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의 유무를 떠나, 네티즌들과 시민들은 즉각 KBS의 조치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는데 이는 무엇보다 독립성의 논란을 빚고 있는 KBS에 대한 비판과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정권과 반하는 출연진들에 대한 퇴출과 프로그램 폐지는 실질적으로 블랙리스트를 ‘가동’시킨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은 12일 오후 2시, 민변 교육관에서 ‘KBS 블랙리스트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무형의 블랙리스트의 가동이 정권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 졌다.
정권의 방송장악과 방송개입, 연결고리 있다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네티즌과 시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게 된 데에는 KBS의 지난 전력이 한 몫 했기 때문이다. 김제동, 윤도현 등의 출연진들이 이유도 모른 채 KBS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퇴출됐으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프로그램들은 폐지됐다.
퇴출과 폐지의 공식적인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권의 방송장악’을 그 이유로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의 퇴출은 곧 정권과 방송의 유착과 맞물림 속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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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토론회 자리에서 정권과 방송, 그리고 퇴출과 폐지의 연결고리를 설명했다. 김유진 사무처장은 “정권의 방송 장악 일정을 보게 되면, 대통령 형님의 친구라는 최시중이 방송위원장에 앉게 되고, 정연주 사장이 강제해임 당하고, 이병순이 KBS 사장으로 취임되고 첫 개편에서 정관용, 윤도현, 박인규가 퇴출당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TV책을 말하다’는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강수돌, 진중권이 출연한 이루 바로 폐지 됐던 이상한 사례”라면서 “이병순 사장 임명을 앞두고는 김제동이 퇴출당했는데, 이는 이병순이 사장 선임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과잉충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연주 전 KBS사장의 해임으로부터 오늘날 KBS의 권력 굴종과 유착 전 과정을 보면, 과연 방송사의 인사가 정상적인 근거에 의해 작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MB와의 직영거리에 있는 MBC김재철과 KBS김인규가 사장으로 앉는 이상, 공영방송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무형의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문서로 작성됐느냐는 형식 논리에 불과하며, 내부의 불문율과 가이드라인으로 블랙리스트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프로그램에서 마땅한 사유 없이 퇴출당한 유창선 평론가는 “사측에서는 나에 대한 교체결정이 제작진의 편집회의에서 분위기 쇄신 차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내가 확인한 바로는 라디오 1국장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상윤 KBS PD역시 “문건 정립은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은 확실히 존재한다”면서 “정부의 초법적 권력과 권력투쟁 강화, 방송장악은 방송출연 문제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연결고리 의혹은 그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내부고발, 논란의 종지부 찍을 수 있어
최근 들어 개인에 대해 정권과 공영방송의 법적 대응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한명옥 변호사는 이 같은 권력이 개인에게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위축효과’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었다.
한명옥 변호사는 “개인이 정권에 의혹제기 한 뒤,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라면서 “심리적 위축이나,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호사 선임 등은 승패를 떠나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 같은 경우 국가는 대부분 소송에서 패하지만, 그럼에도 법적 대응을 하는 이유는 개인이 부담을 느껴 자기검열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력이 개인에게 법적 대응을 하다보면, 네티즌들도 불편한 내용을 꺼리게 되고, 프로그램 또한 연성화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자기검열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명옥 변호사는 “결국 이는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이 같은 권력과 방송의 유착과 표현의 자유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KBS내부의 고발자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 역시 제기됐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증언이 내부에서 나온다면 끝나는 사안”이라면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3자들의 여러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제작진의 양심선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진 사무처장은 “KBS구성원들이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의 치부라기보다는 내가 다니는 회사와 관련한 일이라고 생각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서지 않는 듯 하다”면서 “비판과 질책의 강도를 높여 그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창선 평론가는 “개인적인 내부 고발은 큰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집단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새노조나 피디협회 차원에서라도 여러 가지 일련의 사례들을 자체조사하고 파악해 나간다면 많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박원석 처장은 머지않아 내부 고발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민형사 부분에서 다양한 참고인 조사와 증언청취 과정이 좌충수가 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무형의 지침이 들어나지 않을 방법이 없는데 KBS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내다봤다.
현상윤 PD역시 “새노조가 현재 여타 문제들에 대한 폭을 넓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파업국면이 전환 되는대로 새노조 내부에서 행태들을 발굴해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