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은 언제나 反여성

[기획연재] 여성노동자의 현실(2)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제 2차 저출산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기본계획안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국가적 책임이라는 기본 인식조차 부정하고 있다. 물론 1차 기본계획안 또한 그러한 국가적 책임을 바탕으로 한 계획으로 보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러한 정신을 살리겠다는 코멘트라도 있었다. 반면 2차 기본계획안은 노골적으로 불평등과 반여성성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육아휴직 정률제다. 기존 육아휴직 급여는 월 50만원 일괄지급이었다. 월 50만원이라는 돈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다는 개념 또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급여의 40%를 육아휴직급여로 주겠단다. 최저 5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까지라는데 적어도 100만원을 받으려면 한 달에 250만원 정도 수익을 얻는 노동자만이 그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안이라 비판받는 최저생계비조차도 월143만 9천원(4인가구 기준)을 기준으로 한다. 그렇다면 두 명의 자녀가 있는 비정규직 기혼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 남성노동자가 월 50만원 받아가며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정부가 규정한 최저생계비 기준에조차 못 미치거나 그 기준을 간신히 턱걸이하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저출산 정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한 만약 그녀가 유일한 생계부양자라면 육아휴직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데 비용에 차이가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구나 똑같이 일정정도의 비용이 지출되고 또 그만큼 필요하다. 그런데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육아휴직 급여를 적게 받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차별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현실적 보완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언제 잘릴 줄 모르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1년씩이나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까? 어떤 서비스 업종의 정규직 여성노동자는 실제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산전후휴가조차도 쓰지 못하게 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조건은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대상조차 안 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그것은 농민, 자영업자, 가정주부 모두에게 해당한다. 이들 중 누구도 육아휴직을 쓸 수가 없다.

이토록 육아휴직 급여가 적게 책정된다면, 결국 육아휴직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여성노동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결국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효과를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효과는 다른 몇 가지 정책에서도 면면히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육아기 단축시간근로제와 자율형 어린이집이다. 육아기 단축시간근로제는 노골적으로 여성노동자에게 자녀의 육아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노동유연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것의 실내용은 전일제 여성노동자가 육아를 위해 육아기단축시간근로제를 신청하면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등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에서 아이도 돌보고 밖에서 일도 하며 돈도 벌라는 것이다. 물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전무하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 저출산 정책의 일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질의를 위해 토론회 참석한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육아기단축시간근로제는 보건복지부 소관이 아니라 노동부 소관임으로 자신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답변할 정도였다.

두 번째로 자율형 어린이집인데 이는 민간어린이집 시설을 늘려 시장화논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모범적인 어린이집은 인증제를 통해 선정해주고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은 변촌 산간지대와 같이 특정 지역, 계층에게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보육공공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찢어지게 못살거나 도시로부터 매우 떨어져있는 벽촌에 살지 않는 이상 비싼 돈을 주며 아이를 길러야 하는 수고를 감행하라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저출산 시대를 맞이한 것은 정부의 기본계획안 서두에도 지적하고 있듯이 경제적 사유가 그 원인이다. 풀어서 표현하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노동자의 임금이 너무나 적고, 반면에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음에도 대처하기는커녕 먹고 살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명의 생계부양자, 특히 여성일 경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회적 조건, 경제적 조건 그 무엇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정말 내 인생을 포기하고 그 아이의 미래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만 살아가라고 국가가 여성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없거나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이 땅의 여성들의 고용이 불안정하고, 육아의 책임을 오롯이 그녀들에게만 전가해서다. 당장 우리의 생활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얘기다. 아이를 낳는 순간 직장을 그만두거나 쉬어야 하고 복귀한다하더라도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그 뿐인가? 온갖 집안일과 육아에 때되면 시댁 제사 등 온갖 경조사까지 안팎으로 일꾼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저출산이다. 우리가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에 대해 문제삼고,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만의 권리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부터 여성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은 시작된다.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을 살 수 없게 하는 세상이 문제다.

태그

여성노동자 , 저출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최성화(민주노총)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