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목과 ‘민주노총 충격 보고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포문을 열었던 울산 노동자투쟁의 상징에는 늘 권용목이 있었다. 울산 투쟁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노동자대투쟁의 물결을 이루었고 그 성과를 모아 한국노총과는 다른 민주노조운동의 중앙조직인 ‘전노협’이 건설되었다. 이후 전노협, 업종, 그룹협의회의 결의를 모아 민주노총이 건설됐다. 그 후 10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던 권용목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이어 그가 썼다는 ‘민주노총 충격보고서’ 출판기념회 소식이 들려왔다.

그 책은 사실을 왜곡한 측면도 있지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위상과 성격을 감안했을 때, 충격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부패백화점 민노총’과 ‘파업공화국’, ‘깡패조직 보다 무서운 노조의 투쟁방식’ 등이 책의 앞부분에 해당한다. 이어서 개별노동조합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 비정규철폐, 임금인상 등이 ‘도깨비 방망이로도 해결 못하는 정치적 요구’라고 규정한다. 그는 임금인상요구안은 ‘어떻게 하면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와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을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인가’, 그리고 ‘과실분배’(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몇 가지를 더 지적한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민주노총’에 대한 충고와 서툰 음성으로 ‘노동운동의 이념’까지도 건드린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민주노총의 비리문제는 단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보다 심각한 것은 ‘민주노총이 국가 이익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이렇게 구성된 그의 글을 보면서 내가 갖는 첫 번째 감정은 어떤 분노보다 진한 슬픔을 느꼈고, 둘째는 ‘권용목이 쓴 글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세 번째는 이 책의 맥락전반이 군부독재의 노선인 ‘전체주의 노선’에 근거하고 있으며 철저한 국가관에 바탕을 둔 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권용목은 민주노총 건설의 과정에서 필자와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노동운동의 전망을 토론하고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었다. 민주노총은 투쟁으로 건설되어야 하고 노동해방의 전망이 있어야 한다며 목소리 높였던 권용목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또 왜 이런 글이 하필 ‘권용목’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을까를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날 운동의 현실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슬픔이 밀려왔다.

그가 쓴 글을 그가 쓰지 않은 글이라고 하는 건 권용목에 대한 최대의 모욕일 수가 있다. 그럼에도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근거는 우선 언어 자체가 권용목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준비위 시기부터 약칭을 ‘민주노총’으로 확정했으며 권용목이 민주노총에 몸담았던 시기에 ‘민노총’이라 줄여 부르는 건 내부의 금기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그는 철저하게 ‘민노총’이라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책 전반에서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꼭 ‘근로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조직 체계 내에 존재하는 ‘전해투’(자신도 한때 전해투에 몸담았었다)를 ‘전노투’ 산하로 규정해 버렸다. 또 민주노총 조직체계를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당사자가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다른 조직으로 이해한다는 점, 등등이 그의 글이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이다. 나는 권용목이 민주노총에 대해 그렇게 무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가 ‘파업공화국’, ‘깡패보다 무서운 노조의 투쟁방식’을 문제제기 할 때, 당사자의 참회록으로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나 그의 글 전반에 그가 이전에 실천하며 주장했던 ‘불법파업’과 민주노조운동사에 길이 남아 있는 ‘골리앗 투쟁’에 대한 반성의 구절은 한구절도 찾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권용목이 비판을 하려면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방기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8~90년대를 관통하며 선동했던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당위성에 대해, 2만 명이 참가한 95년 노동절대회에서의 ‘악법어기기 결의’의 선두에 섰던 행위에 대해, 한마디 정도 변명은 해야 하지 않는가?

‘철저한 법 지키기’가 올바른 투쟁방식이라면, 지금도 여전히 ‘악법은 어겨서 깨트려야 한다’는 확신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책임이라도 질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진정 자신의 글이고 지금 시점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다면 잘못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그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노력이 책을 내는 것 보다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자신이 던지는 비난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게 아닐까?

비정규노동자의 문제가 그렇게 자신의 가슴에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면 이윤배가를 위해 노동자를 포섭과 배제로 분할하고 대립시키고 오로지 착취의 대상으로만 노동자를 바라보는 자본에게 최소한 한마디는 남겨야 하지 않는가?

노조전임자를 먹고 노는 특권층으로 규정하려면 뉴라이트 소속 신노동연합 전임자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열심히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지급되는 적지 않은 자원의 출처는 어디인가?

이 짧은 글을 쓰는 시간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는 건, 문제제기에 대한 메아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고인이 된 그가 영혼이라는 실체를 빌리지 않고 답할 수 없을 테고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민주노총 충격보고서’에 대해 이런 저런 토를 다는 건 그 책에서 제기한 민주노총의 부패와 비리를 조금이라도 변명한다거나 합리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민주노총의 정신이 훼손되며 나타나는 관료주의는 물론, 민주, 자주, 계급, 투쟁성과 변혁지향 마저도 상실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현재의 모습에 나 역시 주저 없는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비판에는 나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하기에 반성을 근거로 하고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리와 부도덕을 계기로 노선과 이념의 문제까지 싸잡아서 비난하는 이 책에서 발견한 건 전통적인 자본가계급의 유치함뿐이다. 이 책에서 노동자계급이 맞닥뜨리고 있는 모순에 대한 고민은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이 책 발간의 목적이 읽혀진다.

통상적으로 제기되는 간부들의 자질과 도덕성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본의 사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계급을 분할, 통치하기 위해 자본은 끊임없이 비리의 덫과 함정을 파고 있다. 그 함정은 지금도 도처에 깔려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덫에 걸려드는 간부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징계조치로 새로운 긴장을 조성해야 하며, 자본의 비열한 사슬을 끊는 것이야 말로 구조적 모순에 대항하는 과정이며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동안 이와 유사한 비리의 함정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 투쟁이 정세에 영향을 주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에 민주노조진영에서 ‘비리’라는 말을 듣는 건 쉽지 않았다. 투쟁성과 계급성, 그리고 변혁지향에 대한 긴장이 느슨해진 틈사이로 광란의 자본주의는 ‘비리’와 유사한 함정을 계속 파 댈 것이다. 계급적 단결을 와해시키기 위해 유효한 방식으로 그 맛을 봤으니 말이다.

자본가계급이 깔아놓는 덫과 함정을 무력화시키는 근본 처방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올곧게 복원하고 실천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념이 없는 조직은 내용이 없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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