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팝과 연예제작사: 빅4의 생존 방식

[상상나누기] SM엔터테인먼트에서 YG 패밀리까지

  연예제작사 빅4
한국의 아이돌 팝 연예제작 시스템은 SM엔터테인먼트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HOT”라는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킨 SM엔터테인먼트는 기존 음악 분야의 연예기획사와는 다른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전에 가수들은 주로 음반사 소속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가수들은 한 명의 매니저가 관리하는 영세한 운영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예기획사 사장은 대게 다른 가수의 로드매니저를 하다 독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내 연예기획사들도 체계화 전문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SM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획형-기업형’ 연예기획사 체제를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기존의 연예기획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돌’ 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선정하고 자신들의 매니지먼트 체계 안에서 훈련을 시켜 데뷔시키는 일종의 ‘인 하우스 팜 시스템’(In-House Farm System)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를 목도하면서 10대 팬들의 소비능력을 간파하고, 이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이돌 스타들을 직접 육성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SM엔터테인먼트는 1990년대 일본의 J-pop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아이돌 그룹들에 대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이를 국내에 적용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가요계에 데뷔한 그룹이 바로 “HOT"이다.


아이돌 팝은 1980년대 미국 음악시장이 불황을 겪었을 때, 이를 타계하고자 기존에 음악 소비자층이 아니었던 1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또래 스타들을 오디션을 통해서 발굴하여 철저하게 기획 관리하는 전략 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미국의 팝시장은 10대 소비층을 위한 “뉴키즈 온 더 블록”이란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고, 일본은 미국 보다 오래 전부터 10대 음악 팬들을 겨냥한 아이돌 그룹들을 만들어 냈다. 미국과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은 기획사의 철저한 계획과 관리 하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획형 스타들인데, SM 엔터테인먼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아이돌 연예제작을 성공시켰다. 하나의 그룹이 데뷔하면 이들을 지원하는 스텦들은 로드 매니저에서 의상, 헤어, 메이크 업 코디네이터, 경호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팀을 만들어서 운영된다.


아이돌 연예제작의 원조: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연예제작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개오디션과 연습생 훈련 체계를 통해서 양질의 10대 예비 스타들을 경쟁시킨다는 데 있다. 오디션을 통해서 통과된 연습생들은 처음부터 해당 그룹들의 멤버로 정해지지 않은 채 연습생 신분으로 계약을 해야 한다. 이들은 연습하는 과정부터 서로 경쟁하고 적절한 파트너 조합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HOT"나 “신화”, “동방신기” 모두 처음부터 팀을 확정하고 준비한 경우는 없다. 이들은 연습생 시절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실력을 검증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유사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연습생들과 팀을 이루어 데뷔 준비를 한다. 말하자면 기획단계에서 데뷔까지 철저하게 기획사의 인 하우스 체제에 의해서 관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연습생 제작 체제는 지금은 보편적인 조건이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낮선 방식이었다. 이러한 경쟁적인 연습생 시스템은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이미 검증된 팀을 데뷔전부터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에 데뷔 할 때까지 소요되는 제작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SM엔터테인먼트의 입장에서는 이미 데뷔하고 있는 팀들에 대한 관리에다 새로운 그룹의 데뷔를 준비해야하는 연예제작의 중복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연예제작사라 해도 대규모 제작 자본이 필요한 아이돌 그룹들을 한꺼번에 데뷔시키면서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업 형 대형 아이돌 연예기획사들은 이들을 장기 전속계약으로 묶어두는 한편, 연습생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팀들의 데뷔 시점들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해체와 데뷔를 연계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아이돌 스타들이 태생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짧은 활동기간을 메워주고, 리스크가 많이 발생하는 기존 그룹들의 재계약 방식보다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들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HOT를 시작으로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동방신기” 등 소속 아이돌 스타들의 활동 기간을 5년 정도로 잡고 무리하게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스타가 되기 위해 준비된 예비 아이돌이 넘쳐나고, 이들을 관리하는 팜 시스템이 건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이돌 팝 제작사: DSP

