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이었다!

[기고] 이참에 ‘하청제도 자체’를 끝장내야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하청 동지들이 6년을 넘게 치열하게 벌여왔던, “하청 철폐 정규직화 쟁취”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낳았다. 지난 7월22일,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근무한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난 것이다.

지난 3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실사용주는 현대중공업 회사라는 대법원 판결과 함께 이번 현대차 판결로, 비정상적이며 파렴치한 인신매매 제도에 불과한 하청·비정규직제도를 근본적으로 뿌리뽑아버릴 결정적인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이번 판결 자체만으로도 바로 인근에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의 하청노동자들에게, “하청 철폐 전원 정규직화”는 단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당장 실현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미 자동차 현장은 정규직 전환의 기대와 함께 비정규직지회 가입이 놀랄만큼 증가하고 있다. 물론 대법원 판결이 저절로 정규직화를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판결의 당사자인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은 8월1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불법파견’을 정치적으로 무협의 처리한 검찰을 직권남용으로 고소고발하고,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들(불법파견업체들)에 대한 즉각폐쇄를 요구하며투쟁을 시작했다.

엄청난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대법원이 오랜 고심 끝에 내린 판결인 만큼, 이번 판결은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완성자동차 공장들(현대/삼성/대우/기아 등) 및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의 라인생산시스템 제조업은 물론이고, 철강 조선 등 대공장 제조업 사내하청 모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때문에 금속노조는 ‘타임오프제 투쟁’과 함께 하청 철폐 투쟁을 핵심 투쟁 현안으로 결의하며 중앙 대책기구를 구성했다. 비이성적이며 불법적이고 각종 비리의 온상인, 인신매매 하청제도를 영구 추방하기 위한 전국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이 투쟁이 확대되어 이 땅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뿌리뽑는 데 성공하느냐 아니면, 판결 당사자들인 현대차 하청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느냐는 결정적으로 우리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에게 달려 있다. 항상 결론은 같다.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얼마나 모아내느냐? 이것이 이 투쟁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핵심 관건이다.

우리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부족한 것
현대차 정규직 판결과 현대중공업 원청사용자 인정 판결의 차이


이번 현대차 판결로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당장 정규직화가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얼마 전까지 언감생심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난 3월 현대중공업 또한 비슷한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중공업 사측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았을 뿐, 현중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으로의 직접 고용에는 미치지 못했다.

두 판결 모두, 하청업체에 대해 ‘독립적 경영주체’로서 볼 수 없다는 동일한 판단을 하였다. 독자적인 생산수단(기계, 설비, 심지어 소모품조차 원청 사측으로부터 수급 받는다.)도 없을뿐더러 작업공정 계획의 수립부터 진척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없는 하청업체(들)에 대한 당연한 판단이다. 항상 노동자보다는 자본가들의 편을 들어 왔던 법원조차도, 비정상적인 대공장 하청구조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순 없었던 것이다.

헌데, 자동차 공장과 조선 공장의 하청업체(들)에 대한 동일한 판단에도 판결에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실로 자동차 하청업체(들)과 조선 하청업체(들)의 존재양태가 달라서?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현대차 공장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은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 투쟁에서만 100여명의 조합원 동지들이 해고되는 등, 2003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동지들이 해고를 각오하며 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끝없이 지속된 원청 사측과 하청 업체장들의 탄압에도 1000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6년간 노동조합을 굳건히 지켜왔다. 노조 간부 몇 명이 아니라, 수백의 하청 조합원들이 함께 현장에서 투쟁해왔고 함께 현장의 정보들을 모았기 때문에 더욱 구체적으로 원청의 개입증거들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쉽게 알 수 있듯이 두 판결의 본질적 차이는, 실제 스스로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 다수의 현장 하청노동자들이 끈질기게 노동조합을 사수하고 함께했던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안타깝지만 그러지 못해왔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차이다.

이것이 하청제도를 완전 폐지하고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곱씹고 곱씹어야 할 냉정한 평가임을 다시금 새기자.

하청제도를 폐지하라

“하청업체 노동자는 업체 직영노동자다” 현대자동차 사측이 근 7년간 입에 달고 다니던 얘기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기성단가 인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 하청 폐지와 정규직화 요구에 항상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꾸해 왔다. 심지어 정당한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교섭 요구조차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며 묵살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런 뻔뻔한 사기극이 만천하에 뽀록나게 된 것이다.

헌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현대자동차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사측 또한 주구장창 이렇게 떠들며 우리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여전히 기만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사측의 기만행위에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까지 동참해 왔다. 과거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 과정에서 현대중공업노조는 아예 대놓고 “하청업체 노동자는 업체 직영노동자입니다”며 선전물까지 뿌려댔다.

하지만, ‘외주’에서 ‘하청’으로, 또 ‘하청’에서 ‘협력사’로 이름을 바꾼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다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갑자기 정규직노동자가 될 리는 만무한 것이다.

도대체 독자적인 생산수단 하나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소모품조차 지급받는 업체를 누가 정상적인 독립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원청인 현대중공업 사측이 수립한 공정계획을 단순 진행하는 업체에 임금 도둑질하는 것 외에 도대체 어떤 독자적인 경영 노하우와 독립적 전문기술이 있단 말인가?

원청의 공정계획에 따라 인원 해고와 충당이 진행되는 업체에 도대체 어떤 독자적인 인원수급 결정권이 있단 말인가? 휴가비 떼먹는 것 말고, 휴가조차 스스로 기획·실행하지 못하는 업체는 말 그대로 헛껍떼기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중공업노조처럼, 이러한 현실에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닫지 않는 이상, 하청제도는 하청노동자들을 이중착취하고,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온갖 불법과 비리를 양산하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제도임이 분명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냉정하게 한번 묻자! 이미 공장의 절반을 넘어선 하청노동자들, 200여 개에 달하는 하청업체들,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들! 우리 현대중공업 공장은 진정 정상인가?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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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현대중공업 , 현대차 , 사내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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