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원 기자 |
그간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의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은 오는 27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국가보안법폐지연대 등 인권사회단체들은 26일 광화문 정보통신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보통신망법은 총체적인 인터넷 검열과 통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을 재차 촉구했다.
"대다수가 포털사이트 이용자인데,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니..."
법령이 다소 생소하지만, 네티즌들에게 정보통신망법은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로그인 시 공지사항 등을 통해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시행을 알리며, 실명 확인을 실시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시행에 따라 네티즌들은 공공기관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어떠한 글도 작성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기자회견 단체들은 "정보통신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기만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인터넷 사용자 대다수가 주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는 현실에서 볼 때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이정원 기자 |
정통부, 시행 전부터 민주노동당 등에 '북한 선전게시물' 삭제 요청
기자회견 단체들이 정보통신망법 중 특히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위)가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삭제를 결정하고, 정보통신부(정통부) 장관이 삭제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한 제44조(정보통신망에서의 권리보호)다.
단체들은 "그동안 정통윤위는 북한 관련 게시물이나 정부 비판적인 게시물에 대해 일방적인 시정요구를 계속해왔다"며 "이제 정부는 권고적 시정요청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행정 명령을 통해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는 사법권 내에서 엄격한 법리적 논쟁의 대상"이라며 "그럼에도 정통윤위라는 일개 정부 기구가 자의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여부를 판단하고 장관 명령을 통해 행정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인터넷 규제를 위해서라면 초헌법적 규제도 감행하겠다는 정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미 이 같은 우려는 지난 18일 정통부가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민주노총 등 20개 노동사회단체에 '불법 북한 선전게시물 삭제를 위한 권고서한' 제목의 공문을 발송함으로써 현실화된 바 있다.
정통부는 이 공문에서 해당 단체 홈페이지의 게시물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한 뒤 시행 예정인 정보통신망법을 근거로 형사처벌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정통부, 아이들 일기장 검열 뒤 쓰지 말라고 혼내는 격"
이 같은 정통부의 방침에 대해 윤현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정통부의 발상은 아이들의 일기장을 검열한 뒤 '이건 선생님한테 혼날지 모르니 쓰지 말라'고 혼내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통부는 북한 관련 게시물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 같은 게시물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왜 올라오는지 토론이 되어야지 아예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오관영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인터넷에 떠도는 게시물 중에는 쓰레기도 있고, 악성댓글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힌 뒤 "국민들도 이미 '악성댓글', '쓰레기'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국가가 나서 그것을 검열하고, 법률적 판단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 이정원 기자 |
'임시조치', 'Daum의 삼성코레노 노조 카페 폐쇄 사건'에서 부작용 입증
단체들은 정보통신망법이 명예훼손 등 권리 침해가 예상되는 게시물에 대해 '임시조치'(일종의 일시적 게시판 폐쇄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최근 'Daum'(다음)은 법원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명예훼손을 사유로 자사 사이트에 게설된 '삼성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회'의 카페 사이트를 자체적으로 임시 폐쇄조치한 바 있다. 그러나 정통윤위가 해당 사이트에 대해 '명예훼손 해당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려 40여일 만에 폐쇄 조치가 해제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단체들은 "일부 기업들이 자사의 상품이나 노무 정책을 비판하는 게시물에 대해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인터넷 공간 자체를 폐쇄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명예훼손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삭제하거나, 임시조치를 하도록 한 것은 인터넷에서 비판적인 글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신환 민변 변호사는 "행정부의 명령은 엄격한 사법적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정보통신망법은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적 판단을 하고, 삭제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며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 등 다수의 헌법적 권리들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정보통신망법의 위헌적 요소를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날 정보통신망법 제 44조의 전면 폐지를 포함한 재개정, 정통윤위 해체 등을 주장하며,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까지 정보통신망법 불복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