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노조원들의 공장 점거 사태 해결의 협상카드가 현재 회사 쪽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대다수 언론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 타임오프제에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타임오프 문제는 이미 노조가 대부분 회사 쪽에 양보한 상황이다. 더 이상 쟁점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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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전 KEC 노동자 가족이 서울에 올라와 민주노총에서 KEC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눈물로 공권력 투입 계획을 중단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
이미 노동조합은 타임오프 법적한도 수용의사를 밝힌 데다 심지어 인사.경영권을 두고도 지난 6월 7일 회사제시안의 수용의사도 밝혔다. 그러자 회사 쪽은 지난 9월 1일엔 “타임오프는 문제가 아니다. 분사와 희망퇴직, 구조조정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10월 초에는 현 집행부를 인정치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다 흘러나오는 얘기일 뿐 공식 요구안은 전혀 없다.
지난 2주 전까지 노조는 합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경찰은 KEC 노조 지회장을 두 번이나 연행해 영장실질심사를 거쳤지만 모두 기각됐다. 노조가 합법투쟁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조합원들은 불법 점거를 택했다. 택하기 보다는 밀려서 공장에 들어갔다.
이번 점거 농성은 2주전 노조가 공장 순회 투쟁을 하다 사쪽 용역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처음으로 불법 시비에 휘말리면서 경찰의 노조 집행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애초 농성은 50여명을 생각하고 식량을 준비했지만 그에 3배가 넘는 조합원들이 분노해서 한꺼번에 돌발적으로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공장 점거 농성자 200여명 중 115명은 여성이다.
아직도 회사 요구안을 모른다
노사 공식 교섭은 그 동안 한 번도 없었고 간사회의만 몇 번 했지만 사쪽은 아무 내용도 내놓지 않았다. 농성에 들어가고 나서도 일체의 대화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김봉윤 부위원장은 “우리는 아직 회사 요구가 뭔지도 모른다. 노조와 교섭을 못하겠다는 것인지 뭐가 목표인지도 알 수가 없다”며 “이미 노조는 이 사태를 풀기위해 웬만한 요구안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회사의 요구안 자체가 전혀 없다. 소문처럼 요구안이 정리해고라면 그런 것을 가지고 협상이라도 해볼 텐데 요구안 내용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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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위원장은 “KEC 노조는 10 년 전 4일간 파업을 해 본 게 전부다. 투쟁이라곤 해본적도 없는 조합원들인 데도 노조를 무력화 하겠다는 것”이라며 “한 여성 조합원이 저에게 아저씨는 누구예요?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금속노조 부위원장이라고 했더니 금속노조가 뭐하는데 냐고 물을 정도로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잘 모를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김봉윤 부위원장은 “경주 발레오만도나 상신 브레이크 상황처럼 KEC도 비슷하게 노조말살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태는 법을 지키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 결국 압도적인 힘으로 법을 능가하는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불법으로 내몰렸다”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25일 오전 KEC 노동자 가족대책위가 서울에 올라와 민주노총에서 KEC-기륭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족대책위 전희정 씨는 “우리 가족들은 그래도 KEC 다닌다 하면 삼성이나 LG가 아니어도 어깨가 올라갈 정도로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 가족들을 파탄 내는 공권력 투입은 제발 하지 말고 서로 대화와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승아 씨는 “KEC에서 20년간 몸 바쳐 일한 남편을 살려 달라. 남편은 20년 동안 열심히 일한 죄 빡에 없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이만큼 키워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가족대책위는 호소문을 통해 “KEC노동자들은 대체 회사가 왜 교섭을 안 하는지, 무엇을 바라며 이렇게까지 피를 말리는지 알지 못한다. 타임오프 때문이라고 했다가 구조조정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집행부를 절대 인정 못한다고 하는데 대체 무엇이 사태해결을 가로막고 있는지 우리도 답답하다. 사태해결의 유일한 걸림돌은 딱 하나다. 노동조합을 깨지 못한다는 걸 뒤늦게 안 회사의 오기다”라고 개탄했다.
또 “만약 정부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내 남편과 아내가 짓밟히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설 것이다.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KEC를 끝장낼 것”이라며 “KEC 곽정소 회장은 당장 사태해결에 나서라”고 공권력 투입 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정부는 KEC, 기륭, 고대병원 등 현안해결 없이는 G20의 ‘성공’도 요원할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KEC, 기륭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27일 구미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조직의 명운을 걸고 폭력정권에 항거하는 중요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