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는 산 목숨 죽이는 거다"고 절규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법에 보장돼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죽음의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죽음을 넘어서도 또 다시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직면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31일 오후 세광중공업 인근에서 술을 먹고 있던 세광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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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관리에 들어간 세광중공업 전경 |
회사가 부도나고 돈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4월21일 업체(세광중공업 내 00기업)에 출근하니 세광중공업이 부도 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집에 가라고 했다.
업체에서는 권고사직서를 쓰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직서를 안썼다. 00중공업에도 00기업이 있다. 업체 사장은 00에 가서 일해라, 고용보험 타 먹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쪽 업체로 고용승계를 해달라고 했는데 고용승계는 말도 안하고 가서 일하라고만 했다. 문제는 세광중공업에서는 오후 5시까지 하고 일당을 받는데 00중공업에 있는 00기업은 오후 6시까지 하고 하루 일당을 준다. 조건이 맞지 않아 가지 않았다.
업체 총무에게 해고예고수당 달라고 하니 그런 것 없다고 하고 그 다음 말이 없다.
세광중공업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업종이 다 다르니 만나지 못하고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식당에 물어보니 한 500명 쯤 밥 한다고 한다.
업체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는가?
참고 기다렸지만 소식도 없고 업체에 연락해도 받지도 않는다. 답답해 사무실로 찾아가니 전화선을 뽑아놨다.
업체에서는 5월25일날 준다고 했다가 27일날 준다고 했다가 30일날 준다고 했다가 이제 6월3일날 준다고 계속 미루고 사람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한 달을 기다려도 소식도 없고 현대중공업 하청노조를 통해 노동부에 체불임금진정을 넣었다.
소문도 흉흉하다. 기성이 나오면 업체 사장들이 돈 가지고 도망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 노동부 진정 신청 하니 가만히 있으면 줄텐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소리도 들린다.
체불임금 받기 위해 농성을 하겠다는 소식도 들었다.
다른 업체 소장과 총무가 데모한다고 통보 받았다. 하지만 오늘 다시 확인해봤는데 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모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다시 세광이 돌아가면 일하기 힘들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가 겁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아는 동생은 술만 먹으면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블랙리스트에 걸려 7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중공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제 폭탄이라도 만들어 현대중공업에 들어가 폭파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2004년, 현대중공업에서 해고돼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목포, 광양, 사천, 부산, 진주, 성동, 삼척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현대중공업에 서류 넣으면 무조건 안된다. 서류 넣어도 원청 안전교육 때 보따리 싸라고 한다. 아는 동생은 반성문을 쓰라고 해서 써가도 집에서 쉬라고 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블랙리스트는 안 풀린다.
전국을 떠돌다 보니 1년에 5~6개월 밖에 일을 못한다. 돈도 안되고 일을 안하니 술 먹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 생활이 안되니까 마누라랑 싸우고 몇 번 이혼할 뻔도 했다. 이 곳 저 곳 떠돌다 보니 일해도 돈을 못 받은 적도 있고 노조 가입 경력이 밝혀져서그날 부로 짤린 적도 있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마누라랑 싸우게 되고... 어떻게 그 상황을 말로 다할 수가 있겠느냐?
블랙리스트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나이 60의 늙은 노동자) 이제 저 친구들 40대 후반, 50대 초반들이고 앞으로 10년 이상은 일 해먹어야 하는데... 아이들 공부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나이에 그 싹을 자른 것이다. 속이 답답하다. 잘못돼도 한 참 잘못 됐다. 어디 가려해도 블랙리스트에 걸려 못 간다. 산 목숨 죽이고 있는 거다. 하루 빨리 블랙리스트가 없어져야 한다.
(손에 화상을 입는 노동자) 블랙리스트 때문에 산재도 못한다. 작년 11월1일날 세광중공업 89호선 14번 탱크에서 폭발사고가 났다. 오전 11시30분경 들어갔는데 가스 냄새가 많이 났다. 환풍기는 겨우 1대 설치돼 있었다. 디스크를 갖다대고 불꽃이 일자 그대로 폭발했다. 뻥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덩이가, 마치 영화장면처럼 맨홀 칸 전체를 뒤덮었다. 옷이 다 탔다. 다행히 그날 두꺼운 옷과 에어 두건을 쓰고 있어서 손에만 화상을 입었다.
그날 사고소식을 전했는데도 업체에서는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한참을 있다가 공구 실어나르는 포터에 실려 병원에 갔다. 함께 있던 젊은 친구는 가슴 위로 다 탔다. 부산에 있는 화상전문병원에서 두 번 성형수술을 받았다.
나는 산재도 아니고 공상처리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관리자들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않아 손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다. 정말 사람 취급 못받고 있다.
앞으로 바람이 있는가?
현대중공업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 그런데 안 넣어주니까 갑갑하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하러 가야 하는데 받아 줄 데도 없다. 용역이라도 나가야 한다.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