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혀달라”...네팔 이주노동자 유서 남기고 자결

대구이주연대회의,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난 12일 대구성서공단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는 16일 오전 11시 대구성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유서에는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우는 회사에 대해, 자신을 어떤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횡포에 대해, 억울함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강제적으로 사업장을 이동시키는 회사의 음모에 대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적혀 있었다"며 "경찰은 고 갈레 던 라즈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과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라"고촉구했다.


네팔 이주노동자 "반드시 진실을 밝혀주세요" 유서 남겨

네팔 이주노동자 고 갈레 던 라즈(만 41세)씨는 지난해 9월27일 한국에 입국해 대구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이불솜 제조업체 S산업에서 일해오다 지난 12일 오후 7시께 영문 유서와 2장의 네팔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고국에 부인과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주연대회의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밝혀져야 할 수많은 의혹들이 있다. 최근 3개월 사이에 회사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며 "직원 20여명의 작은 공장에 12대의 CCTV도 부족해 올 3월에 4대를 더 증설했다. 최근 3개월 동안 회사 관리자들이 고 던 라즈씨와 대화를 단절하며 고인을 소외시켰다. 주변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던 노동자를 회사는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웠으며 성실히 일했던 노동자를 범죄자로 몰아세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통을 호소하는 고 던 라즈씨에게 회사는 문제 해결을 않고 하룻만에 사업장 변경을 강행했다"며 "이렇게 3개월 내에 발생한 수많은 의혹들이 고인을 죽음에 이르도록 몰아가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고 던 라즈씨가 억울함과 모욕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 조금만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러한 극단적 선택은 충분히 막을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연대회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 던 라즈씨는 처음에 자신에게 자주 말을 걸어줬던 S산업 관리부장에게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고 던 라즈씨는 "내가 야간교대할 때 공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괴롭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가 부정한 일을 했습니까? 나에 대한 불만이 무엇입니까?"라며 "당신이 전에는 나에게 이야기를 매우 잘했는데 요즘에는 나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S산업 관리부장은 대답을 회피했다. 고 던 라즈씨는 두번째 편지에서 "무엇이 문제인가요. 당신은 나를 무슨 이유로 두려워합니까? 제가 며칠 전에 당신에게 편지를 줬지만 당신은 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며 "당신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왜 당신은 나에게 말하기를 꺼려합니까? 당신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다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고 던 라즈씨의 요청에 S산업은 사직서를 쓰게 하고 사업장을 변경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고 던 라즈씨는 영문 유서에서 "한국정부와 모든 분들에게. 나는 결백하고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회사가 나를 속였습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거짓"이라며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밝혀달라는 진실에 대해 대구성서경찰서는 "해고에 의한 비관자살"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유서를 본 검사가 뭔가 의혹이 있다고 판단해 재수사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성서경찰서는 "조사가 진행중이므로 유서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구이주연대회의 "대책위 구성,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장례 치르지 않고 싸우겠다"

이주연대회의는 "한국 땅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온 지 십수년, 그동안 반인권적인 강제단속과 추방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 보호소에서 화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주노동자들, 산재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 또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 한 줌의 재가 돼서야 고국으로 돌아간 수많은 죽음에 대해 원인이 밝혀지고 한국정부가 사과를 하거나 책임자가 처벌을 받은 경우가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국정부와 자본에 의해 살해 당했다고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이어 "합법적 가면 아래 이주노동자들을 인신구속하고 그들의 노동권과 인권에 관심조차 없는 고용허가제가 한 이주노동자를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았으며 결국 죽음으로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야만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며 "자본과 사업주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의무만 있고 어떠한 권리도 허용하지 않는 고용허가제와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또 다른 던 라즈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며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주연대회의는 "고인의 사랑하는 5살, 10살된 어린 아이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이주연대회의는 고 던 라즈씨 죽음에 감춰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워나갈 것이며 진실 규명을 위해 지역의 모든 양심적 세력들과 함께해 나갈 것"이라며 "경찰은 고 던 라즈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과 진실을 철처히 규명할 것, 회사는 고 던 라즈씨의 죽음과 연관된 행위들에 대해 숨기지 말고 낱낱히 공개할 것, 대구고용지원센터는 강제적 사업장 이동과 관련해 고 던 라즈씨에게 공정하고 진정성 있는 책임을 다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주연대회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성서경찰서를 항의방문해 유서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주연대회의 임복남 집행위원장은 "유족에게 위임장을 전달받았다"며 "곧 대책위를 구성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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