땅에서 미 제국주의의 패권전략이 노무현정권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법의 엄격 적용' 운운에서 보이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다음은 한명숙 총리의 입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처럼 파병, 비정규법안 상정, 한미FTA 추진, 군경 공권력 투입까지 노무현정권의 폭력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진영의 다수는 계속 뒷걸음치며 판단을 유예해왔다. 가령 8일 열린 비상시국회의는 '국방부 장관 퇴진' '군부대 철수'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과 같은 요구를 내거는 데 그친다. 딱이 '노무현 퇴진'과 같은 구호를 걸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평택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 의해, 군경 공권력에 짓밟히는지를 상식적으로만 본다고 하더라도 지금 '사회적 협의기구' 같은 걸 만드는데 힘을 들이자고 할 일은 아니다. 협의기구 만드는데 드는 비용으로 13-14일 투쟁과 이후 투쟁을 더 확산하기 위한, 보다 개방되고 자율적인 연대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택, 철조망을 걷어라

요점은 한미FTA를 저지하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깨뜨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군사적,경제적 한미동맹 일반을 깨뜨리는 일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이 목표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평택 싸움을 가져가야 한다. 저항의 경로, 그것은 우리 사회 다수 인민이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공격받고 있는지를 살피는 데서부터 복기하면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회피하거나 과도한 주관만 개입하지 않으면 더욱 뚜렷이 보일 것이다.

지금 대추초등학교라는 중요한 거점은 빼앗겼지만, 우리 사회 다수 인민의 마음 속 대추초등학교를 빼앗긴 것은 아니다. 13-14일 평택에서 만나자. 힘을 모아 철조망을 걷어치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