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노동형제 여러분” “시민 여러분, 노동형제 여러분”
2009년 5월 1일 119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 나온 연사들은 '노동형제'를 연발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한 번,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두 번 사용했다.
‘노동형제’라는 단어는 10여 년 전부터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안에서 논란이 됐던 '성차별 단어'다. 노동운동 내 여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단어라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해왔다.
민주노총의 다양한 투쟁에 연대해 왔던 학생과 여성들은 집회에서 사회자나 연사가 노동형제라는 단어를 사용 할 때마다 그 단어가 올바르지 않다고 제기하고 단어를 사용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귀찮지만 용감한 문제제기 덕분에 운동진영에서 이 단어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물론 이런 제기를 할 때마다 반대쪽은 토씨하나 까지 트집 잡는다는 해묵은 논란도 있다.
119주년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에서 ‘노동형제’라는 단어는 가장 진보적이고 여성주의를 가장 많이 고민하겠다는 두 단체의 대표에게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 2009년 5월 1일 119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노동형제란 단어를 한번,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두 번 사용했다. |
이번 노동절 행사는 민주노총이 그동안 자신이 지녔던 운동사회 내부의 권력과 권위주의를 버리고 500여개 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하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였다. 심지어 임성규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와 적극 연대해 나가겠다는 사회연대헌장 제정운동을 제안하는 선언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약자인 여성과 연대도 당연히 담겨 있는 선언이었다.
여는 발언에는 여성운동과 적극 사회적 연대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직접 나와 발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여성운동 진영이 제기해 왔던 성차별적 단어가 진보신당 대표와 민주노총 위원장 입으로 4만여 대회 참가자들에게 고출력 스피커로 거듭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 5일 드러난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 때문에 여성주의에 더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내 가부장성과 언제든지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성폭력 진상조사 특위의 권고사항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일상으로 여성의 권리를 스스로 보장하기 위해 여성위원회라는 조직 내 성차별을 해소하는 상시기구를 두고 있다.
구로동맹 파업을 주도한 것도 여성 노동자였고 그 보다 더 오래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부른 것도 YH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지금도 가장 먼저 해고되고 차별받는 존재가 여성노동자다. 기륭전자, 이랜드 뉴코아, 하이텍 등 최근의 사례만 봐도 여성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여러 사례에서 드러난다. 그런데도 여성은 언제나 노동운동 내에서 주변의 존재였다. 이는 굳이 구해근의 책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2002)을 읽지 않아도 노동운동에 복무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비슷하게는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돌아봐야 할 문제다. 여성노동을 사회적으로 ‘주변화’ 됐거나 ‘보호되고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는 지적이다. 가족 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속하는 여성에 대한 착취를 ‘효’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30일 여성노동자 투쟁대회 결의문은 “여기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동자가 있다. 약해서, 소수여서가 아니다. 하늘의 절반을 이루고 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노동자가 그들이다. 결혼/육아를 이류로,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성노동자는 자본의 공격에, 비정규직 저임금에 가장 먼저 내몰렸다”고 여성노동자의 위상을 밝혔다.
노회찬 대표나 임성규 위원장은 이런 운동진영 내 문제제기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노동형제’란 단어의 정치 사회 문화적 역사성을 몰랐을 수도 있다.
성폭력 사건으로 얼룩진 민주노총이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여성주의를 통해 노동운동내 여성의 권리를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지 딱 한 달 지났다. 조직내에서 여성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성평등 미래위원회 설치를 두고 대의원 대회에서 설전을 벌인지 한 달밖에 안됐다. 민주노총이 진정 여성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 안으려면 이런 작은 잘못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