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죄에 가려진 전교조의 잘못

[기자의 눈] 민주노총 성폭력 평가보고서 채택, 공은 다시 전교조로

민주노총은 5일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50차 대의원 대회를 열고 2008년 12월 6일 발생한 김모 성폭력 사건의 평가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원안을 공식 채택했다. 이로써 22개월간 피해자와 지지모임이 고군분투하며 요구했던 2차 가해자들의 행위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과 조직적 은폐조장을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공식 확인했다. 이번 50차 대의원 대회는 규약개정 등의 안건이 있었으나 사실상 성폭력 평가 보고서 채택이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다. 성폭력 사건 보고서 채택 안건을 통과를 위해 어렵게 대의원 대회를 성사시키고 만장일치를 이뤄 낸 것은 민주노총이 성평등 조직으로 가기 위한 긴장감과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

그러나 채택된 평가보고서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피해자를 가장 괴롭게 몰아넣었던 전교조 징계재심위원회의 ‘조직적 은폐조장행위 혐의 없음’이라는 결정을 두고 전교조가 져야 할 책임을 민주노총이 일부 나누는 평가가 됐기 때문이다.


가맹조직 지도력 부재 평가가 전교조의 ‘조직적 은폐조장’ 논란 방패 되선 안 돼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 해결 과정의 한계로 가맹조직에 대한 지도력 부재를 짚었다. 그간 사건해결이 지지부진해지고 논란이 발생한 것에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다른 측면에서 피해자가 조직적 은폐조장 분위기로 압박을 받았다고 진술한 부분을 정면으로 뒤집고 ‘조직적 은폐조장 행위 혐의 없음’이라고 판단한 책임주체였던 전교조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가맹조직 지도력 부재라는 평가가 전교조가 일으킨 ‘조직적 은폐조장’, ‘2차 가해 의미 규정’ 논란의 방패 되선 안 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평가보고서에서 이 부분을 “‘조직적 은폐조장행위 혐의 없음’이라는 전교조 재심위원회의 결정내용은 진상특위 보고서 권고의 핵심에 반하는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도 △ 조직적 은폐조장행위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공론화 부재 △ 조사(중앙)-징계(산하조직) 단위의 불일치 △ 징계권고자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근거를 요청하는 전교조의 질의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 부재 등 실질적으로 지도 지원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지난 9월 17일 민주노총 평가보고서 채택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제가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을 만나서 ‘당신이 위원장이니까 당신의 생각을 바꾸든지 그렇지 않다면 징계를 하겠다’고 지도하는 게 맞는가? 당사자가 접수 안 되는데 어떻게 접수할 것인가의 문제다”라고 토로한데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이 산하 연맹에 어떻게 지도력을 관철할 것인가의 문제를 에둘러 평가한 대목이다.

이번 논란은 민주노총 최고 의결단위인 대의원 대회 결정 사항을 산하연맹에서 무력화 시킨 것으로, 평가보고서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산하연맹의 잘못을 총연맹의 지도력 부족으로 상당부분 환원 시켰다.

실제 피해자와 지지모임은 전교조 징계 재심위 과정에서 직접 전교조의 문제점을 짚고 전교조 집행부에 피해자 중심의 판단을 요구했다. 심지어 전교조 대의원 대회에서도 피해자가 자신의 입장을 공개했지만 전교조는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지도력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행위주체로서 전교조의 판단은 매우 적극적이었고 주체적이었다. 이런 전교조의 태도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20년 넘게 삶을 불살랐던 조직인 전교조와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이런 지점에서 민주노총 평가보고서는 조사-징계 단위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도 그 불일치가 부른 전교조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피해자의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담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전교조, 소모적 쟁점 버리고 피해자 고통 어떻게 어루만져 줄지 고민해야

또 평가보고서의 결론으로 도출된 민주노총의 과제에서도 상급단체 결정을 뒤집은 전교조 결정사항에 대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담지 못했다. 이는 민주노총의 과제로 남았다. 몇몇 대의원들도 민주노총이 단순히 전교조 2차가해자(징계대상자) 들의 징계 양정의 문제를 넘어, 전교조가 22개월간 논란의 중심에서 피해자에게 가한 고통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재심위 결정의 오류를 인정하도록 하는 권고 등을 과제로 제기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이날 대의원 대회 대회사에서 피해자와 피해자 지지모임 회원들의 노고에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민주노총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다. 김영훈 위원장은 “평가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최대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 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과정에서 형성된 쟁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평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김영훈 위원장의 인식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민주노조의 중심인 총연맹의 지도력 관철이라는 과제도 새롭게 드러났다. 민주노조의 지도력은 지도부의 명령이나 노력이 아닌 산하연맹과 단위노조의 규약과 규정을 지키려는 노력과 민주적 운영 원리인 대의 기구의 결정을 따르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16개월 전 민주노총 2차 진상규명 특위가 보고서를 통해 징계와 후속대책을 권고하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이를 채택했는데도 사건이 일단락 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사실상 전교조에 있었다.

피해자는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전교조의 징계대상자와 정진후 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집행부가 가장 자신을 괴롭혔다”고 했다. 또 전교조는 더 이상 피해자 조직이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지었다. 전교조는 그 동안 각종 문건과 토론문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 성인지’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줄기차게 이어진 논란의 가장 큰 핵심은 전교조가 제기한 “조직적 은폐조장에 전교조 조직이 관여하지 않았으니 은폐조장이 뭔지를 밝혀라”는 것이었다. 2차 가해를 두고는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가 2차 가해자라고 명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차 가해를 한 징계 대상자들을 사실상 옹호해 왔다.

그간 피해자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 전교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사과만으로 사건해결이 됐다고 안주할 것인가. 쿨 하게 징계 재심위의 판단이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에 위배된 결정이었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 시켰다고 인정하고 사죄할 것인가. 피해자의 치유 첫걸음은 이에 대한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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