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갇힌’ 이들은 먹고, 자고, 심지어 ‘볼일’까지 한자리에서 해결한다. 한 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아니, 자리를 뜰 수 없다. 집회신고를 하기 전까지는.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줄을 서는 이들은 재능교육 학습지노조 조합원들과 사측 직원들이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순서를 뺏길 수 있기에 밤을 새워가며 자리를 지킨다. 노조원 앞에 사측 직원이 다섯 명 서 있다면 그는 한자리에서 꼬박 12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 혜화경찰서 앞에서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황창훈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본부장이 줄을 서 있다. |
줄을 서는 사람들의 밥을 날라주고 대소변을 처리해줄 또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은 노조나 사측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감옥보다 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혜화경찰서는 방관만 하고 있다. 사실 방관이라기보다 ‘조장’이다. 얼핏 감옥 같기도 하고, 동물원 같기도 한 이 ‘라인’을 만들어준 것도 경찰이고 집회신고 시간인 0시가 되면 친절하게 닫힌 문고리를 열어주는 것도 경찰이다.
황창훈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 본부장은 “이렇게 울타리 갇혀서 동물처럼 생활하는 게 반인권적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측이 집회신고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 황창훈 본부장이 집회신고를 기다리며 피켓을 만들고 있다. 피켓에는 “행정 편의를 위해 민원인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가둬놓는 반인권적 행위를 하는 서울혜화경찰서 규탄한다”고 적었다. |
그러면서 그는 “집회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가 자기주장을 펼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한 것인데도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집회를 못하게 회사가 집회신고를 시키는 것은 헌법이나 집시법의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 가진 자의 횡포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편의적 접근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경찰서가 행정지도를 통해 사측을 자제시키고 노측에 최소한의 집회 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선집회신고가 되어 있으면 후순위자는 무조건 금지하는 행정 편의적 접근이 노측이나 사측을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다.”
이 같은 ‘유령집회’ 문제는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주변에 사측이 모두 집회신고를 내놔 농성과 집회를 제대로 못했다. 결국 이들은 지난달 밤샘행동까지 들어가 본사 주변 일부 지역의 집회신고를 받아주기로 서초경찰서와 합의한 바 있다.
또, 지난 12일 행안위의 서울지방경찰청 국감에서도 지적되었다. 이날 문학진 민주당 의원은 “집시법 조항에 두 개 이상의 집회가 신고 되면 뒤에 신고된 집회를 불허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해 재벌기업들이 집회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서민 집회를 막고 있다”며 “규정을 너무 기계적으로 해석해서 이렇게 막다른 처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성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회에 허위신고 관련한 처벌조항이 생기면 허위신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 오늘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는 ‘고객 만족을 위한 실천 캠페인’이 진행됐다. |
한편 재능교육 사측에 의해 집회신고가 되어 있던 오늘,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는 ‘고객 만족을 위한 실천 캠페인’이 진행됐다. “‘밝은 사회’ ‘깨끗한 거리’ 만들기”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은 재능교육 앞이 가진 자의 탐욕으로 어둡게 얼룩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