물론 이러한 방식의 연예제작 시스템이 SM엔터테인먼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SM과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 스타들을 제작했던 DSP 엔터테인먼트(과거 대성기획)도 SM과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DSP는 1990년대 “젝스키스”와 “핑클”을 데뷔시켜 SM의 "HOT"와 "SES"과 경쟁체제를 만든 가장 토착적인 연예제작사이다. DSP의 연예제작 시스템도 견고한 연습생 그룹들을 보유하고 이들에게 일정기간의 훈련과정을 통해 최적의 멤버들을 조합해 팀을 만들었다. 다만 DSP는 SM과 다르게 일본 아이돌 연예제작 시스템의 노하우를 수용하지 않고, 자생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어 국내활동을 중심으로 제작에 무리하지 않는 매니지먼트를 했다. DSP의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스타일이 한국적 댄스음악에 충실하고, 그룹별 활동기간도 SM에 비해 비교적 긴 이유도 무리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DSP의 아이돌 그룹들은 SM의 아이돌 그룹들과의 매치 업 방식을 선택하면서도 이들의 주요 활동기간보다 조금 늦게 활동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1990년대 "젝스키스-HOT", "핑클-SES"의 대결 구도는 2000년대 초반 "Click-B-신화“의 대결구도로 이어졌고 지금은 "SS501-동방신기”, “카라-소녀시대”의 대결구도로 재생산되고 있다. DSP는 SM과 국내 아이돌 팝 제작의 양강 구도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연예오락프로그램, 드라마, 영화 부분까지 확대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확대하려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모타운’의 한국적 변형: JYP 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아이돌 팝 시장은 SM과 DSP로 양분되었지만, 한류의 붐과 아이돌 팝 시장의 국제 경쟁력 강화로 새로운 제작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팝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대표적인 제작사가 바로 JYP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이다. 이 두 제작사의 공통된 특징은 이미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음악장르에 적합한 아이돌 스타들을 직접 제작한다는 데 있다. 1999년에 설립한 JYP는 대표 박진영의 음악적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70년대 ‘모타운 레코드사’를 근간으로 하는 흑인 블루스 소울음악과 펑키한 스타일을 현대화하는 음악적 코드들은 과거 소속 뮤지션이었던 ‘비’뿐 아니라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원더걸스’나 ‘2PM’, ‘2AM’에게도 적용된다. JYP의 아이돌 팝 제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말할 수 있다. 먼저, 제작자인 박진영이 작곡과 안무, 코디네이션, 프로모션에 모두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속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모두 디자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원더걸스’의 ‘모타운’ 복고 스타일이나 2PM의 미소년 섹슈얼리티 이미지는 모두 박진영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또한 ‘원더걸스’의 해외진출 역시 박진영의 글로벌한 매니지먼트 전략과 맞닿아 있다. 박진영은 ‘비’를 월드스타로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 아시아, 아시아에서 다시 미국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한국의 기획사들은 대부분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시장을 위주로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반면, JYP 엔터테인먼트는 팝의 본류인 미국에서 활동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09년에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해서 미국의 빌보드 ‘핫 차트’ 100위 안에 아시아 뮤지션 최초로 들어간 것은 사전에 미국 음악계에서 작곡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영의 음악적 능력과 폭넓은 인맥의 요인이 크다.


힙합 중심의 아이돌 커뮤니티 그룹: YG 패밀리

이에 비해 YG엔터테인먼트는 힙합 음악의 패밀리 커뮤니티를 강조하면서 가장 성공한 흑인 힙합음악 주류 기획사가 되었다. YG의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이후 제작자로 변신하여 ‘현기획’을 세우고 킵식스라는 그룹을 제작했지만, 실패하고 이후 제작한 “지누션”이 성공하면서 YG 패밀리를 만들었고 원타임, 휘성, 빅마마를 빅히트시켜 지금의 YG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YG는 SM이나 DSP와 같이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들을 제작하는 전문 기획사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고, 흑인음악을 중심으로 힙합 크루를 만들고자 했지만, 2006년 “빅뱅”을 제작하면서 아이돌 팝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09년 “2NE1”의 데뷔로 국내 아이돌 팝 시장의 돌풍을 몰고 왔다.


YG의 아이돌 팝 제작 특성은 JYP와 대조적이다. YG는 제작자인 양현석의 음악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멤버들의 개인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가령 빅뱅의 경우 팀의 리더인 지드레곤에게 작곡과 작사를 전담하게 하고, TOP에게는 랩을, 태양에게는 보컬을 맡긴다. “빅뱅”이 다른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된다면, 멤버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음악제작과 음악스타일을 만들어나간다는 데 있다. 또한 멤버들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차별화된 솔로 음반제작과 개별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YG의 수평적인 커뮤니티 정신은 다른 아이돌 팝 제작사들 중에서 커뮤니티 정신이 가장 강하고, 멤버들과 제작자들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요인이다. "2NE1"과 같은 걸 그룹의 스타일에서 알 수 있듯이, YG는 예쁘고 섹시하고 로리타 신드롬을 자극하게 하는 전형적인 걸 그룹 제작 인습에서 벗어나 반항적이고 일탈적인 이미지의 걸 그룹을 만들면서 오히려 10대 여성 팬들이 선호하게 만드는 차별화된 제작 방식을 보여주었다.

  주요 아이돌 팝 제작사 비교

한국에서 아이돌 팝 문화자본은 대중음악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음반 산업뿐 아니라 디지털 음원시장, 방송미디어산업, 이벤트 프로모션, 연예제작 시장에서 아이돌 팝은 핵심적인 문화자본으로 기능한다. 많은 연예기획사들이 아이돌 팝을 제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연예콘텐츠가 아이돌 팝으로 쏠리는 한, 아이돌을 제작하는 연예기획사들 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3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