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28일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 7항 단서 중 전기통신에 관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에 관한 부분이 청구인의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법률로서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하다”고 선고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 7항에서는 “제5조 1항의 허가요건이 존속하는 경우 제1항 및 제2항의 절차에 따라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2월의 범위 안에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 감청 기간과 연장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헌재는 “통신제한조치기간을 연장하기 위하여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법원이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이 남용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통신제한조치기간을 연장함에 있어 법운용자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통신제한조치가 내려진 피의자나 피내사자는 자신이 감청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본권제한의 특성상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으므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허가함에 있어 횟수와 기간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수사와 전혀 관계없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당할 우려가 심히 크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조대현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감청대상자는 자신의 전기통신 내용이 감청되는 줄도 모르는 채로 전기통신 내용을 감청당하고 통신감청이 끝나기 전에는 통신감청의 허가나 통신감청에 대하여 불복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한 통신감청제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의 영장에 의하여 수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 제12조 3항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공현, 김희옥, 이동흡 재판관은 “주요 범죄 내지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음모나 조직화된 집단범죄의 음모가 있는 경우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수사가 필요하고 미래에 발생될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통신자료의 특성상 그 증거수집을 위해 지속적인 통신제한조치가 허용될 필요가 있다”며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에 따라 해당 조항은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이 유지된다. 헌재는 “이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나 법적 공백상태를 고려해 잠정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입법자는 늦어도 2011년 12월 31일까지는 새 입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 씨 등은 2003~2009년 수십 차례에 걸쳐 재일 북한공작원과 연락하면서 지령을 받고 대남 투쟁선동문을 접수해 전파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기소됐으며 이 과정에서 검찰이 14차례에 연장을 통해 감청, 이메일 조회 등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위헌제청을 신청한 바 있다.
한편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는 이 같은 헌재의 통신비밀보호법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해 논평을 내고 “‘통신의 비밀’은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으로 “이번 판결이 국가정보원의 무제한 감청에 제동을 걸었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진보넷은 “국가정보원이 법률과 영장의 취지에 맞추어 최소한으로 감청하고 있는지, 자기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감청 장비는 오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아무도 개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인 감청’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정보원이 법원의 통제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며 “정보기관의 감청에 대하여 전문기구를 두고 통제하는 프랑스나 독일의 사례처럼 국가정보원의 무제한 감청을 지금이라도 통제하기 위한 법률 개선이 차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