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노동지옥으로 가는 길

재벌의 산업집중과 국가독점이 의미하는 것

재벌 등 대기업집단을 감독하라고 있는 기구가 공정거래위원회다. 은행과 금융보험사를 감독하라고 있는 것이 금융위원회다. 그런데 지금 이 두 국가 기구가 하라는 감독은 하지 않고 북치고 장구치면서 재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현행 사모펀드(PEF)의 산업자본 출자비율이 10% 초과할 시에 산업자본으로 간주하던 것을, 30% 초과 시에 산업자본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즉, 산업자본이 30% 이하로 출자한 사모펀드는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셈이다.

또한 현재 지주회사는 일반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로 분리되어 있다. 이유는 금산분리와 마찬가지다. 여기에 금융위원회는 증권, 보험 등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 등 비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키로 했다. 쉽게 말해 삼성생명을 지주회사로 해서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달 19일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 소속 금융사가 출자한 사모펀드(PEF)가 제조업체 지분을 취득할 경우 5년간 한시적으로 의결권 제한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밝혔다. 현재 재벌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은 15%로 제한되어 있다. 재벌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제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제한규제를 앞으로 5년간 한시적으로 없애겠다는 의미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재벌은 자신의 금융보험사를 통해 일반기업을 지배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즉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해지고 그나마 명맥만 남은 재벌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라 할 수 있다.(작년 4월 출총제 적용요건을 대폭 완화해서 출자총액제한을 적용받는 회사는 25개사에 불과하다.)

이어 공정거래위원장은 일반지주회사가 증권, 보험 등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금융지주회사가 일반기업을 보유하게 한 금융위원회의 조치에 이어 일반지주회사도 차별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반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의 구별은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금융위원회와 함께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의 방안에 따르면 재벌은 꿩먹고 알먹게 생겼다. 금융위원회의 조치를 통해 재벌은 사모펀드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치를 통해 재벌은 사모펀드로 다른 일반기업을 소유할 수 있게도 되었다. 거기에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합법적으로 금융회사건 일반기업이건 상관없이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게 된다. 금산분리는 깨졌고 문어발식 확장도 가능하다.

경제가 위기다. 금융업, 건설업을 필두로 조선, 해운, 석유화학으로까지 구제금융이 이어지고 있고 위기가 확산될수록 전 산업으로 이런 조치가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정부의 민영화 정책으로 14개 워크아웃 기업들이 시장에 나왔다.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일부 기업은 청산되겠지만 나름의 회생절차를 거쳐 기업매각과 M&A는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구제금융을 심사하고 받게 되는지, 정부와 은행, 채권단은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 그 무엇도 투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위기가 더 진척될 것이고 앞으로 국가는 은행과 채권단을 압박하면서 개별기업들의 구조조정과 M&A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재벌(산업자본)의 결탁이 이루어진다. 이미 재벌집단은 수백조원의 유보자금을 쌓아두고 있다. 앞선 조치들은 재벌들로 하여금 쌓아둔 유보자금을 풀어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M&A의 수혜를 받아먹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서 국가는 대자본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청산 또는 국유화시킬 것이다.

독점과 금융자본을 위한 국가개입, 국가와 독점-금융자본의 결합, 공적자금 투입과 손실의 사회화, 위기를 통해 진전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 등 위기 시의 국가개입의 현실(김성구, 참세상 9월23일자 논설)을 또 확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청산 및 독점과정은 노동의 청산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미 생산라인이 축소되고 전환배치가 이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강제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가 속출하고 있다. 또한 생산량 축소를 빌미로 물량 확보를 위한 노동자들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구조조정이 확산될수록, 기업회생과정이 반복될수록 노동조건의 악화는 필연이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이른바 주주행동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식가치 상승을 위한 감자와 구조조정, 배당률 높이기 위한 자산매각을 용인한 결과다. 펀드 계좌 수만 3200만개로 성인 1인당 1개의 계좌를 보유할 정도로 많다. 주가지수와 펀드 수익률에 목을 매는 한 노동자의 미래도 한국의 미래도 없다. 다시 강조하건데, 위기를 빌미로 재벌과 국가가 결탁하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 국가독점이 확대된다면 경제파국은 물론이고 노동지옥을 피할 수 없다. ‘진보의 대응과 힘’이 절실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