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최저임금위원회의 2차 전원회의 직후,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정 최임위 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률을 견제하고 나섰다.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이 오히려 물가상승을 유발시켜 서민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물가인상률조차 따라잡기 벅찬 최저임금의 낮은 인상률은 현재의 서민생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또한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박 장관의 우려는 그럴듯한 공감대조차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더더욱 현실의 궁핍함이 나타난다. 청년, 노년을 막론하고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문화생활의 전무함, 불가능한 저축, 의료비 부담 등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늘상 가계부는 ‘적자’, 문화생활은 ‘전무’
민주노총은 12일, 20대~60대까지의 저임금 노동자 14명을 대상으로, 두 달간 이들이 직접 작성한 가계부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작성자는 40대~60대의 청소노동자 10명, 20~30대 공단 파견직 노동자 2명, 20대 청년 2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의 평균 임금은 154만원. 하지만 이들은 한 달 170만원의 생활비를 제출한다. 월 16만원의 적자가 꼬박꼬박 생겨나는 셈이다. 이 같은 전형적인 근로빈곤, 일명 워킹푸어의 모습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11. 2. 25)의 소득 5분위 가운데 최하위 1분위 가계수지와 흡사했다. 소득하위 1분위의 서민들 역시 월 17만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자 폭은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50대 이상의 노년층 노동자들이 22만원이 넘는 적자폭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20대의 청년 노동자들은 4만원 안팎의 적자를 유지했다. 이에 대해 이정호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축의금, 부의금, 자녀 결혼 등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고령 노동자의 월 가계적자가 더욱 심각했으며, 청년 노동자의 경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특징적인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노년과 청년층의 저임금 노동자는 공통적으로 문화생활을 전혀 향유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오락문화비는 한 달 6천원 미만이며, 월 총 가계지출의 0.2%에 불과하다. 특히 하위 1분위 가구의 오락문화비 월 4만 9천원 비하면, 저임금 노동자의 문화 생활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의류신발비 역시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저임금 노동자의 한 달 의류신발 지출 평균은 5만 8천원. 이는 전국 가구 평균 14만 6천원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주거수도광열비는 17만 원 선으로 전국 가구평균인 23만원 보다는 낮았지만, 그 구성비는 오히려 높은 특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이 같은 주거수도광열비의 높은 지출은 주거 환경의 열악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년층 ‘의료비’, 청년층 ‘교육비’ 부담
노년층과 청년층의 차이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의료비’ 지출항목이었다. 의료비에 해당하는 보건비는 50대 이상이 월 21만 9천원을 지출하는데 반해, 40대 이하는 10만 7천원의 지출에 그쳤다. 약 2배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령노동자의 의료비 지출은, 의료비의 전국 가구평균 15만 2천 원 보다도 상당히 높은 지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가계부를 작성한 50대 지하철 청소노동자 김모 씨는 “의료비는 겁이 나서 지출을 꺼리는데도 매달 상당한 돈이 의료비로 빠져나간다”며 “고질적인 관절염이나 허리 통증 등에 대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대신 주기적으로 침을 맞는 등의 치료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고령 노동자가 ‘의료비’에 큰 지출을 보이고 있는 반면, 청년 또는 중년의 노동자들은 ‘교육비’와 ‘통신비’등에 높은 지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통신비는 평균 7만 8천원으로, 다소 높은 구성비를 기록했다. 그 중 50대 이상의 한 달 통신비는 6만 원대, 40대 이하의 한 달 통신비는 10만 원대로 차이를 보였다. 특히 교육비의 경우 50대 이상 노동자들은 4만 원대의 지출을 유지하는 반면, 40대 이하의 노동자들은 한 달 9만 원대의 지출을 보이고 있어 2배가량의 차이를 내보였다.
한편 노년과 중년, 청년 등의 노동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비소비지출의 높은 구성비가 나타났다. 현재 이들의 한 달 비소비지출은 49만 6천원으로, 소비 지출 구성비의 29.1%를 차지한다. 전국가구평균인 67만 4천원 보다는 적지만, 이것이 전체 소비지출 구성의 22.8%에 해당하는 것을 감안할 때, 저소득층에서 더욱 높은 구성비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정호 실장은 “저임금 노동자의 비소비지출이 유독 높은 이유는 4대보험 미적용에 따른 개인연금(보험) 가입 때문으로 풀이되며, 또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세금제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며 “근로빈곤층을 위한 세금과 4대보험 감면제도의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빈곤층 생활 개선위해 필수적
가계부를 작성한 20대 학원강사 김모 씨는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일단 졸업 후 생활비를 비롯해 학자금 대출 이자까지 부담하고 있어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렵다”며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꾸고, 조금 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 등에 지출되는 돈도 만만치 않아, 매달 저축하는 것도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 같은 전형적인 근로빈곤층에게 최저임금의 인상은 절실하다. 특히 전 세대를 막론한 소득 계층에 따른 문화적 격차 확대는 저소득층의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적 우려를 낳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저임금노동의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과거 고령노동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근로빈곤층의 확산과 함께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 역시 “청년들의 생활은 갈수록 하향 평준화 돼 가고 있으며, 특히 최저임금제도의 악용으로 청년 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며 “이렇듯 최저임금의 문제는 어머니, 아버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청년들의 문제로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저임금이 1만 원 이상으로 책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노총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가계적자의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는 저임금노동자가 최소한의 자존감을 갖고 생활할 정책적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며 “또한 저임금 노동자의 가계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지름길을 최저임금의 현실화”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