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대학이라면서”...성공회대 비정규직 계약해지 물의

비정규직 해소위해 비정규직 해고?...계약직 행정직원 사실상 ‘해고’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도 결국 자본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지난 2월 불거진 비정규직 계약해지 문제로 성공회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학교는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으로 변했고, 많은 학생들이 성공회대의 진보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3일 오후, 성공회대 피츠버그홀 앞 느티나무 아래 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 한가운데 한 학생이 플룻을 불고 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봄날의 캠퍼스 모습이다. 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피켓의 문구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날 문화제에서 시낭송을 한 학부생 김민 학생(디지털콘텐츠학과, 11학번)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부분을 “계약직 함부로 자르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고용된 사람이었느냐”로 개작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7명 사실상 ‘해고’

이날 문화제를 연 주체는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이다.

지난 2월 9일 성공회대는 계약만료 3주를 앞둔 6명의 계약직 행정직원에게 계약만료를 통지했다. 계약기간이 남은 4명에 대해서도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결국 학교는 학생문의 응대, 학과 행정, 수업 및 교수학습 지원 등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직원 7명과 재계약을 해지했다.

  학교 측이 계약해지를 통보하며 행정직원에게 보낸 문건

계약해지 당사자와 학생들은 반발했다. 학교 측으로부터 일방적 해고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학교 측의 계약만료 통보와 인수인계를 요구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상당한 모멸감을 주었고 학교가 우리에게 내세우는 최선의 무기는 ‘비정규직법안’이었다”며 “학사지원업무가 상시적인 업무인데도 불구하고 2년마다 갈아치울(실제로도 두 번 갈아치운) 계약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계약직 직원들의 문제제기에 상당수의 성공회대 학생들이 공감을 나타냈고 급기야 총학생회 등 학내 단위 29개와 12명의 교·강사가 참여(2011년 5월 3일 현재)하는 비대위가 구성됐다. 지난 3월 30일 공식출범을 알린 이들은 △일방적인 해고 사태에 대한 학교 측의 공식적인 사과 △계약만료자를 포함한 계약직 행정직원의 전원 정규직화 △직원·학생·교수 등 학교 구성원들에 대한 민주적이고 체계적인 의사소통 체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해소 위해 비정규직 해고?

문제가 불거지자 학교 측은 지난 3월 17일 학교 홈페이지 공지 게시판을 통해 ‘행정개편안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학교 처장단은 이번 행정개편이 △서비스의 강화 △비정규직 해소 △학생복지 향상 △책임 있는 자료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학사행정업무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학사행정을 개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계약직 행정직원 10명을 계약만료하는 대신 정규직 5명을 배치(3명 전환배치, 2인 신규채용)하고 업무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학생보조인력’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비대위 측은 이 같은 학교 입장에 대해 “비정규직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매우 저조한 문제의식”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또 “나머지 업무공백을 각종의 인턴, 국가근로, 학과장 학생조교라는 저임금 파트타임으로 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30일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 모습. 이날 출범식에는 총학생회 등 21개 학내 단위와 학생 250여명이 참가했다. [출처: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강은숙 일반대학원 학생(사회학과)은 이 같은 결정이 그간 성공회대 내부의 투쟁 역사를 회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5년도에 우리 학교에서 조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그나마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계약직들이 생겨났다”며 “그런데 이번 학사행정개편으로 다시 ‘보조인력’라는 ‘노동자 아닌 노동자’가 발생했다. 결국 2005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비대위 측은 “서비스를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해소하고, 학생 복지를 향상시키고, 책임 있는 자료 관리를 하려면 현재 비정규직 계약직원의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 “진보적 성공회대, 그래서 더 실망 크다”

