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휴게실, 우리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겁니까?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가 거리로 나선 이유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병원이 오히려 구성원인 노동자를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왜 우리를 사람취급하지 않습니까.”


밥과 휴게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고단하다. 정식 출근은 6시지만, 그들은 4시 30분부터 출근을 시작한다. 7시가 되면 밥차가 올라오는데 그 전에 쓰레기들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오는 다량의 쓰레기 폐기물은 5시 이전부터 치우기 시작해야 겨우 밥차 시간에 맞춰 정리 할 수 있다.

“아침이면 77리터 박스에 담긴 쓰레기들이 몇 통이나 나와요. 거기에는 대변이 묻은 기저귀들이나 고름이 묻은 거즈, 쓰다 남은 주사기들이 있죠.”

고대병원 청소노동자 김윤희씨는 병원 쓰레기들의 위험요소를 알고 있다. 하지만 손수 치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오염된 병원 적치물을 손수 치우다보면 감염될 위험이 있다. 쓰다 버려진 주사기에 손이 찔리기도 한다.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정작 노동자들은 병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의료비조차 지원하지 않는다. 김윤희씨는 “고작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의료비까지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새벽 4시 30분이면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다. 빈속에 오전 내내 움직이며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속이 쓰리다. 때문에 그들은 병원에 ‘아침식사비 2000원 지원’을 요구해봤지만, 병원은 이 요구를 묵살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휴게공간을 요구 했지만 이 역시 묵살 당했다. 90명이 일해도 빠듯한 일을 72명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인원충원도 요구해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심야근무 7명 배치였다. 일손이 더욱 줄어든 것이다. 김윤희씨는 울분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있는 대기실이 10평이예요. 노동자는 72명이고요. 대다수가 비트실이나 PS실에서 쉬거나 밥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PS실은 물내려가는 관이나 환기통이 있는 어두침침하고 좁은 곳이죠. 저희가 거기서 쭈그리고 밥을 먹고는 하니까 어떤 교수님이 안쓰러웠나봐요. 불이라도 달아주라고 병원에 요구해서 전구를 하나 달았어요. 훨씬 낫더라고요.”

여성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 “사람답게 살고 싶다”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병원에 요구하는 것은 소박한 것들이다. 2000원짜리 병원 식당 아침밥과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휴게실, 병에 감염됐을 때 의료지원, 그리고 인력 충원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속적인 요구는 병원은 내내 묵살하고 있다. 병원장이 면담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5일 오후 4시 30분 고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병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래도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집회 시간도 일이 다 끝난 시간에 맞췄다.


이 자리에서 이영숙 고려대분회 분회장은 “보통 4시에 나와 청소를 하기 때문에 아침 한 끼 2000원을 달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못 주겠다고 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박용자 고려대분회 병원현장 사무장은 “병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아, 조합원들끼리 간담회를 하고 있는데, 총무과 직원이 와서 계약 포기와 고용승계 포기를 언급하며 협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닌데, 왜 우리를 사람취급하지 않습니까”라고 언성을 높였다.

대다수가 60대 이상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고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 ‘비정규직철폐연대가’도 곧잘 부른다. 연세대, 이화여대, 동덕여대 등의 청소노동자들과도 끈끈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5일 집회 역시 200명이 훌쩍 넘는 연대 조직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고려대 학생들은 “저희 학생들도 고대병원 청소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김윤희씨는 “자식들 결혼 보낼 때 와준 하객들을 보며 감동한 이후, 이런 감동은 처음이다. 가슴이 든든하고 벅차다”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고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한 달 동안의 집회신고를 한 상태다. 허가가 난다면 한 달 동안 집회를 열며 소박한 요구들을 이어갈 계획이다. ‘사람답게 살고싶다’, ‘노동환경 개선하라’ ‘밥좀 달라’등의 문구를 적은 흰 천을 병원 앞 나무에 매달면서 그들은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불렀다. 영국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 ‘빵과 장미’가 이제 한국에서 ‘밥과 장미’로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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