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홍대 상상마당 대강의실에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실효성, 위헌성 논란에 빠진 청소년 게임이용 규제법 셧다운제에 대한 제언’ 토론회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날 토론회에는 셧다운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청소년, 학부모, 게임업계 종사자와 법조인, 학자가 발제자로 참석해 셧다운제의 헌법적 문제점을 짚고 법률의 실효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유일한 놀거리를 빼앗고, 학부모들의 부모된 권리를 빼앗고,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빼앗는 법, ‘위법천만’해서 의회에서 제정되자마자 헌법재판소로 직행해 위헌심판 받을 법. 다섯 발제자들의 발제 내용을 두 마디로 종합하면 또 이렇다. 그럼에도 의회가 해당 법안을 기어이 통과시킨다면, 이를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에 대한 기만행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셧다운제, 의회 통과하자마자 헌재로 직행?
토론회는 셧다운제의 헌법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이병찬 변호사의 발제로 시작됐다. 그는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을 할 권리’도 당연히 행복추구권의 내용에 포함되는 기본권인데 셧다운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셧다운제의 목적이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며 특정 시간에 일률적으로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것은 적절한 수단으로 볼 수 없다”며 셧다운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이라고 지적했다.
▲ 이병찬 변호사 |
셧다운제가 네트워크 게임만을 규제대상으로 제한해 온라인 게임업체에 대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서는 인터넷 게임으로 셧다운제 적용대상을 제한해 일반 패키지 게임처럼 네트워크 기능을 포함하지 않는 PC게임들은 셧다운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 두 게임의 차별이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네트워크 게임에 대해서만 셧다운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 차별이 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게임과 비네트워크 게임 사이에 중독성 측면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어야 하지만 네트워크 게임만을 셧다운제의 적용대상으로 한 이유는 그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법집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합리적 기준에 의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셧다운제가 국내 게임업체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외국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의 경우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업체에 대해서만 셧다운제가 시행될 것”이라며 “그럴 경우 국내 게임업체와 외국 게임업체 사이에 셧다운제와 관련된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게임노동자 자부심, 청소년 놀거리 빼앗아
▲ 게임개발자 김종득 씨 |
김종득 씨는 또 규제 방법조차 기술해 놓지 않은 법안의 허술함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는데 “주민등록 번호를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돼서 인터넷에서 실명인증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인데 컴퓨터게임 업계만 주민등록번호 등록을 유지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실제로 규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내용은 법안에 포함돼 있지도 않고 10월 시행 전까지 차차 생각해 보자는 게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 검은빛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
이어 그는 “만일 진정으로 청소년의 육체, 정신적 건강을 생각한다면 입시교육 폐지와 청소년 복지 강화를 고민해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셧다운제에 매달릴 시간에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기성세대를 향해 조언했다.
“내 아이, 범법자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민주시민으로 기르고 싶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부모들은 셧다운제를 찬성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깨어졌다. 고2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김혜정 씨는 발제를 통해 “내 아이가 게임 과몰입으로 현재 상담을 받고 있지만 이런 식의 규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학부모 김혜정 씨 |
때문에 그는 이 셧다운제가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 도용 또는 타인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으로 아이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부모 역시 공범자 또는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혜정 씨는 “이처럼 셧다운제는 개인이 판단으로 선택할 문제를 강제로 금지함으로써 자녀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나는 내 아이가 동영상, 게임 등 모든 것을 통과의례로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하면서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우리사회가 민주사회라면 게임을 강제로 금지하기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정보를 열고 교육하는 부분, 대체 놀이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부분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내 자녀를 어떤 문화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각 가정과 가족 공동체간의 고유영역”이라며 “아이가 옳게 판단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나 국가가 아니라 부모인 내가 갖고 싶다. 법에 의존하고 호소하기 보다는 힘들고 가끔 생채기도 나겠지만 눈과 가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셧다운제는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금지하고 자정시간부터는 강제 로그아웃으로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내용으로,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셧다운제를 포함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으며 법안은 현재 본회의 표결만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문화연대는 28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의원 전원에게 ‘셧다운제에 반대하는 10가지 이유 ; 국회의원들에게 고함’이라는 자료를 발송했다. 문화연대는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10가지 이유로 △실효성 없음 △위헌성 △청소년의 인권과 문화적 자기 결정권 침해 △공청회 및 의견수렴 없이 진행된 날치기 법안 상정 △게임법과 청소년보호법의 이중규제 △청소년 문화활동에 대한 고민의 시급성 △게임이 유해물이라는 구시대적 인식 △게임문화․산업의 위축 △개인정보관리의 위험성 △부모의 교육권 침해 등을 꼽고, 국회의원들을 향해 “셧다운제 도입이 갖는 문화·사회·산업적 문제점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을 통해, 졸속적인 셧다운제 도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