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도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리라 예상되는 ‘해비급’ 선물이다.
종편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이 앞 다퉈 정부에 각종 특혜를 요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말 새해 업무보고에서 전문의약품과 의료기관 방송광고 허용 등을 추진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로 인한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상실 등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종편으로 맞이하게 될 음울한 미래에 대한 밑그림은 5일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미디어행동의 주관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 4대강, 종편을 규탄한다” 긴급토론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보다 먼저 언론을 무한경쟁의 시장경제체제로 몰아넣은 미국의 예를 통해 우리가 곧 TV에서 보게 될지도 모를 뉴스의 모습을 전했다.
“미국의 폭스뉴스는 무식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보수세력과 정치권력을 지원한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이유는 선정적인 방송포맷 때문이다. 폭스뉴스의 모토가 ‘Fair & Balance’인데 절대 ‘Fair’하게 하지 않는다. 막말방송하고, 토론자를 불러놓고도 방송사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수시로 말을 끊으며 면전에서 면박을 준다. 보수와 진보 두 패널을 부르더라도 반드시 보수는 두 명, 진보는 한 명을 불러서 깨버린다. 그 한 사람을 묵사발 만드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중독된다. 뉴스가 연예프로그램 형태를 띠면서 즐기기 위해 보게끔 하고 그 안에 공정성 공영성은 사라진다. 그게 시청자 눈길을 끄는 요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폭스뉴스도 충성도 높은 시청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포맷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시청자를 위해 좋은 방송은 아니잖나.”
광고규제완화? “약 권하고 술 권해 그 돈으로 종편 먹여 살리자는 것”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전문의약품 광고와 의료광고, 술 광고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해 “환자와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종편 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의약품 광고가 이성적인 정보를 전달해서 소비자 선택을 높이기는커녕, 실제 의약품 광고 대부분은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이고 그런 부분이 불필요한 의료 오남용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는 “의약품에 대한 소비자 직접광고가 허용된 나라는 미국과 뉴질랜드가 유일한데 미국과 뉴질랜드에서는 이것들이 의약품 오남용을 심각하게 부추기고 의료비 상승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며 “의료 오남용이 커지면 수능 전날 ADHD(주의력 결핍)약이 가장 많이 팔리거나, 조금만 불안해도 우울증 약을 사먹는 등 환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자꾸 약물로 해결하려는 사회병리적 현상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전 국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나라로, 대부분의 처방약품이 건강보험 적용대상이라 처방약품에 대한 불필요한 수요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약을 먹여서 건강보험을 축내 종편 사업자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료광고에 대해서도 지역 간 의료 불균등 이용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암환자의 경우 전국의 30~50%가 서울에서 진료를 받을 정도로 지역 간 의료 불균등 이용 문제가 심각한데 병원광고를 허용하면 대형병원 광고로 인해 지역 간 불균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지역 간 자원 배분 문제를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정권이라면 광고허용문제를 단지 방송문제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의 방송사업 참여문제에 대해서도 “의료법의 기본 취지를 어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료법에서는 의료업을 하면서 부대사업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의료업에 한정하는 사업으로 열거함으로써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다”며 “의료법과 시행령 상 의료법인은 영리추구하지 않을 의무가 있고, 비영리법인이 통상거래 초과해서 영리행위 참여하면 못하게 하도록 하는 게 시도지사와 주무관청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을지병원이 이번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연합뉴스TV(가칭)에 주주로 참여한 데 대해 4일 “영리행위를 할 수 없는 의료법인의 방송사업 출자 허용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으로 무효”라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역언론 “우린 이제 다 죽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종편으로 인해 지역언론이 받을 피해를 우려했다. 그는 “종편의 유일한 수입원인 광고시장. 이들이 천억씩만 매출을 올려도 지상파 방송들이 적자로 전환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며 “적자 전환한 수도권 방송들은, 지역에서 부족분 메우려고 할 것이고 지역 방송들도 앉아서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지역신문이 가장 먼저 피해 받고, 도미노처럼 거꾸로 전체 언론의 공공성, 공정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식 언론노조 춘천MBC본부 위원장은 이번 종편이 “이제 우리(지역방송사) 다 죽었다고 생각할 일”이라고 말했다. “광고수익이 축소되면 각 사업자가 살기 위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 안 되는 것은 다 잘라낼 것이고 그 우선순위는 지역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어 김창식 위원장은 “지역에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살고 있고, 지역의 의제가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서울과 이익이 상충되는 부분도 있어 지역언론으로서 할 얘기가 있는데 지역언론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고 결국 그것은 지역 간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종편이 언론의 4대강 사업이라는 말이 딱 맞는 비유”라며 “일단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빨리 막는 것만이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결국 “여러 사업 환경 어려움 때문에 특혜 요구 외에 반드시 합병해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라며 “이는 합종연횡을 통해 글로벌미디어그룹으로 가려는 그림”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전체판을 뒤흔듦으로써 MBC를 포함한 모든 공영방송사를 시장에 던져버리겠다는 것”이라며 “종편을 기반으로 지상파를 포함한 미디어 M&A를 요구하는 거다. 이 가시권 안에는 KBS2와 SBS, MBC도 포함되어 있으며 덩치가 커질수록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 포함한 몇 개 재벌 기업으로 뚜렷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부분에 대한 견제,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하며 결론적으로 우리가 저지해야 할 대상은 ‘조중동 방송’이 아니라 ‘삼성방송’ ‘현대방송’ ‘SK방송’”이라고 꼬집었다.
‘쌀 독에 든 쥐’ 잡을 고양이를
이후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종편에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성균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표는 “작년 초부터 조중동과 손잡은 기업 분명히 심판하겠다고 말해왔고 현재 300여개 단체가 우리와 같이 행동하겠다고 동의했다”며 “대한항공, 삼양사, 삼성, 한샘, 에이스침대, 신협중앙회 등이 불매대상 기업으로 선정될 가능성 높다. 작년부터 경고했음에도 조중동과 손잡은 이 기업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4일 심사보고결과서 회의록, 심사자료, 종편 심사 예산집행내역, 특수관계자 참여현황, 종편과 보도채널에 대한 중복주주참여현황, 주요주주들의 출자 현황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둔 상태이다.
야권에서도 종편이 불러올 재앙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 중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종편에 각종 특혜를 주는 법안은 국회에서 철저하게 막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최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시장에 맡기기로 했으면 끝까지 시장에 맡겨라. 정부 지원은 있을 수 없다”며 “방송사들의 광고 직접 영업 안 된다. 이거 전부 국회 통과해야 하는 법안. 이 부분 국회에서 철저히 막을 것. 그리고 그들이 신봉해 마지않는 시장에서 출혈경쟁으로 한꺼번에 자멸해 가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종편에 선정된 네 매체를 ‘과욕 부리다 쌀독에 빠진 쥐’에 비유하고 쌀독을 깨지 않고 쌀독에 빠진 쥐 잡는 3단계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그들에게 주어질 특혜를 감시, 통제함으로써 쌀독의 쌀 최소화시키고, 시청거부운동이나 철저한 감시활동 통해 쌀독 뚜껑을 덮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쥐를 잡을 수 있는 고양이, 즉 언론을 포함해 모든 공적 부분의 공공성을 되살릴 수 있는 정권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