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원정 시술을 소개받는 과정에서 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2차 피해까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여성, 노동, 진보 단체 및 정당으로 구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네트워크)’는 31일,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며 여성의 신체권 확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가 낙태죄 적용으로 여성의 신체권,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정부가 출산 억제 정책을 펼 때는 불임시술을 강요하고 피임기구를 남발하는 등 여성의 몸을 억압하더니, 출산율이 낮아지니 불임시술을 건강보험 혜택에서 슬그머니 제외시켰다”면서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으로 여성은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낙태죄 적용과, 낙태 시술병원 감소가 여성의 몸을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정원 건강과 대안 연구원 의사는 “음성적이고 위험한 낙태 시술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중국 일본 등의 원정시술이 늘어나고 원정시술 과정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며,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여성의 몸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낙태 시술병원이 감소하면서 시술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도 있었다. 시술비용 증가는 저소득층이나 10대 여성들에게 치명적이어서, 이들은 비전문 시술이나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윤정원 의사는 “여성의 건강이 담보되지 않는 한 태아와 가정, 사회의 건강도 담보되지 않는 만큼, 여성의 안전한 수술을 위한 접근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낙태를 사회적 정책으로 흡수하지 않고, 여성에게 전가하는 정부의 정책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해고를 강요당하는 노동 조건 속에서 여성의 낙태는 생존권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 또한 보육 정책과 노동정책 개선 없이 이루어지고 있어, 허무맹랑한 캠페인으로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도희 여성주의생협(준) 한의사는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 생명을 정부가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비난했으며, 박경양 전국지역아동센터 협의회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지만,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생명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정책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날 네트워크는 임신중지(낙태)권 요구안을 발표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들을 처벌하지 말 것 △본인 요청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여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인정할 것 △안전하게 임신중지 할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할 것 △피임 등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적 정보 접근권을 강화하고 응급 피임약을 보편적으로 시판할 것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