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남은 ‘좀비’ 국가인권위?

문경란, 유남영 인권위 상임위원 동반 사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아래 인권위)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동시에 사퇴입장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인권위는 유 위원과 문 위원은 이날 오전 현병철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이 참석한 상임위원회 간담회에서 현 위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2001년 인권위 설립 이후 복수의 상임위원이 임기 중 사퇴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상임위원의 사퇴 이유는 현병철 위원장의 독선적 운영방식때문이다.

문 상임위원은 사임의 변에서 “인권위를 ‘위원회’ 제도로 만든 것은 독임제 부처와 달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권위원들의 합의에 의해 운영하고 결정하라는 취지이나 지난 1년 4개월간 현 위원장은 인권위를 운영하면서 위원회의 설립 취지는커녕 적법 절차도 잘 지키지 않았다”라고 지적하고 “현 위원장의 판단 근거는 유감스럽게도 인권이란 잣대가 아니며, 오직 권력기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라고 그동안 현 위원장의 운영 행태를 꼬집었다.

유 상임위원 역시 사임의 변에서 △지난 2월 국회에서 전원위 의결이 나지 않은 북한인권법안 관련 안건을 인권위 입장인 것처럼 보고한 일 △임시 전원위나 상임위 소집 요구를 거부한 것 △용산참사 의견서 제출 과정에서 일방적인 회의 진행 △국회에서 독립성 훼손 의심 발언 등을 예로 들며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현 집권세력의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가깝게는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위원회법 제5조 제2항의 자격요건(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깡그리 무시된 데에 그 까닭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9년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행동이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두 상임위원의 이번 사퇴는 그동안의 독단적인 운영행태와 더불어 최근 상임위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이 지난 25일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달 25일 인권위는 상임위원회의 의결방식을 변경해 위원장 권한을 강화하고 진보적 목소리를 내온 상임위원들의 권고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운영규칙 개정을 추진해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는 상임위원 3명이 합의하면 위원장이 반대하거나 전원위(상임위원+비상임위원)를 거치지 않더라도 특정 안건에 대해 권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상임위원 3명이 합의했더라도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전원위에 상정할 수 있다. 상임위 의결로 가능했던 긴급 인권현안에 대한 의견표명도 반드시 전원위를 거치도록 했다. 유 위원과 문 위원은 당시 전원위에서 개정안 상정 자체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 명숙 활동가는 "그동안 현병철 위원장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인권위를 운영했고 지난 25일 운영규칙까지 개정하는 등 비민주적 독재방식으로 인권위를 이끌어 온 것이 문제며, 그 뒤에는 MB의 인권위 흔들기도 한몫했다"라면서 "사퇴할 사람은 상임위원이 아닌 현병철 위원장"이라고 꼬집었다.

새사회연대 또한 1일 성명서에서 "두 상임위원의 조기 사퇴는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무능과 독단적 운영, 전횡이 원인이며, 이로 인해 해당 위원들이 겪은 인권적 고뇌, 번민 더 나아가 모욕감을 이해한다"라고 밝히고 "우리사회는 그간 국민의 염원과 인권시민단체들의 10여년에 걸친 운동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인권위 기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인권정책이 부재한 이명박 정부와 현병철 체제에서의 국가인권위는 뼈만 남은 ‘좀비’가 되고 말았다"라고 질타했다.

  2009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하는 한 장애인이 반대하는 손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피켓에는 '국가인권위원장 날치기 취임 중단하라'라고 씌여 있다.

'인권위를 사랑하는 직원 일동'은 1일 발표한 글에서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결코 민주적이라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돼 온 위원회 운영이 두 상임위원의 중도 사퇴를 몰고 왔다"라며 "유 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의 사임은 난파선처럼 흔들리는 인권위에 대한 마지막 경고다. 인권위가 상처를 딛고 신뢰받는 국가기관으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본연의 임무를 외면하고 의미 없는 주변인으로 몰락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권위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과 인권위를 운영하는 지도부의 처신에 달려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두 위원의 사퇴로 상임위원은 민주당 추천 몫으로 지난 10월 초 임명된 장향숙 위원만이 남게 됐다. 장 위원 또한 이번에 문제가 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이 또다시 전원위에 올려지면 상임위원 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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