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1인시위도 불법집회?...법학자들, 위헌성 제기

법률·인권단체, 집시법 사전신고제 위헌심판 청구 예고

“자, 구호 하나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만 두 번씩 따라하시면 되겠습니다. 안전한 핵에너지는 없다. 위험한 핵에너지 확대 정책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기하라!”
“○○경찰서 경비과장 ○○○입니다. 구호를 제창하는 것은 집회에 해당합니다. 또 한 번 구호를 외치면 ‘미신고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해산 조치하겠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경찰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협박조로 어르고 참석자들은 재빨리 구호를 제창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순간을 모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 추모제나 문화제 등도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처벌되는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복수의 사람들의 모임이 아님에도, 처벌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행사하는데 어째서 경찰관서에 일일이 신고를 해야 하는 걸까.

28일 서강대학교 김대건관에서는 이 같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사전신고제의 의미와 문제와 신고제를 근거로 한 처벌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참여연대가 주최한 ‘집시법의 신고제의 위헌성과 미신고집회 처벌의 문제점’ 학술발표회에서는 다섯 명의 법학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신고제는 집회에 대한 ‘사전 검열’”이며 “신고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사전신고제는 사실상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

김종서 배재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집시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고를 단순히 협력의무의 강제이기 때문에 ‘허가’로 볼 수 없고, 또한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며 정당화를 시도해 왔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상 사전신고의 성격에 대하여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로 파악”하고 ‘사전신고제’는 허가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데 대해 “사전신고제는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에는 눈 감은 채 ‘공공의 안전보호’를 내세운 경찰의 통제가능성을 열어두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신고내용에 대한 경찰의 실질심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허가제로 작동하고 있”으며 “집시법상의 여타 규정, 특히 금지통고제도와 결합하여 필연적으로 허가제로 작동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21조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집시법상의 사전신고제는 헌법 제21조 제2항이 금지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어떠한 규제가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하려면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집시법상의 사전신고제도는 옥외집회에 대해 사전신고를 하게하고, 신고 내용에 대해 경찰관서장의 심사를 거쳐 집회의 허용여부가 결정되며, 허가를 받지 아니하면 금지통고를 받거나 미신고집회에 대한 해산 및 처벌규정의 대상이 되는 등 검열의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신고제가 허가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기본권 제한에 관한 일반원칙인 과잉금지의 원칙(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교수는 “사전신고와 금지통고 및 벌칙이라는 현행 집시법의 세 축이 너무나 공고하게 결합되어 있고 사법기관에서도 이를 당연시 여기고 있어 현재의 집시법 체계를 그대로 둔 채 헌법과 법률의 해석을 통한 합헌적 운용가능성은 찾기 어렵다”며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집회의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려면 집시법은 즉각적으로 폐지되어야 하고,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신고집회 처벌은 기본권 행사의 범죄화”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신고집회의 처벌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미신고집회 주최자의 형사처벌을 규정한 집시법 제22조 제2항에 대하여 합헌으로 결정한 논리를 비판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22조(벌칙) ② 제5조제1항 또는 제6조제1항―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그에 관한 다음 각 호의 사항 모두를 적은 신고서를 옥외집회나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을 위반하거나 제8조에 따라 금지를 통고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교수는 “미신고집회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신고 없는 집회의 개최’가 범죄행위가 되는 꼴로, 단지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권 행사가 범죄가 되는 것”이라며 “이는 헌법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집회의 자유는 제3자의 이익침해가 전제되어 있는 기본권으로, 충돌하는 이익 간의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것은 집시법의 몫”이라며 “집시법은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임의로 제한하거나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미신고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경찰이 미신고집회에 대해 내린 해산명령에 불응하면 모두 집시법 제24조 제5호에 의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해산명령 규정’에 대해서도 “신고제 본래의 취지가 협력의무라는 점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에 대해 신고의무의 해태를 이유로 하여 해산명령을 할 수는 없고, 이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폭력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임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0조(집회 또는 시위의 해산) ① 관할경찰관서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는 상당한 시간 이내에 자진 해산할 것을 요청하고 이에 따르지 아니하면 해산을 명할 수 있다.
2. 제6조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아니하거나 제8조 또는 제12조에 따라 금지된 집회 또는 시위

제24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5. 제16조제5항, 제17조제2항, 제18조제2항 또는 제20조 제2항을 위반한 자

그러면서 이 교수는 “결국 신고제를 허가제로 기능하도록 해주는 원천은 ‘신고의무의 강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고는 집회 주최 측에게 강제되는 의무가 아니라 경찰의 협조를 얻는 권리 차원으로, 신고제가 합헌적이기 위해서는 주최 측의 집회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신고를 할 것인가의 여부를 집회 주최 측의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며 “그러면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산을 명하는 것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미신고집회에 대한 처벌, 기타 과태료 등의 행정상 제재를 부과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이 외에도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미신고집회의 실태와 처벌현황’에 대해, 문병효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독일의 집시법상 신고제도와 미신고 처벌에 관한 문제’에 대해,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회 정의의 위헌성’에 대해,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회 개념을 둘러싼 자유와 제도의 길항작용’에 대해 주제발표 했다.

이들은 이후 미신고집회 처벌의 문제점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최은아 활동가는 “현재 미신고집회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공개 청구를 해놓은 상태”라며 “현재 1, 2심이 진행되고 있는 미신고집회 처벌 주요 사례들 중 적절한 것을 뽑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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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 인권운동사랑방 , 인권단체연석회의 , 미신고집회 , 집회시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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