성공회대 학생들은 무엇보다 그동안 ‘평화와 인권의 대학’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진보’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자임하며, 또 그런 신념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온 성공회대가 이 같은 일을 벌인 데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총학생회가 지난 2월 23일 이 문제를 처음 학내에 공론화하면서 내놓은 입장도 “인권과 평화의 대학인 우리 성공회대학교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소위 ‘비정규직 문제’가 똑같은 양상으로 발생되고 처리된 것에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것이었다.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학생은 “교수들이 밖에서는 700만 비정규직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학교 안에서는 ‘이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다, 학교 재정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라고 말하는 등 별로 다를 게 없다”며 “심지어 한 교수는 저 행정직원들 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너희 등록금 5%씩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일례로 장기용 총무처장은 지난 3월 25일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기간제 계약직 직원의 ‘기간 만료’에 의한 퇴사와 ‘해고’는 분명히 다르다. 근로 계약서에 임금과 기간이 명시된 계약서를 확인하여 서명하였다”며 “따라서 퇴사 일자는 별도로 공지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무방하며 도의상 미리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알려주는 것일 뿐 이를 두고 ‘일방적인 해고’ 사태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가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해당 글에는 ‘성공회대가 오히려 비정규직법을 활용해 계약직을 해고한다’는 내용의 비판 글이 줄줄이 달렸다. 임민희 씨는 “저희는 학교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정정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쳤던 이념과 사상은 비인간적인 법을 넘어선다고 생각하기에, (악)법이 아닌 학교의 교육이념대로 행동해 달라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내가 4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교육이념에 대한 최후의 예우”라고 말했다.

“차가운 법과 경영 논리 아니라 따뜻한 인간의 논리 적용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학교와 비대위 간 대화 통로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문제가 발생한 지 3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비대위와 학교 처장단이 만났다. 학교 측이 지난 20일 비대위의 면담 요청에 응한 것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학교 측 처장단은 이날 면담에서 계약해지 과정에서 ‘사람’을 배제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고려하지 못한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비대위 측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지금은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비대위 측은 일단 대화가 시작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8월, 계약해지를 앞두고 있는 행정직원 김미라 씨도 “이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된 데 늘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번 일로 학교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크다”면서도 “아직 학교에 대한 일말의 신뢰가 있다”며 갓 열린 대화 통로에 기대감을 내비췄다.

성공회대가 기존의 대학과 다른 자산이 있다면 이처럼 예민한 인권 감수성으로 지금 학교를 향해 날카롭게 문제제기하고 있는 이 학생들일 것이다. 현재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성공회대도 다르지 않다’는 절망을 깨고 이제 학교가 ‘다름’을 보여줄지, 이들의 문제제기에 눈감지 않고 총학생회의 주장처럼 “계약직 직원들에 대하여 차가운 법과 경영의 논리만이 아닌 따뜻한 인간의 논리를 적용”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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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상

    개량주의 개혁세력은 항상 그렇단다. 언제 어디서 신자유주의첨병으로 체인지 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진정한 진보는 혁명을 해야하는거다.
    퍼질러 앉아서 평화와 인권만 내세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 前한미FTA저지부대사령관

    지배관료가 된 변절자가 문제입니다.
    학상동지의 말대로 라면 혁명적인 마르크스 사회주의 인민전위당이 필요한 시점이오 동무. 동무 말대로 한국 진보는 마르크스를 베제한 투쟁이 다수여서 이런 문제는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올시다.

  • 前한미FTA저지부대사령관

    어쨋든 큰일이 올시다. 간접적으로 이명박에게 힘 실어주는 꼴이되고 있다니.

  • 이명박

    종화야. 또 여기서 이러고 있구나. 정신 차려야지.

  • 빈라덴

    난 죽지 않았다!

  • 착한마녀

    씨발 니들이 멀 아라! 김종화=인드라 님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구원자님이야 병신새끼들아 까대지마라고 세부에서도 다 안다고
    인드라님 발찌꺼기조차 핥을 자격들도 없는 인간들이 80% 야 8대2 알어?
    김종화님께서 곧 혁명하신다 다 바꾼다고
    ** 반응 한번 보갔어

  • 노동자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식인(학자)들이 지은 죄업은 어떻게 처벌을 해야 할까 이쪽에선 양지를 저쪽에서는 음지를 지향하는 해바라기 교수님들.... 기독교때문에 온 세상이 이들로 인해 어지럽다. 지구촌이 난리다. 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