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유지 지원금을 받고 순환휴직하자는 노조제안도 거부한채 경제위기를 빌미로 일방적 희망퇴직과 배치전환, 연월차 강제사용, 정리해고 단행. 그러나 어느새 대부분 라인을 정상 가동하고 잔업까지 실시하고 있었다.”
조경일 금속노조 경지지부 동서공업지회 쟁의부장은 회사의 정리해고 경과를 얘기하면서 회사의 행태에 분노했다. 조경일 부장만이 아니었다. 13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 모인 금속노동자들은 모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 이들은 여기서 ‘경제위기, 노동자 고통전담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날 증언대회는 고통전담 증언이라기 보다는 노조파괴 증언이라고 볼 만큼 절실한 얘기가 나왔다.
최은석 동명모트롤지회 교선부장은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사용자들은 노사 일방이 단협해지를 통보하고 6개월 안에 노사합의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존 단체협약이 무효가 되는 현행 노동법을 악용해왔다. 동명모트롤지회는 사용자의 이런 전략에 따라 지난달 16일부터 무단협 상태다.
단협이 없어지면 노조 사무실도 빼야한다. 물론 노조 전임자도 없어진다. 최은석 부장은 “아직 노조 사무실은 지키지만 회사는 조만간 물리력으로 빼앗을 태세”라고 설명했다. 노조 사무장과 부지회장 두 사람이 계속 월차, 외출, 조퇴 등 개인 휴가를 사용하면서 노조를 지키고 있다. 간부도 수시로 휴가를 내 조합을 지킨다. 단체교섭을 해도 단체교섭 시간 전후 한 시간까지만 유급으로 인정하고 있다. 회사가 조합비 사전일괄 공제를 안해주자 전 조합원이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최 부장은 “단협은 매년 쌓아온 노동조건의 결정체이고 노조의 재산인데 단 한방에 없애버렸다”고 분노했다. 최 부장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의 결실인 단체협약을 없애면 노동 3권은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포항지부 진방스틸지회, DKC지회 모두 이렇게 단체협약을 해지당했다.
경기지부 포레시아지회는 고용안정을 위한 임시휴업 실시에 합의했지만 휴업합의가 정리해고 수순으로 악용됐다고 주장했다. 구선희 지회 사무장은 “고용보장확약서도 받았지만 회사는 희망퇴직공고를 일방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노조가 근로감독관에 확인한 결과 회사는 희망퇴직 21명, 정리해고 30명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도 일방통보했다.
노조는 “희망퇴직 명단과 시기파악이 정확히 안돼 이후 파업때 희망퇴직을 쓴 사람을 이용해 대비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회사가 조합원을 회유 협박해 30명 정도의 조합원이 출근집회와 노조 활동에 불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금속노조 동희오토지회는 “자본가에겐 꿈의 공장이라 경제 위기에도 주야로 팽팽 잘 돌아간다”고 비꼬았다. 노조는 “생산직 900여명 전원이 비정규직인 국내 유일의 공장으로 지난 98년 구제금융 뒤 현대자본이 기형적이고 왜곡된 고용구조로 만든 공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청우 지회 정책부장은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각 사내하청 업체와 1년짜리 계약을 맺는 2중의 고용불안에 놓여 있고 계약을 연장해도 소속업체가 폐업하면 언제든 잘릴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이청우 부장은 “자동차 하도급 구조엔 하청업체가 독립경영이나 독자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원청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진폐업도 못하는데 폐업을 세 번이나 실시한 건 노조탄압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4월말 기준으로 산하 전체 사업장 242개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의 구조조정 항목을 안고 있는 사업장이 199개나 된다고 밝혔다. 자본은 '노동자 해고'를 경제위기 돌파의 최선으로 택하고 있다.
임혜숙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고통분담이라는 말은 허울일 뿐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삭감을 전제로 하고 임금인상을 사용자에 위임하라고 강요해 노동3권을 부정·파괴하면서 노조간부만 정리해고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