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는 지난 13일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인 ‘제주예비검속사건(섯알오름)’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과거사정리위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찰에 예비검속된 218명이 1950년 7월 16~20일, 8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에 위치한 일제시대 탄약고로 쓰던 굴에서 해병대사령부 모슬포부대 제5중대 2소대원 및 제3대대원에 의해 집단총살 당한 사실이 규명됐다고 밝혔다.
▲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경비의 건' 1950/6/25 내무부 치안국에서 각 경찰국으로 보내는 통첩. 이 지시로 인해 예비검속이 시작된다. [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1950. 6. 25. 내부부 치안국 ‘예비검속’ 지시... 예비검속자 DCBA의 4등급으로 분류
DC급은 2차례 걸쳐 섯알오름 탄약고에서 대부분 총살
발표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제주도경찰국은 내무부 치안국의 통첩을 받아 관할 경찰서에 요시찰인 및 불순분자 등 예비검속 대상 주민들을 일제히 구금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모슬포경찰서 관내 예비검속자들은 모슬포 절간고구마창고, 한림 어업조합창고, 무릉지서 창고에 각각 구금됐으며, 모슬포경찰서는 예비검속자들을 등급별로 분류하여 명부를 작성했다.
전체 D,C,B,A의 4등급으로 분류된 예비검속자 중 B,A급은 석방 또는 구금됐고, 나머지 D,C급은 1950년 7월 16일과 8월 20일경 두 차례에 걸쳐 해병대에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모슬포경찰서의 보고에 따르면, 관내에서 총 344명을 예비검속해 D,C급 252명을 송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일부는 석방됐으나, 대부분 총살된 것을 볼 때 경찰의 등급분류가 총살의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에 송치된 예비검속자들은 두 차례에 걸쳐 집단총살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1차 총살은 해병대 모슬포부대에 의해 1950년 7월 16~20일경에 집행됐다. 모슬포 해병대원들은 총살장소인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 미리 도착해 대기한 후 트럭에 실려 온 민간인들을 굴 입구로 한 사람씩 끌고 가 총살을 집행했다.
이어 1950년 8월 20일 모슬포 주둔 해병대 제3대대 대원들은 경찰로부터 인계받은 예비검속자들을 군 트럭을 이용, 1차 총살 때와 같은 장소인 섯알오름 탄약고 터로 끌고 가 예비검속자들을 총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 제서사(濟署査) 제2846호. 1950/7/6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제주도 경찰서에서 구속한 민간인을 제주지구계엄사령관에게 송치하였음을 보여주는 문서 [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1950년 경찰 예비검속은 불법... 심지어 자의적 기준에 따라 분류
해병대, 계엄관련 법령이나 포고 무시... 불법 ‘집단총살’자행
사건의 발단이 된 경찰의 예비검속은 해방 후 폐지되어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제도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지역 경찰은 내무부 치안국의 지시에 따라 어떤 법령이나 규정에도 근거하지 않은 채 예비검속을 불법적으로 실시했다.
예비검속 희생자들 대부분은 제주4·3사건이나 좌익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되었으며, 특히 무고나 밀고, 경찰과의 불화, 개인적인 감정 다툼으로 예비검속된 경우도 많았다.
총살을 집행한 해병대사령부(제주지구 계엄사령부)는 정부의 공식적인 계엄령 선포 이전에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예비검속자의 구속이나 석방에 관한 최종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해병대사령부는 예비검속자 처리과정에서 계엄 관련 법령이나 포고를 전혀 적용하지 않은 채 희생자들을 불법으로 집단 총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 제주지구계엄사령부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호. 1950/7/4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주지구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고등군법회의 설치명령 서류. 정부의 공식적인 계엄령 선포 이전에 제주지구 계엄사령부가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음을 보여주는 문서 [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과거사정리위, ‘전시비무장민간인보호, 부당명령거부권’법, 제도 마련 권고
과거사정리위는 사건과 관련해 예비검속 실시 및 관련자 집단처형이 갖는 전국성, 중대성, 그리고 군,경의 지휘-명령계통을 감안할 때, 이승만 대통령과 당시 국방부장관은 예비검속과 총살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내용을 인지하거나 묵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다.
김동춘 과거사정리위 상임위원은 “제주예비검속사건의 실체가 국가의 공식문서를 바탕으로 처음 규명됨으로써 향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육지의 국민보도연맹사건이나 예비검속사건의 진실규명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의를 뒀다.
박영찬 제주예비검속연합유족회장은 “57년 전,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국군과 경찰의 방해를 받았고 6년이 자난 뒤 겨우 유해를 수습해 백조일손묘를 만들었다”며 “5.16 후 당시 정부에 의해 유족회와 묘역을 해체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는데 늦게나마 진실이 규명돼 상당히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사정리위는 ‘제주예비검속사건(섯알오름)’의 진실이 규명됨에 따라 국가의 공식사과와 피해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방안, 위령사업의 지원, 호적 정정을 비롯한 명예회복 조치 등을 적극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공식기록에 등재하고 경찰과 군인을 대상으로 인권교육 실시와 전시 비무장 민간인 보호,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과거사정리위의 이번 조사는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한 예비검속사건 중 남제주군 대정면 섯알오름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으로 한정했다. 과거사정리위는 제주시 지역과 서귀포시 지역에서 발생한 예비검속사건에 대한 결과는 추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